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임철순입니다. 자유포럼에 처음 글을 올리면서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고심하다가 사람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사회 현안에 관한 시사적인 글은 흘러넘치고 끓어서 오히려 식상할 것 같고, 제 시각만이 공정하고 옳은 것이라고 주장할 자신과 고집도 없습니다.

오늘은 가엾은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가엾은가. 여러 유형이 있지만 자기만이 옳다고 믿는 사람을 저는 제일 가엾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든 주견이 뚜렷하고 시시비비가 분명하며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가엾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위험하게 보입니다.

그들이 가엾은 이유는 교조적이고 독선적인 행태, 도그마에 사로잡힌 의식,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 이런 것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정신적 발전과 성숙을 지향해야 하며, 그래서 드디어는 나름대로 완성되어 죽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저로서는 어느 한 가지에 고착되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엾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게 마련이다”라는 파우스트의 한 대목을 저는 참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가엾은 사람들은 방황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방황하지 않기 때문에 가엾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어느 자리 무슨 모임에서든 자기 이야기로 화제를 끌어가고 자기가 하는 일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어느 자리에서든 주인공이 돼야만 안심하는 사람들, 논리로든 목청으로든 남을 제압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특성 때문인지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는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농담 삼아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 이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姓)을 다 쓰는 여자를 조심하라”고 남들에게 말한 일이 있습니다. 한복을 사랑하거나 양성평등의 실현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을 편견임에 틀림없지만, 의외로 그런 사람들 중에 앞뒤가 꽉 막힌 경우를 자주 보았기 때문에 농담을 했던 것입니다

2000년에 나온 고려대 김병국 교수의 칼럼집 제목은 ‘열심히 잘못 사는 사람들’입니다. 김 교수는 같은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사회의 맹점을 지적했습니다. 학생들은 죽어라고 공부하고 경영자는 퇴근을 하지 않는데 왜 국가적 학문의 수준과 경제는 나아지지 않는가. 생산성은 일에 대한 열정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방향이 잘못된 열정, 무모한 추진력, 내실 없이 바쁜 삶…그런 것들의 폐해를 지적한 글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유형의 사람들이야말로 열심히 잘못 살 수 있는 위험성이 매우 높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고의 유연성 개방성 창의성 이런 것들이 퇴조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길게 말할 수 없지만, 젊은 시절부터 저의 화두는 모순의 조화였고 논어에 나오는 화이부동(和而不同ㆍ남들과 잘 어울리되 같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모순 되고 상반된 진실과 진실 사이에서 두 어깨가 아픈 고통과 갈등을 극복해 가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상식에 바탕을 둔 것, 보편타당한 것, 균형이 잡힌 것, 그리하여 광명정대한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못할까 봐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열심히 잘못 살게 되지 않기를, 나부터가 가엾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스스로 다짐해야 합니다.

자유칼럼의 다른 집필진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자유칼럼의 글들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바로 그런 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 9월 15일)

나이를 먹어가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씀

마음에 와닫습니다. 젊은 나이에 벌써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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