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얼굴

강화도에 사는 62세의 농민 J씨는 주름살이 펴질 날이 없습니다. 지겨운 장마 뒤의 유례없는 가뭄으로 물대기에 바쁜 가을을 보냈습니다. 저수지에서 끌어오는 수도조차 제한급수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가끔 필자를 자기 차에 태우고 무논으로, 고구마 밭으로, 농사짓는 현장을 보여줍니다. 조실부모하여 남의 집 일해주면서 학교보다 몸으로 삶을 배운 그는 운전면허조차 7~8년의 도전 끝에 어렵게 따서 2년 전에 1톤짜리 화물차를 한 대 샀습니다.

장성하여 대처로 나간 2남 1녀를 둔 그는 부인과 단 둘이 살면서 약 만평의 논, 밭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중 자기 땅이 절반쯤이니 땅 부자인 셈입니다. 그에게 연락하려면 늘 휴대폰을 들어야 합니다. 1만평 농사가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는 늘 논밭에 나가 있고 부인은 한길에서 농산물을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1년 매출이 2,000여만 원에 순수입은 몇 백만 원 밖에 안 된다며 쓴 웃음을 집니다. 저축은커녕 해마다 농협에서 영농자금 300만원을 빌려 농사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농사 40년의 기술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그의 쌀은 과연 먹어본 중 최고의 미질이라고 늘 느끼게 됩니다. 그는 논에 농약을 거의 치지 않습니다. 우렁이를 사다가 논에 풀어 벌레들을 잡아먹게 합니다.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번쩍이는 줄을 묶어 황새들을 쫓습니다. 황새들에게 우렁이는 특식이기 때문입니다. 욕 안 하는 그도 황새에게는 팔을 휘저으면서 욕을 합니다.

그가 요즘 달라졌습니다. “해외여행이라도 한번 하지 그러느냐”하고 물으면 “텔레비전으로 다 보여주는데 갈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던 그가 이제 쌀 반가마를 사가는 도시민들에게도 뒷동산에서 딴 밤톨이나 강화도 특산인 속노란 고구마와 순무를 덤으로 듬뿍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도 지금 우리나라 농업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 곳곳에서 중국 쌀이 우리 쌀금의 절반에 팔린다는 이야기에 한숨이 늘어나고 이웃 포도원이 깊은 풍미(風味)를 자랑하던 포도나무 수백 그루를 단번에 베어낸 것에서 수입농산물의 파도가 마을 앞까지 밀려들어온 것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에서 그는 현역 농민들 중 나이가 어린 축입니다. 그가 만날 때마다 필자에게 땅을 팔아달라고 합니다. 태풍에도 눕지 앉는 들풀 같은 그도 쉴 틈 없는 중노동으로 1년에 한번 씩 몸 져 눕게 되면서 땅을 좀 처분하고 다른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죠. 그러나 강화도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고 허가대상면적인 전답 500평방미터(약 150평)를 넘게 사려면 원칙적으로 전세대원이 현지에 거주해야 합니다. 그러니 외부자금이 잘 유입되지 않아 농민들은 큰 돈 쓸 일이 생기면 걱정인 것 같습니다. 농민들도 이제 지쳤나 본지 강화도 곳곳에 보이던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라"던 현수막도 요즘엔 안보입니다.

최근 농림부 주최 전원마을 전시회에 참관한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면 농촌에서 여유로운 삶을 보내고 싶다고 했답니다. 이 전시회에선 전원마을 입주신청이 무려 9,411건에 달해 경쟁률이 3대1이 넘었다고 합니다. 여유 많은 사람들이야 농촌에서 유유자적해도 될지 모르지만 비교우위론에서 밀려난 우리 농촌은 지금 포도건 고추건 외국농산물과 일대 혈전을 벌이면서 고군분투하는 실정입니다.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공을 피해 수도를 옮기면서 개간해온 강화도의 바둑판같은 들판은 지금 반 고흐가 그린 그림 속의 들판처럼 누렇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늦가을로 접어들면 강화도의 바람결에선 마른 들풀이 빚는 허브 향기가 짙게 배어날 것입니다. 이 가을에 혹시 강화도를 방문하여 착하고 붉게 그슬린 늙수그레한 얼굴을 보시거든 그가 혹시 우리의 식량을 생산하는 착한 농민 J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2006.10.20 www.자유칼럼.kr)

외국인이 농사짖는 농촌

농부가 없는 농촌

골프장 옆 논밭

이런 그림이 떠오르면 왜이리 가슴이 횡한지요...

우리

이래도 되는건지요

이래도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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