화창한 봄의 전령은 화신(花信)입니다. 엄동을 이기고 옴츠렸던 가지가 움을 틔우고 꽃방울을 터뜨리면 우리는 비로소 꿈의 계절 봄이 왔음을 체감합니다. 신록은 어떻습니까. 봄볕 봄꽃 봄바람에 잠시 취해 있는 사이 대지는 어느 틈에 푸른 옷으로 갈아입고 싱그러운 내음을 쏟아냅니다. 그 신록은 천진난만하게 웃고 예쁘게 재롱떠는 어린아이처럼 우리에게 사랑스럽고 안온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수목은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위대하고 경이롭습니다. 거대한 수림을 이루어 경탄케 하는가 하면, 혹은 수려한 자태로, 혹은 오묘한 형상으로, 혹은 화려한 색깔로 인간을 압도합니다. 아니면 볼품없이 굽은 소나무조차도 선산(先山)을 지키는 의리를 지니고 있으며, 천애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름 모를 나무도 목석(木石)이 조화를 이루어 시심(詩心)과 화심(畵心)을 불러 일으킵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나무는 마음을 푸근하게, 눈을 즐겁게, 입을 풍족하게 해 줍니다.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 향기 나는 잎사귀, 줄기에 머금은 수액, 보드라운 꽃가루, 단맛나는 속살, 땅속으로 뻗은 뿌리, 죽은 둥치까지 모두 남을 위해 내놓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으시대지도 않고 자랑을 늘어놓지도 않습니다. 나무는 온 몸을 바쳐 인간에게 보시(布施)하는 은인인 셈입니다. 이토록 자비롭게만 느껴지는 나무이지만 그 생명력은 처절하고 탄복스러울 만큼 강합니다. 높은 산 능선위의 나무는 가지가 모두 남쪽으로 쏠려 모진 바람과 추위를 견뎌온 몸부림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바위틈에 선 나무는 한 치라도 더 깊이 뿌리를 내리려고 안간힘을 써 거대한 바위를 쩍 갈라놓을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아갑니다. 나무는 사람을 감격시킵니다. 끝없는 수해(樹海)나 울창한 원시림으로 압도하기도 하지만 하찮은 나무들도 가을이면 가장 사치스런 옷으로 성장하고 멋을 부립니다. 바로 단풍입니다. 울긋불긋한가 하면 노랗고, 갈색인가 하면 불타는 듯 빨간 단풍 숲은 장인이 만든 작품이나 패션과 견줄 수 없는 자연의 예술입니다. 그래서 뭇 시인들이 만산홍엽(滿山紅葉)에 도취하지 않았던가 싶습니다. 나무는 죽어서도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고산 등성이 곳곳에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 썩어가는 등걸은 오히려 산의 깊이와 세월의 장구함을 말해 줍니다. 불에 타서 가지만 남은 거목은 줄기와 가지의 균형미로 심미로움을 자아냅니다. 고사목의 뿌리마저도 잘 다듬으면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우리의 집과 사무실을 장식해 줍니다. 20여년 동안 분재 몇 그루와 화초를 집안에 키우며 얻은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우선 나무는 사람이 사랑을 베풀면 베푼 것 이상으로 보답합니다. 어떤 것은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어떤 것은 싱싱함과 기묘한 모양새로 즐거움을 줍니다. 그 베풂에는 빈자와 부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나무는 또 남을 탓하지 않습니다. 가지를 자르고 비틀어도 원망도 눈을 흘기지도 않습니다. 형형색색 다른 꽃을 피워도 “너는 왜 빨갛냐” “왜 너는 노랗냐”며 색깔논쟁이나 편가르기를 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철저하게 치부를 감출 줄 압니다. 새잎이 나고 누렇게 시들어 떨어질 잎은 반드시 새잎 뒤로 몸을 숨깁니다. 만개했다가 지는 꽃잎도 옆의 꽃잎을 가리지 않도록 다소곳이 주저앉는 것을 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생깁니다. 생을 마감하면서도 오기와 편견과 고집을 내세울 줄 모릅니다. 그리고 나무는 대세를 거스르지 않습니다. 더울 때 자양분을 축적하고 추우면 잎을 털고 옴츠리며 자연에 순응합니다. 손이 없어도 흔들어 대는 바람(風無手而搖樹)의 위력 앞에는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춰 삶을 도모합니다. 정녕 나무는 사람의 스승입니다. (2006년 10월 23일 www.자유칼럼.kr) |
자연의 가르침은 끝이 없습니다.
진정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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