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인류는 계속 전쟁
본능이야
약해 보이면 전쟁해서 뺏는 것


최근 전쟁 상황 정리
중국 발달과
미국 약화 추세로
미국이 전세계 미군을 중국에 이동 배치
. 아프가니스탄, 유럽 등 미군 축소
. 타이완 긴장 강화
.. # 반도체 공급원 잃을 수 없어 그런 듯

중국은 타이완과 연해주 등 옛 영토 가지려해
정치적 정당성의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약해진 유럽을 상대로 옛 소련 땅 뺏으려 하는 것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하마스도
미군의 전세계 지배력 약화로 인한 것


유럽은 전쟁 불안으로 무기 필요한 데
유럽쪽 무기는 수요가 많아 기다려야 해
살곳이없어 눈 돌린 곳이 한국

무기 생산 나라들 중
러시아, 중국, 북한은 반대편
터기는 애매해 반대도 가능해
이스라엘, 한국 같은 편


덕분에 한국 방위산업 수출 증가


https://podbbang.page.link/uX2qXJ6CQRMG9CZaA

[플러스] 8/22(목) 전쟁의 시대, K-방산이 사랑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김정호 교수)

손에 잡히는 경제

podbbang.page.link

 





'◎ 여가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종훈. 모자의 나라  (0) 2024.04.14
중동, 무장 단체의 변천사  (0) 2023.12.19
책. 뚜이부치. 최덕현. 2023  (0) 2023.12.12
이독실. 아인슈타인  (1) 2023.10.30
이종훈. 버스 이야기  (0) 2023.09.08




박정호


이집트 중국 유럽 르네상스 청교도 종교적 용도로 모자 사용


모자의 나라 조선.  
다양하고
오래되어 전통있고
장인이 제작해 고급스러워

서양인의 눈에 아름다운 모자들

https://podbbang.page.link/NfB6T4hTeVPQ6pJ48

 

[플러스] 1/10(수) 와인이 전세계의 외면을 받고 있다? 외

손에 잡히는 경제

podbbang.page.link

 





'◎ 여가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호. 인류는 계속 전쟁 중 본능이다  (3) 2024.11.09
중동, 무장 단체의 변천사  (0) 2023.12.19
책. 뚜이부치. 최덕현. 2023  (0) 2023.12.12
이독실. 아인슈타인  (1) 2023.10.30
이종훈. 버스 이야기  (0) 2023.09.08




1 세대
2차대전 직 후 나라가 형성될 때
이스라엘로 인한 분쟁

2 세대
미소 냉전에 의한 편가르기

3 세대
걸프전 등 미국에 대한 반대



사우디아라비아
종교 강요 강압적 정치인데 무역국?
융통성 없고 개방하지 않으면 망해야 하는데

2차 대전 안 했으면
석유 안 나왔으면
망했겠네



https://podbbang.page.link/BKQVgJxgS5JFBrPw9

 

[플러스] 10/22(일) 중동 지도 이해하기..외

손에 잡히는 경제

podbbang.page.link



시작 쪽에 전편 요약 있다

https://podbbang.page.link/wTWKFrViAfjRVY9C9

 

[플러스] 10/29(일) 이슬람 극단주의의 질긴 생명력.. 외

손에 잡히는 경제

podbbang.page.link

 





'◎ 여가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호. 인류는 계속 전쟁 중 본능이다  (3) 2024.11.09
이종훈. 모자의 나라  (0) 2024.04.14
책. 뚜이부치. 최덕현. 2023  (0) 2023.12.12
이독실. 아인슈타인  (1) 2023.10.30
이종훈. 버스 이야기  (0) 2023.09.08




1939년 12월 중국 난징시 점령한 일본군의 6주간 대학살, 약30만명
역사를 부정하고 사과하지 않는 일본

사과한 일본군인 아즈마 시로의 이야기

저녁에 보지 마시길 꿈에 나타날 수 있음.

 

 

유대인을 살린 쉰들러 같은 분이

중국에도 있었네. '욘 라베'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 다시 한번 써 본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3367405

 

존 라베 난징의 굿맨 - 예스24

20세기의 숨겨진 홀로코스트를 기록한 난징의 굿맨!한 희극적 인간이 목도한 비극적 사건에 대한 기록!2009년 화제의 영화 「존 라베」의 원작이 책은 1938년 난징대학살 당시 중국에 머무르며 25

www.yes24.co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51010

 

존 라베 : 난징 대학살

Daum영화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movie.daum.net

 





'◎ 여가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종훈. 모자의 나라  (0) 2024.04.14
중동, 무장 단체의 변천사  (0) 2023.12.19
이독실. 아인슈타인  (1) 2023.10.30
이종훈. 버스 이야기  (0) 2023.09.08
3.1 운동과 태형의 비참함  (0) 2022.03.07



박정호 + 이독실



물리 수학쪽만 관심
언어 등은 거의 낙재 수준

대학 시절 불량 학생
교수를 00씨로 불러

나중엔 수학은 관심 밖으로
동료 교수 도움으로 해결

새로운 관점 제시가 천재로 연결
어떻게?
유대인인데 종교색을 벗어나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각이 넓어져

#미래 교육은 전부 다하는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 필요



https://podbbang.page.link/SAVs9GDN4FebWZFZA

 

[플러스] 8/31(목) 아인슈타인은 왜 특별한가?.. 외

손에 잡히는 경제

podbbang.page.link



8/31 2부 기부 부분은 경제적 이론 맞지 않아
그런 분야 있어
사교육걱정도?









ㅡㅡㅡㅡㅡㅡㅡㅡ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원리
g=t
중력과 가속도는 같다
물질은 공간을 휘어지도록 하고
휘어진 공간은  물건은 움직이게 유도한다


본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것을 생각해 내
사고 실험
태양을 관측해서 나와야 하는데...


과학자인데 왜 일반인에게 까지 유명해졌나?
. 2차대전 후 영국이 독일과 화해와 통합을 위한 선택
.. 뉴턴이 틀렸음을 영국학회가 인정하는 세레모니
. 소탈한 품성
. 이론의 로맨틱함
.. 시간이 상대적이니 죽인 지인도 어딘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노벨상
. 실용적인 발견에 지급
. 광전


https://podbbang.page.link/j7WQH3RY7CRUNimZ7

 

[플러스] 9/7(목) 아인슈타인을 스타로 만든 '그 이론'.. 외

손에 잡히는 경제

podbbang.page.link





천문 관측 결과를 반영하기 위해
g=t 수정
하기 싫은 결정
고뇌 속에 수정

그런데
나중에 허블의 관측이 기존 공식이 맞다는 것 증명
다시 수정
자신의 사유가 더 맞다고 생각하기 시작
. # 고지식 해지기 시작
사고 실험을 믿게 되었다
마음 편안해져 가정 편안

보어의 양자역학
. 이론으로 설명 안되는 현상이 있다
. 현상으로 보여지는 것 있어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대결로 최종 보어 승리
외부에 나오지 않아 은둔

https://podbbang.page.link/w4Z2iKmpBFFJpjgz5

 

[플러스] 9/14(목) 아인슈타인의 쓸쓸한 말년.. 외

손에 잡히는 경제

podbbang.page.link

 





'◎ 여가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동, 무장 단체의 변천사  (0) 2023.12.19
책. 뚜이부치. 최덕현. 2023  (0) 2023.12.12
이종훈. 버스 이야기  (0) 2023.09.08
3.1 운동과 태형의 비참함  (0) 2022.03.07
역사의 쓸모  (0) 2019.07.22



박정호 + 이종훈 공부왕


1662년대 마차가 버스의 시초


마차로 시작
목욕탕에 대려다 주는 서비스
. 옴니버스 가계 앞에서 태웠다
. 장소를 이야기하다 버스로 축약
.. 옴니버스는 라틴어로 '모두를 위한'
...(담배 어원도 '다음배 언제와' 하다가 만들어 졌다는데) #확인 필요

마차 서비스 좋아해 
목욕탕 접고 파리에서 마차 버스 사업 시작
유럽의 버스 시대 열어


1833년대
증기 버스 개발
>더 많은 일자리 기회
>직원 많이 고용 가능
-> 대기업화에 기여

출퇴근으로 시계 사업 발달
시간 맞춰 타야해서


1895년
내연 기관 버스 개발 시작


한국
버스 차장(안내양) 사라진 이유
. 지하철 개통과 함께 이용객 감소
. 앞문 승차 뒷문 하차 캠페인 으로 인원 감축

https://podbbang.page.link/z2PL2mTZp14UcvHMA

 

[플러스] 8/15(화) 험난한 세상, 재난 극복기.. 외

손에 잡히는 경제

podbbang.page.link

 





'◎ 여가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뚜이부치. 최덕현. 2023  (0) 2023.12.12
이독실. 아인슈타인  (1) 2023.10.30
3.1 운동과 태형의 비참함  (0) 2022.03.07
역사의 쓸모  (0) 2019.07.22
친일과 망각 2018  (0) 2018.08.21



3.1절에 영화 암살을 가족과 보았어요

영화로 나마 독립에 의미를 되세겨 봅니다.

 

 

3·1 운동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탄압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수많은 인파가 종로 일대로 모여듭니다. 사회 지도층, 종교인, 노동자, 농민, 학생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만세 운동은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다음 달인 4월까지 약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했다고 해요.

 

살이 터지고 녹아내리는 형벌, 태형

‘태형’은 몽둥이 등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형벌입니다. 반복해서 당할 경우 피부가 터지고 괴사하는 것은 물론, 세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끔찍한 형벌이에요. 

 그런데 일제는 1912년 제정한 ‘조선태형령’을 통해 이 끔찍한 태형을 하루에 30대씩 최대 90대까지 집행할 수 있도록 했어요.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제외하고 오직 조선인에게만 말이에요.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도 체포되어 태형을 당했습니다. 조선총독부 통계를 보면 총 10,592명의 만세 운동 참가자에게 태형을 선고했다고 하는데, 일제의 공식 통계가 이 정도니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돼요. 이렇게 태형을 당한 이들은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고통받거나, 끝내 후유증을 못 이겨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김명하와 탁창국. 강계 지역 학교를 졸업하고, 누구보다 조국의 독립에 앞장섰던 두 청년은 일제의 잔혹한 태형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당시 김명하를 치료했던 간호사는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어요.

“마취에서 깨며 김 군은 쉴 새 없이 ‘대한독립만세’ 를 외쳤습니다.

사망 당일 오후 내내 김 군은 손가락 끝을 물어뜯으려 했습니다.

그는 곧 숨을 거뒀고, 저는 나중에서야 그가 연신 손가락을 물어뜯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간 애국자가 그러했듯, 그도 자기 손가락을 뜯어 피로 독립선언을 쓰려 했던 것입니다.

 

 

 

https://newstapa.org/article/EaoOR

 

일제 '태형'에 사망한 조선 청년의 '마지막 소원'

일제 '태형'에 사망한 조선 청년의 '마지막 소원'

newstapa.org

 





'◎ 여가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독실. 아인슈타인  (1) 2023.10.30
이종훈. 버스 이야기  (0) 2023.09.08
역사의 쓸모  (0) 2019.07.22
친일과 망각 2018  (0) 2018.08.21
지금의 고위급 판사는 관료다  (0) 2018.08.16



이육사와 이순신,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오히려'입니다. 
이육사는 일제강점기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어나지 않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순신은 누구나 싸움을 포기했을 상황에서 
'오히려' 해볼 만하다며 의지를 
다졌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가요? 
제 인생에 '오히려'라는 말이 
이토록 울림 있게 다가온 적은 없었습니다. 


- 최태성의《역사의 쓸모》중에서 - 

인문학이 어려우면 역사를 공부하자

인문은 인간을 다루고 역사는 인간을 삶을 기록한 것이다.







8.15 특집 '친일과 망각 2018'


2018년 8월 15일 KBS1 라디오에 방송된 김기자의 눈 8.15 광복절 특집 방송입니다.

이번 특집방송은 뉴스타파의 광복 70년 특별기획 친일과 망각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을 한 내용입니다.

우리 사회의 기억 속에 잊혀져가는 친일 족적을 함께 따라가 보고,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고 미래를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출연 :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역사전문가 박광일








지금의 고위급 판사는 관료다

우울한 제목이지만 아니길 바라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네...

앞으로 바뀌기를 기대하며 


[민국100년 특별기획] 2부 

'사법부, 법복입은 관료가 되다'

https://newstapa.org/43837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시리즈를 2018년 8월부터 2019년 하반기까지 계속해서 보도합니다. 내년 2019년은 1919년 3.1 혁명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100년을 보내고 새로운 100년을 맞는 이 중요한 시점에서 이 특별기획을 통해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을 지배해 온 세력들을 각 분야 별로 분석하고, 특권과 반칙 및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통찰을 99% 시민 여러분과 함께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뉴스타파는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프로젝트를 통해 일제와 미 군정, 독재, 그리고 자본권력의 시대를 이어오면서 각 분야를 지배해온 세력들이 법과 제도를 비웃으며 돈과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고 그들만의 특권을 재생산한 현재의 지배계급 시스템을 가감없이 들춰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미래 세대는 과거 지배 체제가 극복된, 그래서 보다 정의롭고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체제에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며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1. 양승태 체제가 판사를 길들인 방식

현직 부장판사의 말에 낭패감와 참혹함이 배어 나왔다.

그들 스스로 괴물이 됐어요. 판사가 모일 때마다 바로 바로 보고서가 만들어지고. 문건에 보면 정확히 나와 있잖아요. 핵심세력, 주변세력, 동조세력, 동료 판사들을 말살세력이라고 본 것 같아요.

A 현직 부장판사

지난 7월 한 지방법원 인근 찻집에서 판사를 만났다. 40대 후반의 부장판사였다. 현 시점의 사법부를  “날개 없는 추락”이라고 비유했다.  그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이제는 바로 옆 동료 법관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지난 7월부터 현직 판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판사들로부터  양승태 사법부 체제가 어떻게 일선 법관들을 장악하고 통제해 나갔는지, 어떤 과정으로 순치시켰는지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MB가 들어와서 첫 번째 터진 사건이 2009년 신영철 대법관 촛불 개입 사태에요. 일선 판사들이 반발했죠. 그런데 양승태의 취임과 서기호 판사의 제명이에요. 양승태 대법원장이 돌아오면서 보수 드라이버가 된단 말이에요. 그런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들어서면서 법원이 상당히 숨 막히는 공간이 돼요.

B 현직 부장판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2년) 당시 서기호 판사를 자른 다음에 뭘 강조 했느냐. 재임용이 되면 행정처에 불러서 이렇게 연회를 비슷하게 베풀어줬어요. 그러면서 저희한테 법복을 새로 입혀줬어요. 그런 퍼포먼스를 했거든요. 저도 당시 재임용되면서 갔었는데 양승태 대법원장이 그런 얘기 하더라고요. ‘법관들은 10년 임기로 돼 있기 때문에 당신들은 "세컨드 텀 저지(재임용 판사)다. 이 세컨드 텀 저지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거다. 퍼스트 텀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세컨드 텀 져지가 됐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A 현직 부장판사

헌법이 정하는 양심이라는 것은 ‘객관적 양심’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이에요. 그런데 객관적 양심이 아마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 나온 말일 겁니다. 객관적 양심이라는 거. 그건 헌재 결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말이에요. 양심 자체는 주관적이지 어떻게 양심이 객관적일 수가 있습니까? 그건 양심도 아니죠. 헌재 판결을 보십시오. 양심의 자유가 있어서 양심이라는 게 나오는 거예요. 그거를 말도 안 되는, 마치 바이마르 헌법 때나 통용 되고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 통용되는 논리가지고 끊임없이 법관들을 억제하려고 한 거죠.

B 현직 부장판사

촛불 혁명이 있기 전까지 다 예상했던 게 정권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 양승태 대법원장 다음에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이, 그 다음에도 행정처 거치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또 그 다음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같은 사람이 대법원장을 했을 거예요.

A 현직 부장판사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8년 8월 현재, 대한민국 판사는 2,933명이다.배석판사에서 대법원장까지 촘촘하게 피라미드식 계급 구조를 이룬다.  이 가운데 대법원장과 대법관, 고등법원장과 지방법원장, 고등법원 부장 등 고위직 판사는 314명이다. 승진과 보직 이동, 그리고 좌천, 재임용 탈락 등 당근과 채찍이 반복적으로 일상화된다. 여기에 출세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해지면서 사법부의 관료화는 심화되고 판사들은 철저히 획일화된다.법관은 이제 “법복 입는 관료”가 되는 것이다. 그 관료화의 정점에 법원행정처가 있다.

법원장은 제 상급자가 아니거든요. 제 업무와 관련해 저를 불러서 물어볼 권한도 없어요. 대법원도 상급기관이 아니거든요. 모든 법관은 독립돼 있어요. 그런데 지금 그렇지 않잖아요. 여러 가지 각종 선발성 인사들이 있고, 법관 2,900여 명이 되는데 900명 이상이 1년마다 보직을 옮기잖아요. 여기에 사무 분담도 중요하죠. 선호하는 사무 분담이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해외 연수, 수석부, 연수원 교수 등 지금의 고등판사 제도. 이런 것들을 통해 각종 선발성 인사들이 있어요. 판사들이 늘 사법행정권자를 인식할 수밖에 없어요. 그건 명확해요.

B 현직 부장판사

(윗 사람에게 잘 보이면) 보장되는 게 많잖아요. 예를 들어서 이번에 그 외국 파견 얘기가 나왔잖아요 그만큼의 어떤 보장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2년, 어떤 사람은 10년 가까이 행정처에서 근무하면 완전히 그 사람은 핵심세력이 되는 거고…

A 현직 부장판사

2. 보이지 않는 권력, 법원행정처

“괴물이 됐다”

“사법부 관료를 심화시킨 조직이다”

“양승태의 친위부대 역할을 했다.”

“재벌들이 만든 구조본부처럼 단순 사법행정을 넘어 모종의 기획을 했다”

“사법부의 성골, 진골이다”

“보직 희망원을 안 받는 곳이에요”

이번 취재 과정에서 다양한 취재원들이 법원행정처를 지칭한 말이다. 대법관을 겸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정점으로 30명 안팎의 판사들이 재판 대신 사법행정 업무를 하는 곳이다. 2018년 3월 기준으로 모두 33명의 판사가 근무한다.

▲ 2018년 3월 기준, 법원행정처에 33명이 판사가 근무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본래 목적은 판사의 재판을 보조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법관에 대한 감시, 감독기관으로 변질됐다. 보이지 않는 사법권력의 핵심이 된 것이다. 이 곳을 거쳐간 판사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역대 법원행정처 차장은 모두 34명이다(현직 제외). 이 중  27명이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영전했다. 5명은 대법원장과 국무총리가 됐다. 영전하지 못한 채 퇴직한 이는 강형주 (2014-2015 법원행정처 차장), 임종헌 (2015-2017 법원행정처 차장) 등 2명 뿐이다. 두 명 모두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해 관여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2000년 이후 임명된 대법관 42명 가운데 법원행정처 출신은 절반 이상인 23명이다. 또 점차 법원행정처를 거치는 횟수도 크게 늘어난다. 차한성 전 대법관은 대법관이 되기 전까지 모두 6번의 법원행정처을 거쳤다. 근무 기간만 11년 2개월이다. 34년 법관 생활 중 32%를 법원행정처에서 보냈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의 법원행정처 근무 이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경우 1987년 판사가 임명된 이후 2017년 퇴직때까지 5차례, 8년간 법원행정처를 거쳤다. 박병대 전 대법관은 6번,11년 동안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역시 법원행정처에서 4차례, 6년 10개월 동안 근무했다.

뉴스타파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에 파견돼 근무한 판사 140명도 분석했다.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의 41% 가량이 두 차례 이상 법원행정처로 보직발령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출신 대학으로 보면 서울대 출신은 79.3%고, 그 다음이 고려대 10%였다. 두 개 대학 출신을 합하면 89.3%에 이른다. 또 근무 이후 인사발령을 통해 타 법원 등으로 근무지를 옮긴 판사의 82%가 서울 지역 법원에 발령받았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의 자세한 분석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면 된다.

3. 판사 8년차 젊은 판사가 카메라 앞에 서다.

지난 7월, 현직 판사가  뉴스타파를 찾아왔다. 임용 8년차 류영재 판사였다. 그는 자신을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판사로서 소명의식이 투철하지 않다”고 했다.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사법농단 사태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자신을 포함해 많은 판사들이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법농단 사태를 이렇게 규정했다. “민주화 투쟁으로 사법부 독립을 갖다 준 국민들을 세게 배신한 행위”.

류영재 판사는 “판사 내부의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뉴스타파를 찾았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들이 이번 사안을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카메라 앞에 앉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2시간 반 동안 계속됐다.

2시간 반 동안 이어진 인터뷰는 그동안 양승태 사법부 체제가 어떻게 사법부를 장악하고, 판사들을 어떤 방식으로 통제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의 증언은 부끄러운 사법부의 민낯이다.

류영재 판사의 인터뷰 내용은 공개된 방송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4. 반면교사의 현장, 일본을 가다

민국100년, 사법 70년 취재를 한창이던 지난 7월 말, 뉴스타파 취재팀은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와 사무총국(법원행정처 역할)의 문제점과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 법원행정처는 일제의 사법 시스템 잔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번 일본 최고재판소와 사무총국에 대한 취재를 통해 한국 법원행정처의 폐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 일본 최고재판소, 우리의 대법원이다.

현재 일본 최고재판소 장관(대법원장)에 임명된 오타니 나오토, 그의 경력을 보면 우리와 사정이 아주 비슷하다. 오타니는 최고재판소 판사(대법관)와 장관이 되기전까지 사무총국에 6번 근무했다. 43년 법관 경력 중에서 16년 동안  재판에 참여했을 뿐 나머지는 사무총국 등에서 사법 행정업무를 본 것이다.

취재진이 만난 한 퇴직판사는 일본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이 법관들을 통제하고 관료화시키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타자와 사다오 변호사는 36년 동안 판사직을 마치고 지금은 일본 민주변호사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기타자와 사다오 변호사는 일본에서는 판사가 좋은 판결을 내렸다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무총국을 거치지 않고서는 최고재판소 판사(대법관) 등 고위직에 오를 수 없다고 했다.

일본에 만난 퇴직 판사와 학자들이 한결 같이 표현하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손타쿠(忖度)다. 번역하자면, “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알아서 행동한다.”는 뜻이다. 손타쿠는 일본 판사들의 몸에 배인 습성이 됐다고 지적했다. 독립적으로 재판해야 할 판사들이 인사권을 준 상급자의 눈치를 끊임없이 본다는 것이다. 그 정점에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이 있다고 했다.  

전직 판사 출신인  세기 히로시 메이지대 법과대학원 교수는 일본의 판사들은 이제 “법복입는 관료(공무원)”이 됐다고 말한다. 세기 히로시 교수는 30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며 사무총국에서 두번 근무한 엘리트 판사였다. 퇴직 후 <절망의  재판소> <검은 거탑 최고재판소>의 저서를 통해 일본 최고재판소의 수직적 관료화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랫레이스(rat race 무한 생존경쟁)”, “판사들의 송곳니를 뽑아버리는” 등의 표현으로 일본의 관료화된 사법 시스템과 순치된 판사들의 현실을 고발했다.

일본도 작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길기 때문에 보직 이동을 통제하고, 승진을 통제하고, 이것은 최고재판소가 판사들을 통제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판사들은 랫레이스(rat race 무한 생존 경쟁), 출세를 위한 경쟁을 하게 되고, 모두 위를 보게 됩니다. 그 출세 경쟁에서 이긴 자가 고등법 원장이나 대법원 판사가 됨으로써 그 사람들이 통제를 하는 것입니다. 시스템 그 자체가 결국 판사들의 송곳니를 뽑은 것 같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특징입니다.

세기 히로시 메이지대학교 법과대학원 교수(전직 판사)

퇴직 판사인 기타자와 사다오 변호사는 일본 사법부가 스스로 사법 독립을 후퇴시킨 원인으로 2차 대전 패전 이후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최고재판소라고 하더라도 전후 사법제도 개혁을 하게 되었는데, 일본의 고위관료는 전쟁책임을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사법성(司法省)이라는 곳이 있는데, 사법성의 주류가 대법원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에 사무총국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습니다. 그때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총국은 민주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타자와 사다오 전직 판사(36년 근무)

5. 과거에 눈 감는 자에게 미래도 없다

보신과 출세를 위해 법과 정의를 버린 법복 입은 관료들에게 바른 판결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사법부 역시 조직의 이익을 추구했던 그저 “법복만 입은 관료”집단은 아니었을까.  

류영재 판사와 한승헌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법원 구성원으로서 예전의 흑역사를 반성을 하고 어 이제 정말로 재판만 바라보고 당사자만 바라보고 재판을 해도 부족할 판에, 이제는 정권이 우리한테 고문을 하지 않아도 인사권을 건드리지 않아도 우리가 스스로 사법 독립을 팔아먹었는데 왜 이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가 그러면 사법부 내부에서 견제 역할을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서 참담함을 느끼게 되는 거죠. 앞으로 사법개혁이 어떻게 될지 국민들이 법관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한다라고 판단을 해도 저는 사실 할 말은 없다고 생각을 해요 한 번 우리가 세게 배신한 거니까 다만 그래도 이제 알아주셨으면 좋겠는 건 그렇다고 해도 독립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원을 포기할 순 없다는 거죠.

류영재 현직 판사

과거사에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 일에도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오늘과 내일에 대한 어떤 바른 판단 이걸 제대로 못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지금처럼 뭘 그렇게 덮어두기에 급급한 이런 사례면은 절대로 우리 사법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한승헌 변호사

데이터 최윤원, 임송이
촬영 최형석, 오준식
내레이션 손정은
편집 윤석민, 정지성
CG, 타이틀 정동우
리서처 민길주, 전인화, 홍은아
취재 연출 박중석, 박정남, 문준영







최근에 양승태라는 이름이 많이 거론된다 
그가 궁금한가?
그는 정권에 눈치를 보며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넣은 유신판사 였다
이 진실을 빼고 그를 판단할 수 없다


#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데이터 기반 기사를 무척 좋아한다
# 내가 뉴스타파를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국100년 특별기획] 1부 ‘사법부 역사법정에 세우다’


박중석

2018년 8월 8일 8:14 오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시리즈를 2018년 8월부터 2019년 하반기까지 계속해서 보도합니다. 내년 2019년은 1919년 3.1 혁명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100년을 보내고 새로운 100년을 맞는 이 중요한 시점에서 이 특별기획을 통해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을 지배해 온 세력들을 각 분야 별로 분석하고, 특권과 반칙 및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통찰을 99% 시민 여러분과 함께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뉴스타파는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프로젝트를 통해 일제와 미 군정, 독재, 그리고 자본권력의 시대를 이어오면서 각 분야를 지배해온 세력들이 법과 제도를 비웃으며 돈과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고 그들만의 특권을 재생산한 현재의 지배계급 시스템을 가감없이 들춰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미래 세대는 과거 지배 체제가 극복된, 그래서 보다 정의롭고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체제에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며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1. 2018년 6월 삭제된  ‘유신판사’ 명단

희한해요. 07, 08, 09, 10년 상하반기 보고서 다 있고 종합보고서에 발굴보고서까지 다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만 없어요. 황당하네. 당황스럽네요.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 업무지원단 공무원

휴대전화 넘어 담당 공무원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담당 공무원도 삭제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뉴스타파가 과거사 관련 업무를 지원한 정부 홈페이지에서 긴급조치 판결문과 재판관의 목록이 삭제돼 있음을 확인한 것은 2018년 6월 초였다. <民國 100년 특별기획> 취재를 시작하던 때였다.

뉴스타파는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 긴급 조치 위반으로 형사재판을 받은 피해자와 판결문을 찾아 나섰다.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서 가장 참담하고 부끄러웠던 시대를 판결문을 통해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유신 재판관 명단은 이미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관련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한 바 있었다. 진실화해위는 2010년 활동을 종료한 상태였고 그 업무를 승계한 행정안전부 과거사 관련 업무지원단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 행안부 과거사 업무지원단 홈페이지 유신판사 목록이 담긴  진실화해위 2006년 하반기 보고서가 삭제됐다.

과거사 업무지원단 홈페이지 자료실에는 2006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위가 낸 조사보고서가 보관돼 있었다. 판결문과 판사 명단이 담긴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를 내려받았다. 그런데  보고서 중  297쪽부터 445쪽까지 149페이지 분량이 삭제돼 있었다. 긴급조치 판결문 요지와 판사 목록이 담긴 부분만 가위로 오려낸 듯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행정안전부는 조사보고서 원본도 별도 보관하지 않고 있었다.

삭제돼 있는 해당 보고서가 홈페이지에 올려진 시기는 2008년 4월 25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지난 뒤였다. 진실화해위 조사보고서는 관련 법률에 의해 반드시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에까지 보고한 공식 기록물이다. 누가 삭제를 지시한 것일까?

행안부 공무원은 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판사 실명 공개가 민감한 사안이라 빠진 것 같다”고만 추정했다. 뉴스타파는 유신판사 명단을 누가, 언제, 어떤 절차로 삭제했는지 행정안전부에 공식 질의서를 보냈다. 뉴스타파는 답변을 기다렸다.  

2. 1,392건의 판결, 유신판사’ 522명.

뉴스타파는 해당 조사보고서의 원문을 입수했다. 거기에는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긴급조치를 위반한 재판 1,392 건, 피고인 9백여 명, 그리고 유신 판사 522명의 명단이 담겨 있다. 기존 492명보다 30명이 늘어난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암흑기, 박정희 유신독재와 긴급조치 시절, 죄 없는 이들의 죄를 법정에서 완결시킨 이들의 명단이다.

▲ 긴급조치 재판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훗날 대법관 등으로 영전한이가 23명이다.

522명의 재판관 중 긴급조치 9호 위반 판결 판사가 492명, 긴급조치 1·4호, 3호 위반 판결 판사가 30명이었다. 이들 유산 판사에는 훗날  명단에는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부총리가 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양승태, 김황식 등을 비롯해 이후 대법원장과 대법관으로 임명된 이는 23명이다.

3. 1975년 “박정희 정치는 X도 아니다”

1975년 11월 대구지법 상주지원.
주점에서 박정희 대통령 욕한 A씨 징역 1년 선고.
혐의. 주점에서 술에 취해 "박정희 정치는 X도 아니다"라고 반복하여 말함(긴급조치 9호)
1975년 5월 서울민형사지법 의정부지원
"박정희 XXX, 세금 다 착취해 먹고도 철도 건널목에 간수 하나 두지 않아 사람 죽게 했다"
형이 열차에 치여 죽자 동네 사람들 앞에서 소리친 축산업자 B씨에게 징역 3년 선고.
혐의. 폭처법, 유언비어 날조 유포(긴급조치 9호)
1976년 11월 서울형사지법.
"정일권, 박정희 그것들 다 일본군 출신이다. 형편없는 것들이야. 우리 독립군을 얼마나 많이 잡아넣고 못살게 했는데 그래"
본인 이발소에서 대화 중 유언비어 날조 유포한 C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선고.
혐의 : 유언비어 날조(긴급조치 9호)

긴급조치 판결문 가운데 몇 가지를 요약해 예시한 것이다. 우리 주변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 술에 취에 한 말 한마디, 형이 열차에 치여 숨진 후 토로한 울분으로도 감옥에 가던 세상이었다. 그게 긴급조치 시대였다.


일부 피고인들은 재판관의 양심 있는 판결을 포기했다. 이들은  재판정에서 진술을 거부하며 침묵으로 맞서기도 했다.

그때 공판이 있었는데, 그날 우리는 진술을 거부했어, 묵비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었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냐면 당신들이 양심적으로 판결을 하고 양심적으로 판단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는 있었지만,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그 사람들한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어. 실제로 그랬어요. 판사들한테도 왜냐면 불가능했어요.

이대현 긴급조치 피해자 (당시 서울대 2학년)

4. 양승태, 유신철폐 유인물제작 배포에 징역10년 판결 

갓 판사로 임용된 20대 청년 양승태는 긴급 조치 12건의 판결에서 재판관으로 참여했다. 재판을 받은 이는 성유보(전 동아일보 기자), 이부영(전 국회의원), 심지연 (경남대 교수) 등이다.  

동아일보 안에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해서 자유언론운동을 했다는 거였어요. 강압으로 만든 조서를 검찰 조서가 토씨 하나 안 빼놓고 다 베껴버리고, 더 우스꽝스러운 건 판사들이 그걸 그대로 또 베껴서 판결문을 쓴 거예요. 그대로. 1심 재판 때 양승태가 거기 배석판사였더라고.

이부영 전 국회의원 / 전 동아일보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

대표적인 재판이 이른바 “7인 기획위원회’ 사건이다. 심지연, 조성우 등은 명동성당 사제관에 모여 시국을 논의해 긴급조치9호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판결요지에 따르면 이들은 “명동성당 사제관 시부의 방에서 ‘7인 기획위원회'를 조직하고 유신헌법철폐, 정권 퇴진을 위해 활동하고자 유인물 제작, 각 대학 데모상황 정보를 공유”한 것이 죄목이었다. 1975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재직 중에 배석판서로 재판에 참여한 양승태는 이들에게  피고들에게는 중형을 선고했다.

5.  2018년 7월, 유신판사들에게 과거를 묻다

이른 아침부터 강남을 찾았다. 긴급조치 판결 이후 대법관으로 영전하며 승승장구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퇴임 이후 대형 로펌에서 대표 또는 고문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다. 뉴스타파는 이들에게는 미리 질의서를 이메일로 보내고 전화 통화도 시도했다. 질의에는 이런 내용을 담았다.  

재판정에 선 판사이기 전에 한 지식인으로서의 깊은 인간적 고뇌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시대를 판사로 재임했던 분들이 느끼셨을 심정을 직접 들어보고 싶습니다.

과거사에 대해 언젠가는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한 미래를 다짐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기 싫은 기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해야만 합니다. 사법부의 미래,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답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1. 당시 재판에 참여한 판사로서 고뇌가 있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또 지금의 심경은 어떠신지요?

2. “입장이 무엇이든 유신 치하에서 법관생활을 한 분이라면 법관으로서의 자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신지요?

3. 재심을 통한 무죄선고가 있따르고 있습니다. 유죄선고를 내린 피고인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기회가 된다면, 당시 피고인들에게 사과하실 의향은 있으신지요?

▲ 뉴스타파가 유신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 질의서 일부

진솔한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그때 그 감정만이라도 직접 듣고 싶었다. 하지만 만남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빌딩 입구에서부터 제지당하기 일쑤였다.  사전에 약속을 허락받지 않을 경우 만날 수 없다며 했다. 미리 연락이 닿은 법무법인 측도 업무로 바쁘다는 등 여러 이유로 만남을 회피했다.

▲ 지난 7월 취재진은 긴급조치 판사들을 만나기 위해 로펌과 자택을 방문했다.

간혹 연락이 닿은 경우에도 “연로해서 힘들다”, “정치적인 문제이기에 인터뷰 곤란하다”, “건강이 좋아 어렵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거부하기도 했다.

나 자신도 그 당시나 지금이나 그 긴급조치가 뭐 제대로 된 거다 옳다 이렇게 생각지 않지. 그 당시도 모든 법관들이 이거는 문제가 있다란 생각은 다 했지만 그거를 어떻게 무효화하는 이론이나 이런 것을 찾아낼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그 당시에 법관들의 고뇌였죠.

황우여 전 부총리

판사는 판결로만 이야기하는데 제가 뭐라고 답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서 일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6. 4월 11일, 대법원장 후보를 면접하다.

4월 11일 오전 청와대를 출발한 차량 한 대가 사직동으로 들어선다. 사직동 골목 주택 앞에 멈췄고 정장 차림의 3명이 내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유태흥 대법원 판사(현 대법관)의 집이었다.  이들은 한 시간가량 머물렀다. 3명 중에는 박철언 청와대 정무비서관도 있었다.

이틀 전 박철언은 전두환 대통령을 독대했다. 그는 전두환에게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 자료를 보고했고 전두환은 김용철 대법원 판사를 만나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라는 지침을 줬다.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대법원장 후보자를 면접을 보라는 것이었다. 박철언은 이날 유태흥을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박철언은  2005년 출간한 <바른역사를 위한 증언>이라는 회고록에서 이날 상황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박철언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청와대 정무비서관, 법률비서관, 청와대 정책보좌관, 정무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지내는 등 5,6공 당시 권력의 실세로 군림했다. 유태흥은 이날 박철언에게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친분도 없는 저를 각하께서 대법원장 후보의 한 사람으로 생각해주시는 것만도 영광이며, 임명받는다면 최선을 다하여 임명권자와 국민에게 봉사하겠습니다. 국가 안보가 민주주의나 기본권이나 인권보다 전제가 되는 것으로 가장 소중합니다. 국가가 그릇이라면 민주주의는 그릇에 담긴 물과 같은 것입니다. 분단국 현실에 비추어 사법부 수장은 정치적, 공안적 사건에서 정부에 협력해야 하고…(중략) 국민에게 봉사하는 법조의 구현을 위해서는 사법부 혁신, 법조 민주화가 되어야 하나, 재임용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희박하고 품위가 바르지 못한 사람은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른역사를 위한 증언, p.55>
▲ 전두환과 유태흥 대법원장

전두환 정권에 대한 일종의 충성 맹세였다. 박철언이 면접을 본 유태흥은 곧 사법부 수장에 임명된다.  유태흥은 1985년 법관 인사 문제를 신문에 기고한 판사를 좌천시켜 사법파동을 초래했고, 국회에서 사법사상 최초로 탄핵안이 발의된 대법원장이 됐다. 대표적인 정치판사였던 그에게 훗날“영욕의 법조인”이라는 오명이 붙는다. 권력에 읍소해 얻은 자리가 오히려 멍에가 된 것이다.

지난 7월 뉴스타파 취재진은 박철언을 만났다. 그는 유태흥의 발언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대법원장, 대법관들 임명하는 과정도 역시 저는 민주주의하고 삼권 분립 신봉하는 사람이지만, 그때 남북이 대화도 극심한 대결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의 사법부도 다른 개개의 모든 사건에 대해서 사법적 정의를 실천해야 하지마는 이런 나라의 존립에 관한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의 존립에 관한 국가 안보에 관한 중요 문제에 관해서는 그런 대통령과 서로 어느 정도 공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박철언 전 장관

7.  1981년 8월, 대법관 보안사에 끌려가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집권 18년 내내 철권통치를 통해 사법부를 발아래 뒀다.

대법관의 명칭을 대법원 판사로 격하시켰고 법원행정처 처장에 현역 대령을 임명했다. 주요 법원에 중앙정보부 요원을 상주시키고 노골적인 협박으로 굴종을 강요했다.

그 당시에 형사 법원 안에는 조그마한 상황이 있어가지고 중앙정보부 요원 4명이 상주를 하고 있어요. 수시로 판사실에 들어와가지고 이래라저래라 언제 어떻게 재판을 할 거냐.  재판기일을 언제로 할 거냐. 그 사람들 보석을 해줄 거냐 안 할 거야 별의별 간섭을 다했죠.

목요상 전 국회의원 (유신 당시 판사)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 역시 사법부를 철저히 통제했다. 일부 판사들은 큰 고초를 겪게 된다. 1980년 5월 20일 대법원 앞에 탱크가 버티고 서 있었다.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전두환은 대법원에 김재규에게 내란죄를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부 대법관들은 따르지 않았다. 양병호 등 대법관 6명은 김재규를 내란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소수의견을 냈다.

결국 양병호 대법관이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갔다. 그해 8월 양병호, 임항준, 김윤행, 서윤홍, 민문기 등 대법관 5명은 대법원을 떠나야 했다. 사실상 강제해직이었다. 한승헌 변호사는 당시 양병호 대법관의 상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양병호 대법관님은 마침 저하고 같은 동내에 사셨는데 기관에 가서 당하고 오신 뒤에 어느 날 이른 아침 산책 나가시는데 혼자 걸어오시는데 그렇게 보행이 어려우시더라고요. 군 수사기관에서 가서 아주 육신의 큰 피해를 입고 많이 참 얻어맞고 이런데 상처가 보일 정도로 아주 야만적인 일을 겪고 나와서 사표를 냈죠.

한승헌 변호사

8. 굴종과 오역의 사법 70년. 그러나 반성은 없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사법부는 때로는 권력에 굴종하며, 때로는 아부하며 권력을 쫓았다. 그 오욕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일제로부터 해방됐지만 인재가 없다는 이유로 이승만 정권은 사법부에 면죄부를 쥐여줬다.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재판관으로 군림하며 출세를 거듭했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는 이승만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지켜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하루아침에 해방이 되고 나니까, 어디서 일할 사람이 따로 없고 일제 하에서 법조인으로 다니던 사람들이 다시 해방 후에도 다시 재판도 하고 수사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는 불가피한 상황은 있었죠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대단히 그 아이러니컬한 것이 그 사람들은 부일 협력자로서 처벌을 받아야 되는데 여전히 (재판정) 단상에 가서 심판을 하고 있으니까 ‘이건 참 잘못된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한승헌 변호사
▲ 역대 대법관과 대법원장

대한민국 역대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137명.  이 가운데 친일반민족 행위자는 4명.  친일 인명사전에 오른 이는 19명이다. 해방 이후, 친일파에 장악당한 대한민국 사법부는 권력에 굴종하고, 영합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구축했다. 단죄와 반성이 없었던 친일 판사들은  또다시 우리 역사에 악역을 담당했다.

▲이승만과 김두일 (출처 국가기록원)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재판했던 친일파 김두일은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영전했다. 이승만 정권에서 벌어진 3.15 부정선거, 김두일은 부정선거가 없다고 단언하며, 이승만에게 당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1954년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했던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 내무부 장관으로 가결을 주도했던 백한성. 그 역시 독립운동가를 재판했던 친일파였다. 이승만 정권은 영구집권을 위해 정적 조봉암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사법 살인을 저질렀다. 조봉암에게 사형을 언도한 대법원 재판관 5명 중 4명이 친일 판사였다.

▲이승만과 대법관 일행과 기념촬영 (출처 국가기록원)

대한민국 사법 70년, 오랜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되면서 조금씩 사법부는 독립을 보장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사법부의 내부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법부의 이름으로 유죄를 선고했던 수많은 피고인들의 희생과 헌신, 죽음으로 쟁취한 것이었다. 사법부는 이런 역사적 진실을 외면했고 과거 잘못에 대한 성찰과 반성도 하지 않았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에 사법부의 독립은 그런대로 모양을 갖추어 나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사법부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궐기로 민주화를 쟁취한 덕분이었다. 다시 말해서 법원이 죄인이라고 감옥에 보낸 피고인들의 싸움과 수난에 힘입어 사법부가 독립을 누리게 된 것이다

한승헌 변호사

9. 뉴스타파가 유신판사 명단을 정부 대신해 공개한다.

한 달 만에 행정안전부로부터 답변이 왔다. 당초 기대했던 답변은 아니었다. 누구의 지시로 삭제됐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다시 공개할 의사도 없다고 했다.  유신판사가 공개되지 않음으로써 이익을 보는 자는 분명히 있다. 바로 사법농단을 주도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유신 판사들이다.

자기 양심을 속이고 법을 위반해서 이 사람들을 유죄판결을 내렸는데 지금 당장에 과거에 잘못한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명단이라도 공개하자 하는 것이 판사들 이름을 공개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은 현실 법정에 고발한 게 아니라 뒷날 역사 심판에 우리가 이 사람들을 기록으로 보내는 거죠. 그게 명단 공개예요. 역사 법정에다가 이 사람들을 기소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가 있는 거죠.

안병욱/전 진실화해위 위원장

뉴스타파는 정부를 대신해 유신판사 522명의 명단을 공개한다.

데이터 최윤원, 임송이
촬영 최형석, 오준식
내레이션 손정은
편집 윤석민, 정지성
CG, 타이틀 정동우
리서처 민길주, 전인화, 홍은아
취재 연출 박중석, 박정남, 문준영






'◎ 여가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일과 망각 2018  (0) 2018.08.21
지금의 고위급 판사는 관료다  (0) 2018.08.16
임진왜란에 대한 다른 시각  (0) 2018.06.12
책.하루에 돌아보는 우리 궁궐.허균.2010  (0) 2017.12.13
책.친일과 망각.  (0) 2017.12.08




http://podbbang.com/ch/8336?e=22233834

김동진 교수


도시의 흥망은 자원에 따른 것이 크다

나무를 배어 쓰다 고갈되면 망하는 식

풍수의 기운도 생명 자체가 기운이라 생각

# 공감 된다


조선 이후는 삶의 형태가 바뀌어 유지

북쪽도 활엽수 지대였다

# 진짜? 궁금...


큰소나무

. 황장목 : 조선에 정식 명칭

. 금강송은 일본이 지은 이름


느티나무가 최고

. 부석사 무량수전

. 천년지나도 안썩어


소나무는 배에 이용

. 송진

. 가벼움

. 왜구도 훔치러 옴

. 해양강국의 요소


빙고

. 사설 빙고도 있다

. 역관에도 얼음 있다


조산 파발 시스템

. 말 40km

. 10시간이면 부산 간다

. 임금이 회 먹고 싶으면 24시간이면 먹을 수 있었다

# 현재 택배 만큼 빠르다

봉수는 1시간 이네  보고


임진왜란

. 사전에 알았다 

. 원균이 상륙을 못하게 했어야

. 왜군의 규모가 20만 vs 조선 4~5만

. 조선은 수군 중심이고

. 육군은 읍에 많아야 500

.. 육군 붙으면 1~2만대 vs 500~1천

. 왜군은 성깨기가 목표

. 조선은 도시 중심이 아니라 방어 빈약

. 왜군 평양성 정복 후 진짜 전쟁 시작

. 중국의 화약을 가져와 전쟁 본격 시작

. 우리도 많이 죽었으나 일본은 1만도 못 돌아갔다

. 조선이 일본. 중국보다 싸움은 잘 한 것

. 이순신. 권율. 원균 모두 충무공인데 

.. 일본이 이순신만 집중 조명

.. 박정희가 연달아 조명

.. 사실 육군도 잘 싸웠다


역사 연구자들는 아는 사실이나

역사 교과서 만드는 분들과의 차이가 있다



이 방송을 듣고 

아.... 어디서 부터 누구한테 역사를 배워야 하나 싶네... ^^;







(하루에 돌아보는) 우리 궁궐



2010
저자 다수
그림 다수

아이들 체험하러갈 때 유용할 듯
프로그램 제안도 있음 : 견학 앨범, 지도, 안내판, 역사 연표, 역사 재판 시나리오 등


[궁궐 공통 내용]

구성
. 담 - 외전 - 내전 - 후원
.. 경복궁을 기준으로
.. 담 : 광화문 - 동십자각
.. 외전 : 흥례문 ~ 사정전 : 일을 보는 곳
.. 내전 : 기타 '00전', '00궁' 건물 : 생활을 하는 곳
.. 후원 : 00루, 00원 등 : 여가를 즐기는 곳

궁궐의 뜻
. 궁 : 생활 공간
. 궐 : 업무 공간

건물 등급
  1. 전, 당 : 왕실 가족의 직계 건물
  2. 합, 각 : 전, 당의 부속 건물
  3. 재 : 왕실의 나머지 가족 건물
  4. 헌 
  5. 누, 정 : 높이에 따라 높으면 누

광화문 등 정문 이름에 '화'가 포함 된 이유
. 번창하다는 뜻
. 백성과 교화하고 감화하겠다는 뜻

잡상
. 수에 따라 건물의 등급이 달라짐
. 많을 수록 중요한 건물

월대
. 축대를 말하며
. 건물의 격이 높을 수록 높다
. 햇볓의 반사를 이용해 냉난방을 하는 이점도 있음
. 십이지신 등 상상의 짐승 많이 조각
. 상월대, 하월대 
.. 악사와 무희가 자리하는 곳

드므
. 목조 건물에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떠 놓는 물 그릇

단청
. 나무 보호 
. 건물의 권위를 높이기 위함


연못과 정자의 모양은 천원비앙이라는 세계관을 표현한 것
. 네모는 땅 원은 하늘로 

분수는 물의 섭리를 거스른다 하여 만들지 않음

'금천'이 있는 이유 
. 배산임수의 풍수에 의거해 물을 만든 것
. 소방수 역할
. 다리에 귀면을 조각해 수호의 역할

치미
. 화재 예방을 기원하며 용마루에 세워
# 효과는... ^^;

. 기둥과 기둥 사이 1칸
. 크기 제안이 있었다

현판
. 건물의 정신을 표현
. 현판의 내용으로 생활하길 바래

바른 정치 시스템
. 사관 
. 언관 : 사헌부, 사간원 등

왕비가 머무는 곳은 용마루가 없다
. 세자를 잉태하는 곳으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잘 통하도록 장애를 없앤다

화계
. 계단 정원
. 풍성함, 우거짐 등을 표현

답도
. 계단 중앙으로 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길
. 봉황, 용 등이 그려져 있음
.. 중국의 눈치로 보통 봉황, 고종이 황제가 된 후 용으로 바뀜

박석
. 미끄러짐 방지 : 신하들의 신발이 반들반들해
. 눈부심 방지 : 신하들이 고개를 숚이고 있어 바닥만 본다

부시
. 처마 밑 새둥지 방지 그물


꽃담
. 담에 있는 이쁜 문향
. 복자 등을 표현
. 박쥐 문향은 중국의 '복'자와 유사해 애용
. 불가사리 : 쇠와 불을 먹는 상상 동물

하마비
. 말에서 내리라는 표지석

등자쇠
. 문을 천장 위로 수평으로 올려 거는 걸쇠


[경복궁]

향원정
. 물의 온도의 차이를 줄여서 못에 집어 넣음



[창덕궁]

돈화문
. 문이 5개 인데 2개는 중국 눈치보느라 못 열었다 함
. 황재만 5개. 왕은 3개

회화나무
. 중국 따라 하기
# 벼슬을 뜻하여 많이 심는 것으로 안다

선정전
. 청기화 건물

연경당
. 순조 아들 효명세자가 사대부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하여 지은 한옥집

옥류천
. 곡수연(물에 잔띄우고 시를 짖는 놀이) 즐기는 장소

 청의정의 논
. 임금이 백성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논
. 벼를 수확하고 그 볏집으로 정자의 지붕을 만든다
# 매년 재현 행사를 한다는데



[창경궁]

.동쪽으로 문이 나있다
.. 법궁이 아닌 이궁(비상시 궁)의 역할이어서 중요치 않게 생각
..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지음
. 단순한 구조

옥천교
. 자연수로 : 옥류천 - 춘당지 - 옥천교 - 청계천
. 일본이 창겨원으로 만들 때 땅에 묻어버려 500년 원형 그대로 보존 됨

박석
. 복원을 잘못해서 반득함
. 원형은 투박함

성종 태실비
. 태실비는 아이의 운명이 순탄하길 기원해 전국 명당에 보관
. 일본이 왕의 권위를 격하시키기 위해 야외 전시품인 것 처럼 전시
.. 다른 태실들은 모두 서삼릉에 모음

춘당지 옆 내농포
. 농사를 지을 논으로 임금이 백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으려 함 
. 일본이 깊이 파고 벗꽃을 심어 연못으로 만듬


[덕수궁]

. 최초 명칭 경운궁 (광혜군) - 정릉동 행궁(선조) - 덕수궁(고종 폐위)
. 전통 궁 구조와 달리 단순

대한문
. 대안문이었으나 불이 난 후 이름이 바뀜
. 정문에 '화'자가 없어 

중화전
. 1902년 화재 이후 건축비 부족해 2층 건물을 1층으로 복원
. 그에 따라 그 앞의 중화문도 1층으로 복원

광명문
. 누각처럼 기물을 전시하고 있음
. 문의 기능 상실

정관헌
. 이화장
.. 오얏꽃 모양
.. 일본이 조선을 이씨 한가문의 나라로 폄하하기 위해 많은 곳에 설치한 문향



[운현궁]

. 가마 - 노듯돌(하마석) - 솟을 대문 => 높은 양반집이란 뜻

노안당 현판
. 대원군은 김정희의 제자
. 집자하여 현판을 만듬 (집자 : 직접쓴 글자가 아니고 글을 따로 가져다 붙여 만듬)

보첨
. 처마 끝 길이를 연장하기도 때어내가도 하는 기능
. 여름엔 길게하여 빛을 가리고 겨울에 때어내 빛을 들여 따뜻하게

겹처마와 부연(서까래), 공포 
. 궁궐의 양식을 일반집에 적용한 것

경송비
. 고정의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소나무에게 정2품 하사를 기념한 비
. 일본인이 사람들이 신성 시 하자 잘라버림
# 고종도 나무를 사람처럼 느꼈다

이로당 고정쇠
. 용도는? ##










친일과 망각


김용진, 박중석, 심인보
뉴스타파
2016년


2장

우리 모두가 죄가 있든 없든, 나이가 많든 적든, 과거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모두는 과거의 결과에 영향을 받고, 그것에 책임을 저야 한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는, 기억을 계속 되살리는 것이 왜 필수적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서로 도아야 하고, 도울 수 있다.
과거와 타협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 하다
과거는 수정될 수 없고,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도 없다.
그러나 과거에 대해 눈을 감은 사람은 현재도 눈이 멀고 만다
과거의 비인간적 행위를 기억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다시 그런 위험성에 감염되기 쉽다.
- 바이체커 서독대통령 1985.5.8 종전 40년 연설


72쪽
정의와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과거 청산을 넘어 과거를 극복하는 길은
올바른 기억교육, 그리고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다.
# 프랑스, 폴란드, 네덜란드, 중국 등은 지금도 기억하고 교육하고 처벌한다


75쪽
(친일파의 후손임을 알고 난 전후의 메일 내용을 보고)
과거를 정확하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다.
...
간극이 좁혀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줬다.



3장. 성공비밀


# 친일파의 성공비결은 부의 세습에 따른 좋은 교육 환경
# 광복 후 친일파는 생각과는 달리 주요 관직이 아닌 의사, 교수, CEO 등으로 이동하며
# 장기적으로 안전한 직업이나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 선회
# 관직은 청렴을 기본으로 하니 눈에 띄기 쉽기 때문일 것
# 대단한 생명력~



4장. 부의 대물림

# 광복후 반민특위가 해채되고 묻혀지낸 60년 조사로는 국가로 환수할 수 없었다
# 친일파가 얍삽하게 자신의 조상 재산이라 소송 걸고 그걸 국가가 찾아줘서 팔아먹고 이민가게 두고 말았다
# 그 일을 계기로 열받은 국민 정서로 노무현정부때 반민특위가 다시 특별법으로 제정되는 기회를 줬지만 아쉽다
# 결국에 비싼 땅은 모두 팔리고 노지, 임야만 남아 거두게 된다
# 그래도 그게 어딘가. 첫 발을 내디딘 것이 중요하다



5장.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
. 독립운동 당시 아내가 39살에 죽고 세남매 9살 아들, 7살, 3살 딸
. 일(독립운동)하느라 한달에 1번 왔다 9살 아들은 그 한번이 너무 좋았단다
. 그 때 가져온 먹을 거리로 10일을 버티고 나머지는 스스로 해결했다 그러나 막내가 영향실조로 죽고
. 아버지를 따라 고아원에 맞겨진다
# 아... 진짜... 슬프다... ㅠㅠ
. 그 9살 아들은 후에 귀국해 빨갱이 소리를 들어 취직도 못하고 아직도 작은 집에서 산다
# 진짜... 챙피하다.

독립운동가 후손 4분의3이 월 소득 200만원 이하
# 아... 챙피하다.



6장 고백

진정한 화해는 잘못을 솔직히 시인할 때 시작된다
"친일 청산의 문제는 지금도 유효하고 우리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견지해 나아가야 할 가치를 재정립하는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 윤리의 문제이자 규범의 문제"
-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10대를 위한 생각하는 헌법




1장. 헌법 기본 원리


왕권신수설 : "왕은 신이 준다"

혁명

-> 사회계약설 :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17~18세기 홉스, 로크, 루소

혁명

-> 입헌주의 : 헌법 -> 민주주의 (부르주아 -> 노동자, 여성)

. 다수의 국민이 지배하는 국가 형태, 인간존엄의 가치


복지국가: 평등권 보장

. 형식적 평등권: 모두가 동등한 절대적 평등

. 실질적 평등권: 조건에 따라 차등하는 상대적 평등

. 형식적 -> 실질적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 국민주권 - 국민에게 권력이 있다

. 입헌주의 - 헌법으로 규정하고 국가는 따른다

. 권력분립, 지방자치 - 권력을 분산하여 견제와 균형 발전




2장-3장. 기본권


법의 구조

. 헌법 - 법률 - 명령 - 규칙


기본권 : 인간 존엄의 가치

. 행복추구권

. 평등권

. 자유권 - 신체, 사생활, 정신생활, 경제생활 (소극적 권리)

. 참정권 - 스스로 결정할 때 자유로운 것 : 투표

. 청구권 - 침해된 기본권 회복 요구 : 청원, 민원, 재판, 형사보장, 국가배상, 범죄피해자구조 등

. 사회권 -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 보장 (적극적 권리)



4장. 국회


국민의 권력 

. 입법 : 국회

. 행정 : 정부

. 사법 : 법원, 헌법재판소


법치는 국민의 자유를 위해 국가를 관리하려고 만든 것


입법 절차 

. 국회 : 제출 -> 심의(소위원회 -> 본회의). 

. 정부 : 이송 -> 공표

. 청와대 : 적용

# 10개월 이상 소요


현재 국회는 회의 비공개, 청원 절차 복잡 등 국민 참여를 막는 다양한 문제점 들이 있다

# 2017.11 지금은 청와대 청원이 매우 쉽고 간단하게 바뀌었다.



5장. 정부

정부 : 대통령(청와대) + 행정부


행정

. 국가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활동

# 국가의 목적은 헌법 수호,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것



6장. 법원

법원은 헌법이 준 사법권을 행사하는 기구


법원의 구조

.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 : 3심 판결

. 특허법원, 행정 법원 : 1심 판결?



7장. 헌법재판소

법령의 헌법에 합법한 것인지 심사하는 기구

 

절차

국민(감시자), 법원 -> 청구 -> 심사 -> 조건 확인

. 맞으면 인용이나 기각

. 안맞으면 각하








(쏭내관의 재미있는)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 기행


1  궁궐 : 왕족의 거처 + 담

법궁 : 주 궁궐 
이궁 : 보조 궁궐

숙정문 : 꾀 정자가 슬기 지자와 비슷하여 인의예지 구조

외전 : 정전(조정) + 편전(사무실) + 궐내각사(기타 궐안의 행정 기구)

내전
. 중궁전 : 구중 궁궐 (9개의 문을 통과해야 나타나는 곳)
. 동궁전 : 세자의위사(경호), 세자시강원(교육)
. 후원

현판 = 편액

'누','루'는 땅에서 높이 띄운 건물로 일과 휴식 용도

지붕
. 종류 : 팔작, 육모, 맞배, 우진각
. 기단 : 들여 쌓기
. 서까래 : 바깥쪽이 얇아진다 (안정성, 미적 원근법)
. 처마산 : 휘어서 더 장엄함 
.. 자금성의 지붕은 일자로 느낌이 규모에 비해 작은 느낌
. 합각 : 측변에 세모 모양의 공간 : 통풍기능 # 원리는? 추위는?

궁궐에는
잔디가 없다 - 잔디는 무덤에만 쓴다
불교유적도 없다 - 억불 정책, 유교의 나라
=> 일재 잔재

근정전
. 경사 1m 높이 차이
. 행간 계단 형태로 지어 지붕을 수평으로 만듬
. 천장 용의 발톱 7개(황재) 흥선대원군의 의지를 볼 수 있다 원래는 5개

2 외전

경복궁
. 임진왜란 당시 난민 방화설은 근거 부족
.. 사관이 없어 왜구 기록에 의해 확인 됨 (왜구 1부대가 지나갈 때 멀쩡했음)
. 터가 불길하다 외면하며 273년 지난 -> 왕권 강화
. 19세기 고종 흥선대원군 복원
. 1996년 부터 일제 시대 회손된 부분 복원 시작

창덕궁 
. 임진왜란 후 법궁으로 복원하여 쭉~ 이용


3 종묘 사직 = 왕실 + 백성
. 사(토지) + 직(오곡) : 사직 공원은 일재가 격하해서 표현한 것



2부 대문

1. 해지
. 청렴결백의 상징
. "왕이 계신 곳이다" = 하마비 역할

흉배 - 문신은 학, 무신은 호랑이, 사헌부(감찰)은 해태

2 경복궁
영춘문 시멘트 건물?

3 창덕궁
금천교 1411년 제작 
약600년 건재

4 창경궁
홍화문 왜란 이후 1616년 제건 지금까지 약400년

5 경운궁(덕수궁)
정문은 인화문(남쪽) 사라지고 동쪽의 대안문이 정문으로 이유 모르게 이름이 대한문으로

6 경희궁
서울 역사 박물관 앞 다리 금천교
원래 홍화문 자리는 구세군 회관 빌당 자리 (표지석 있다)
일제시대 남산 박문사 정문으로 이용 
광복 후 신라호텔 정문으로 이용
지금은 공원 정문? ㅡㅡ;


3부 외전 


1 정전
정전 조회는 평균 한달 4번
경복궁 근정전 : 부지런(근) 다스려야(정)
. 월대의 난간 : 고종 때 만든 듯
. 향로 : 하늘의 기운을 담는다는 뜻으로 경운궁과 단 둘만 있다 
.. 예상 : 새 시대를 여는 궁에만 있는 듯
. 회랑 : 원래 막혀서 창고와 사무실로 이용
.. 일제가 전시장 개조로 뻥 뚫어
. 전돌 : 건물안 바닥 흙을 구어 만든 것

창덕국 오얏꽃
. 이씨 왕조, 이조 시대, 이조 실록
. 일본이 조선은 황족이 아니라 '이'씨란 한 가족 국가라는 뜻으로 격하시키기 위해 설치

2 편전
경복궁 사정전
. 경복궁 좌우 건물
.. 좌 : 천추전 : 추 : 서쪽
.. 우 : 만춘전 : 춘 : 동쪽
. 행각(복도)로 연결 되었으나 소실
.. 임금은 흙을 밟지 않는다
. 남행각 : 내탕고, 왕실의 재산
.. 호 이름은 천자문 순서 : 천자고(1호), 지자고(2호) : 

해시계 보는 법 (24방위, 24절기, 12지간 표시)
. 묘시 : 5~7,
. 오시 11~1시,
. 유시 5~7시 
# 해당 시간에 종이 울렸다. 문 닫으려고 

3 궐내각사

경복궁
내의원 : 왕실 병원
수라간 : 수라상을 장만하는 부엌
사옹원 : 음식 재료 장만 및 궁중 음식 관장
승정원 : 임금의 명령을 각 부서에 전달하는 비서실
홍문관 : 임금에게 제공하는 자료 등을 준비하는 자문기관
빈청 : 우의정, 좌의정, 내의정 등이 회의 하는 곳
내반원 : 궐내 음식과 경비 등을 담당하는 내간들이 일하는 곳
검서청 : 각 부서를 보좌하고 관련 문서 필사하는 곳
선정관청 : 임금 경호 담당
대전장방 : 임금 시중 드는 내관이 지내는 곳
규장각(내각) : 조선중기-국립중앙도서관, 후기-국정심의 최고기관

창덕궁
의장고 : 각종 행사 장비 보관
무비사 : 병사들의 무기 목록 일정 등 관리 : 예)수문장 교대식
상의원 : 궁궐 의복 재산, 보물 등 담당
결속색 : 보디가드 (별운검)
내병조 : 행사 의장대
호위청 : 궁궐 호위
상서원 : 옥새, 각종 서류, 마패 등 관리
예문관 : 임금의 문서 담당
홍문관 : 중요 국내외 서적 보관 임금 자문기구
# VR 이용 원래 모형 본다면 ^^

궐외각사 = 오늘 세종로 = 조선 육조거리
. 의정부 : 정전/편전에서 결정된 정책 실행하는 최고의 행정기관
. 이조 : 인사 행정
. 한성부 : 서울시청 역할, 한성이란 지방의 행정 기관
. 호조 : 재경부
. 공조 : 공사 담당 #토건 사업
. 형조 : 법무부
. 병조 : 국방부
. 사헌부 : 감사원
. 중추원 : 은퇴한 당상관 이상의 고위관리를 대우하는 기관
. 예조 : 문광부 : 예약, 제사 등 행사 담당

4부 내전

1 침전
. 경복궁-강녕전, 창덕궁-희정당, 창경궁-환경전, 경운궁-함녕점, 경희궁-융복전
. 용마루 없다
. 세자(용)이 태어날 곳에 다른 용이 누르면 안됀다하여 없음

2 중궁전
. 중전마마 = 내명부 총괄
. 중전은 중전마마의 줄임말
. 내명부는 궐내 모든 여인을 뜻함
.. 내명부 품계 
... 정1~5품 빈, 소의, 소용, 소원, 상궁부터 무수리
... 종1~4품 귀인, 숙의, 숙용, 숙원
. 교태전 : 조선시대 맨홀 (해수시설)

3 대비전
. 창덕궁 대조전
.. 순종 때 한일합방 체결 현장이고 생을 마감한 곳
.. 띁어서 경복궁 교태전 지을 때 사용
. 경훈각 
.. 요강 받는 작은 문이 있다

. 경복궁 자경전
.. 꽃담 : 효를 표현
... 파도-물-강물-바다-구름-비는 순환을 뜻하며 영원 상징
... 포도, 연실, 석류 등은 번영을 뜻함

4 동궁전
. 동궁 = 춘궁

5 빈전과 선원전
빈전 : 상여가 나가기전 관은 모시던 건물 : 태원전
선원전 : 선대 어진을 모신 궐내 작은 종묘


5부 후원

1 경복궁
. 교태전 아미산
. 돌 연못 4마리 두꺼비들 모두 형태 다르게
. 자연미 강조

2 창덕궁
. 부용지, 부용정, 주합루, 어수문
. 물고기-물과의 관계를 임금-신하/백성에 비유
희우정 가뭄에 비가 내려 기쁘다 김호도 화백의 정조 어진을 그린 곳
영화당 과거시험, 군사훈련, 1692년 건축(300년 유지)

근정전 

하향정
. 경회루 뒤 작은 정자로 이승만이 복원해 낚시를 함 (하향정)
.. 다리 방향을 잘 못 만듬 (정상은 북쪽)

경회루 돌기둥 총탄자국은 6.25의 흔적



자선당 : 궁궐 화장실

창덕국
능허청 : 650년 다래나무 (300년 된 건물)
규장각 : 700년 향나무
돈화문 : 400년
금천교 : 600년

창경궁
홍화문 (1616) : 400년 세월
. 명전문 = 명정전 : 창호, 전돌, 단청의 세월 보기
옥천교 (성종14년) 500년 세월

경운궁
. 안화문(남쪽) 흔적, 돌담에 있다
. 서울 광장 궐외각사 자리
. 대한문 : 23m 앞에 위치
. 금천교 : 하마비 원래 위치 아님
. 석조전 : 1900~1910 걸쳐 지음

. 중명전 : 정동극장 뒤 을사늑약 체결, 헤이그 특사 보낸 장소












한국생활사박물관 4(백제생활관)




한국생활사박물관 4 백제
2001년


수도
. 풍납토성 - 몽촌토성으로 한성 400년 역사 확인
. 이후 웅진(공주), 사비(부여)로 이동하며 약200년
. 총 6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

농업기술
. 도성 : 연꽃 무늬 벽돌, 바닥돌, 배수시러, 집주소 
# 굉장히 현대식 도시로 생각 됨
. 귀족문화 : 사기, 붓글씨 등 중국 문화와 교류하여 이해 깊어
. 풍류
.. 궁남지(인공호수로 노동과 자금이 많이 들었을 것)
.. 음악 발달 : 내용은 백성의 정서와 애환을 다룸
.. 활쏘기, 바둑 등
.. 풍류와 낙천성이 백제의 힘이 었을 것으로 예상
. 왕궁
.. 왕관 : 불꽃 무늬 : 화려한데 사치스럽지 않은 품위 #난 화려해 보이는데
.. 청동거울(12가지 돌기와 글 써져있음
.. 금속공예의 모든 기법 사용 : 주금, 단금, 조금, 투조 등
# 아이디어
# 3D로 web상에 유물을 볼 수 있게 해 놓고 클릭하면 설명이 나오는 사이트가 있으면 좋겠네
# 박물관 영상을 모두 한 곳에 모아 놓은 사이트도 좋고


대가람 (사찰)
. 기술 혁신
..  1탑 1금당(불상) -> 3탑 3금당(익산미륵사)
..  익산 미륵사 석탑 복원 시 1년간 4만5천명 동원했다 아파트10층 높이
..  목탑 -> 돌탑
. 해외 전달 : 일본 아스카지
. 예술 : 불상의 온화한 미소

무역
. 중국, 일본, 모두 교역
. 초기 조선술 부족으로 고구려 연안 등 해안을 따라 이동하다 후기에는 직항 개발하여 교역 확대

# 일본과의 교역은 백제에게 어떤 이득이 있었던 건가?












한국생활사박물관 5



한국생활사박물관 5 - 신라
2001년


# 신라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
토우 - 생활을 엿보다
황금 - 신라의 상징
불교 - 종교가 아닌 높은 문화로 인식
바다 - 국제 무역항 개운포
고분 - 신라의 수도는 경주 한 곳 뿐. 신라의 한계


[신라인의 조건]

불교
. 전통 신앙의 신격을 해체하고 윤회를 바탕으로 현재 삶에 복종
.. 통치강화 
# 한반도 통일의 힘?
# 천년왕국의 이유?
. 이차돈
.. 천경림(과거 신앙) 제거하고 흥륜사 건설 진행
.. 천경림 제거 이유로 처형하였으나 신기한 일 발생하여 불법 적용
.. 법흥왕(불법을 지킨다)
. 남산 : 서라벌 = 아크로폴리스 : 아테네
.. 불상,암자 : 도시 = 신전 : 도시
.. 불상, 암자가 많은 이유는 통일 신하 이후 부터 전국의 물자가 도시로 몰리며 부자가 생겨나고 
... 귀족은 중산층은 남산에 개인 암자 건축

화랑
. 춤 + 노래, 국토순래를 이용하여 수련
. 춤, 노래 : 찬기파랑가 (기파랑이란 화랑에 대한 노래)
. 국토순래 : 삼척 (사선봉, 금란굴), 고성(삼일포)
. 최치원은 오묘한 사상에서 풍류 강조 ->  풍월도, 화랑도
. 화랑도
.. 유교 : 충, 효
.. 도교 : 무위자연
.. 불교 : 악행을 하지 않고 선행을 한다
# 좋은 것만 가져와 통합
# 세뇌와 강력한 교육으로 과한 경우도 있어 위험

유학
. 불교로 사회를 조직할 수 없어 '국학'을 통해 유교 발달
. 골품 제도로 능력은 있으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중국으로 유학하여 성공 : 최치원, 설계두 # 장보고

골품
. 장점 : 집중력 강화
. 단점 : 지역, 계층의 편중 -> 분열 -> 내분 -> 멸망 
.. 단점이 해결되지 않고 후대까지 과제로 남음


[국제도시 서라벌]

시장
. 서민 시장, 귀족 시장이 따로 
. 시장을 정부에서 관리
. 귀족은 로마, 이슬람, 중국의 사치품 소비
. 측정기술 발달 : 자, 저울, 되, 해시계, 물시계(누각전, 누각박사), 첨성대, 달력(사천박사, 천문박사)

연회
. 주사위 놀이, 처용무, 동궁(월지-안압지)
. 악기 (신라금-가야금, 피리, 완함, 비파 등)
. 포석정 (제사 지내는 곳으로 예상)

패션
. 금관 - 숲 형상화 #샤먼
.. 나무의 열매 : 나무는 하늘과 연결
.. 사슴뿔 : 신의 의지를 전달
.. 새날개 : 새는 신과 소통
. 허리띠 : 유목 이동 시 사용하던 각종 연장에서 유래
. 북아시아 유목민, 몽골과 유사
. 금세공기술 뛰어남

마을
. 9주 - 군(9주*10군) - 현 + 5소경
. 삼(삼배), 뽕(비단), 과수, 소/말 축사, 인원수 등 모두 국가에서 수량 관리
. 16~60세 납세자
. 관리한 수치를 바탕으로 조세
. 통계
.. 남 < 여
.. 이사 비율 15%
.. 소 < 말 (#현재의 자동차가 말이고 전쟁을 위해 더 많이 키움)

토우
. 과거의 사진

한가위
. 길쌈 시합 부터 춤 노래하는 축제
.. 길쌈 : 배를 짜는 것은 신성한 생산활동, 여성-왕실 주도
. 명침 : 가배 - 가위 - 한가위 # 한가위의 유래는 신라


[불국토의 나라]

기도 대상의 변화
. 불상보다 탑(1탑) -> 탑(2탑)보다 불상

. 한국 족의 기초를 이룸
. 최조의 음관 적용

불상
. 초기 : 석가 = 부처, 그 외는 아라한 (수양하는 자)
. 이후 : 대승불교로 
. 누구나 도를 깨우칠 수 있다
. 깨우친 자는 보살
. 석가 가운데 주위에는 다양한 보살 
. 석가는 단순한 옷차림, 보살은 화려함
. 8세기 '아미타불'유행
.. 아미타불은 극락을 바란다는 뜻 : 나무아미타불(나무는 귀의합니다라는 뜻)
. 후반에는 '비로자나불' (태양이란 뜻) 유행

죽음
. 불교도 전파로 화장 늘어
. 널 : 관
. 덧널 : 관 + 작은 곽
. 돌무지 덧널 : 돌무지 + 관 + 작은 곽
. 돌방무덤 : 출입구가 있는 무덤

건물
. 불국사
.. 천운교/백운교 - 자하문 - 대웅전 + 관음전 => 석가불 세계
.. 칠보교/연화교 - 안양문 - 극락전 => 아미타불 세계 
.. 비로전 => 비로자나불 세계
.. 탑 : 법화경에 의거
... 다보탑 : 석가 이전 '다보여래' 등장 이를 상징 # 다보는 누구인가?
... 석가탑 : 다보여래와 나란히 앉아 설법하는 '석가여래'
# 여래는 무슨 뜻?

. 석굴암
.. 통로 : 수미산(상상의 산)의 사대천왕, 통행료를 받는다(마음 소의 띠끌), 각자의 방향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다
.. 전실 : 금강역사
... 아금강역사 : '아'는 산스크리트어 첫 글자
... 흠금강역사 : '흠'은 산스크리트어 마지막 글자
... 입모양으로 누군지 알 수 있다
.. 주실 
... 불상 : 이상형의 석가 조각 (중국 당나라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의 석가 모습과 크기 일치
... 대범천 - 문수보살 - 십대제자 중 5 - 십일면관음보살상 - 십대제자 중 5 - 보현보살 - 제석천
... 관음보살은 석가의 자비심을 표현하므로 석가와 한 몸이어 불상 뒤에 배치


[신라가 주는 교훈]
개방적이면 흥하고 패쇄적이면 망한다

사치는 지방의 통치력을 약하게 하고 
통치가 약하면 조세가 적어져 경제력이 약해지고 국력도 쇄한다


[불교]

남방불교
. 옛 가르침 그대로, 전통, 계율 중시
. 호칭 : 소승, 상좌부
. 국가 : 스리랑카, 동남아시아
. 명상, 지혜를 얻으면 아라한, 나한
. 부처의 전생은 보살

북방불교
. 대중과 함께, 깨닳으면 모두가 부처 가능
. 호칭 : 대승(Mahayama : 마하야마), 천태종, 화엄종
. 국가 : 중국, 일본, 한국(달마대사)
. 보살은 부처 되기를 포기하고 교화에 전념하는 이타적 성인
. 미륵은 미래의 보살

티베트
. 대승과 밀교 사이
. 호칭 : 라마교 (라마는 선생이란 뜻)
. 부처가 다섯
. 타라보살은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10: 우리가 사는, 우리가 만들 대한민국



1945 0811 소련이 일본과의 전투에 참전으로 미국 견재하고 협상하여 38선 북쪽으로 받아냄
. 남쪽은 미국 : 미국주도(미군정) + 친일 중용
. 북쪽은 소련 : 인문주도(조선) # 자치

1945 0815 해방 광복 조선건국위원회(건준)
. 여운영
. 건국동맹 + 기타단체
. 치안유지
. 전국조직으로 지부(인민위원회)도 있었다.

1945 0906 건준이 조선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으로 전환
.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으로 대립
구분중도
친일즉시청산정부수립 우선
토지공짜로 배분정부가 사서 되팔기
인물박헌영이승만여운영, 김규식
통일민족주의 : 김규식, 김구

1945 12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 미소공동위원회 
.. 신탁통치 5년 + 임시민주주의정부
. 동아일보 신탁통치 강조 오보로 반대집회 발생
. 좌우 지도자로 분열 (김구 등 vs 박헌영 등)하고
. 미소공동위원회 성과는 없어짐

1946 7 좌우합작위원회 구성
. 세력이 약해 
. 여운영 피살

1947.9     한반도 문제 유엔에 넘겨졌으나
1948.9.9  소련이 거부하여 분단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북한 정부 수립
1948.5.10 남한만 국회의원 총선거
1948.7.17  제헌국회 : 법을 만드는 국회 
. 반민족 행위특별 조사위원회(반민특위) 발족했으나 친일파 방해
1948.8.15 대통령 투표 


1950.6.25 
. 배경 
.. 국내 : 김일성(국토완전론) vs 이승만(북진통일론)으로 정부 대립
.. 국외 : 자본주의(미국,일본) vs 사회주의(소련, 중국)로 사상의 대립 - 냉전시대
... 1949.10 중국, 중화인민공화국 세움
. 과정
.. 6.25 북한 남침
.. 6.26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최
.. 6.28 서울 빼앗김(한강 다리 폭파)
.. 유엔군 참전
.. 9.15 인천상륙작전
.. 9.28 서울 수복 (부역자 처단)
.. 11월 중국군 참전
1951
.. 1.4 후퇴 (서울 빼앗김). 38선 근처 대치
.. 7.10 정전 회담 시작
1953 7.27 정전 협정 : 북한, 중국, 유엔군 (이승만은 정전 반대로 제외)
# 2년동안 협정 회담 했네. 그런 중에도 전투는 계속 되었을 것
# 소련은 왜 참전 안했을까? 북한이 하겠다고 하니 허락하고 무기 대거 준 듯, 한반도보다 동유럽에 관심
. 결과
.. 사람 피해 : 약500만 사망, 전쟁고아. 이산가족 발생(1985년 부터 상봉 시작)
... 민간인이 더 많다 : 지역을 뺏고 뺏기면서 인민재판 등으로 다수 사형 # 마녀사냥 자행
.. 반동, 빨갱이 등의 이념갈등으로 정부권력강화에 이용->  다양한 사고를 제약 # 국가발전 저하
.. 북한의 사람도 물자도 더 피해를 많이 봤다 #왜?

1950년대
. 경재
.. 6.25 이후 구호물자에 의지. 미국의 남아도는 삼백(밀가루, 설탕, 면직물) 원조로 경제 일으킴
.. 대신 농업은 망하고 인구는 도시로 이동
.. 미국은 자본주의 광고 효과와 재고 처리 및 수익을 노리고 적극적 지원
. 사회
.. 전쟁 후 (미뤘던)결혼, 치료약(마이신) 등으로 인구 증가
.. 일자리 부족으로 도시로 인구 몰림
... 공장 일꾼, 판자촌, 또순이, 자갈치 아지매 등 발생

이승만
1948 초대 대통령
1952 3대 대통령 발췌개헌 (간선제 -> 직선제) 자유당 창당 
. 당시 국회의원 대통령제 다수 반대하며 내각제 지지
. 개엄령 선포 빨갱이라며 탄압 
. 공개 선거로 개헌 통과 : 공개이나 부정선거로 당선
1954 사사오입(반올림) 개헌
. 203명 중 135명 찬성(136표가 과반수 인데 135.333...이 나와 반올림으로 개헌) 
. 이승만이 계속 대통령을 하기 위한 법 통과
1956 3대 대통령 당선
. 민주당 신익희 투표전 사망
. 진보당 조봉암 (1959년 국가보안법으로 사형)
# 냄새가 난다

419 혁명
1960 3.15 부정선거 : 이승만 85세(당시 평균연령 51세)로 사망 시
. 부통령인 자유당(이기붕)이 물려받아야 했기에 강력한 부정선거 
.. 학교동원, 3인조 선거, 투표용지 공개, 사전 투표, 투표함 바꾸기 등등
.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마산 시위
. 고1 김주열 사체 발견되어 폭발 (최루탄이 얼굴에 박혀 있었음)
4.11 마산 2차 시위
4.18 서울 고려대 학생 시위 - 깡패 동원하여 습격
4.19 전국 시위
. 비상 계엄령으로 경찰 총으로 진압 (피의 화요일)
4.25 서울대학 교수단 시위
4.26 전국 시위 파고다에서 이승만 동상 끌어내. 이승만 물러남(하야 선언)
. 국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물리친 최초의 혁명
. 민주주의 발전 토대
. 경제 발전, 혁명 뒷처리 처벌에 소극적으로 
7월 국회의원 선거  
. 개헌하여 내각 책임제로 변경
. 민주당 정부
8월 대통령 윤보선, 국무총리 장명 선출


박정희
1961 5.16 군사정변(구테타)
. 명분 : 공산주의로 부터 나라를 지키겠다. 바람직한 국회의원이 나오면 군으로 복귀하겠다
. 군정 시작
12월 개헌하여 대통령제로 바꿈
. 중앙정보부 설치
. 민주 공화당으로 출마
1963 10월 5대 대통령으로 당선
1965 6.22 한일협정 : 경제 발전 자금 마련위해 졸속 협상
1966 7월 배트남 파병(친미 자금 마련), 파독 광부 간호사(자금 마련)
1967 5월 6대 대통령 당선 
1969 10월 3선 개헌 (3번까지 대통령 출마 가능) 통과
1971 1월 7대 대통령 당선 vs 김대중 : 돈으로 부정선거 
미중 정상회담으로 냉전이 풀려가는 분위기
1972 7.4 남북공동성명
1972 10월 전국 비상 계엄령, 유신 헌법 발효, 유신 독재 시작
. 명분 :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헌법 필요 
. 내용
.. 간접 투표(통일 주체 국민 회의 : 체육관 선거)
.. 대통령 연임 가능
.. 국회 해산 가능
.. 사법 임명권
.. 긴급조치권 (1974.1 1호 ~ 1975.5 9호) 
# 남북공동성명은 유신헌법을 위한 밑밥
1972 8대 대통령 당선
1973 12.24 장준하 유신반대 개헌 청원 100만 서명 운동 시작
1974 10.23 동아일보, 학생시위보도 - 중앙정보부에서 편집국 잡아들임
. 기자 180명 '자유언론실천연합' 투쟁
. 광고 끊어 압력 - 기자 해고하고 권력에 굴복
1978 9대 대통령 당선
1979 10.16 부산대 유신 반대 시위
10.17 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 마산 시위 -> 부마 항쟁(부산+마산)
10.18 공수부대 투입
10.26 김재규, 박정희 살해 : 부마항쟁에 대한 유신 권력자간의 의견차
# 약9년간의 독재 마감
# 대통령 선거 월이 불규칙한데 왜지? 권력자 입맞에 맞추려니 왔다리 갔다니?

1962 1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장면 정부 때 마련한 계획 # 박정희가 아냐~
- 돈 부족으로 외화 빌려 쓰고
- 쓴 외화 갚기 위해 달라 필요
- 경공업화 : 가발, 신발, 옷감 등 (1960년대)
- 수출 활성화
- 중화학 공업화 : 조선, 자동차 등 (1970년대)
. 문제점
.. 국제 경제에 취약 (1970년 석유파동)
.. 대기업 위주 성장으로 정경 유착
.. 노동자 인권 무시 : 전태일 분신(1970) 이후에야 노동 인권 인식 시작

1970년 새마을 운동
. 농촌 살리기 운동
. 전기, 도로, 집 등 신식으로 바꿈
. 먹고 살기 힘들어 도시 유입 가속 (농촌인구 1960 65% -> 1980 33%)
. 도시화 : 서울 위성도시(부천, 성남, 안양, 수원)에 아파트, 판자촌, 달동네가 함께 생활
. 대중문화 발달 : TV연속극, 만화, 연황, 대중가요 등
. 금지 사항 생김 : 장발, 미니스커트, 가요 등

1979 12.6 통일주체 국민회의 선거
. 10대 대통령 최규하 (유신정부 국무총리) 당선


1980년대
. 3저 현상 (석유, 금리, 달라) 수출 증가
. 중소기업 발전 #왜? 수출로 국내 자금 돌아 내수 경기 활발
. 86년~88년 3년동안 1년 경제 성장율 평균 12%
. 중산층 다수 : 기준은 자가용 보유 여부
. 88년 올림픽 개최
. 89년 해외 여행 허용
. 89년 독일 통일 등 냉전 종식 


전두환
1979 12.12 사태 
. 전두환 노태우 군부가 정부 장악
. '하나회'가 육군 총책임자 가두고 시행 # 명분은 10.26사태와 연관지어 군수내부 체포
. 신군부 시작
. 방송 장악, 국회의원 등 지식인 삼청교육대 등으로 정리
. 헌법개정, 대통령 7년재, 간접 투표
1980 5.15 서울역, 헌법 개정과 개엄 해제 시위
5.17 쿠테타.  전국 계엄령 확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계엄군 무력 진압 - 시위대 시민으로 확대
5.12 총 발상
5.27 전남도청 총 공격
1980 8월 최규하 압력으로 물러나고 전두환 대통령 당선 #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회에서 간선제로 선출
. 권력강화 법률 추가, 땡전 뉴스
. 녹화사업, 대중문화 발전 : 칼라TV, 스포츠(야구, 씨름 등)
1981 2월 대통령 당선

1983 유화 조치 : 학생 저항이 강해져 유화 정책으로 방향 바꿈
1985 2월 신한민주당(야당) 다수 국회의원 당선
1986 야당, 직선제 개헌 운동
1987 1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발생
4월 호헌 조치 : 기존 헌법을 지킨다는 뜻 : 노태우에게 정권을 이양하기 위한 사전 작업
5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조직
6.10 민주정의당 후보 노태우 발표 
6.10~6.26 오후6시 대규모 시위, 전국22개에서 28개로 확대, 100만 이상 참여
6.29 민주화 선언 발표. 노태우 직선제 약속 # 이미지 세탁, 야권 분열로 승리할 것 예상한 선택
9월 노동조건 개선 등 민주 항쟁 지속 120만 이상 참여
12월 대통령 노태우 당선 : 야권 김영삼vs김대중으로 야권표 나뉨
. 헌법 수정 대통령6년제
. 권력분산, 노동환경, 임금 문제 개선
. 국회의원 선거 첫 여소야대 정국으로 견재 정치 가능



1990년대
. 반도체, 컴퓨터, 휴대폰 발달로 세계시장 진출
. 외국인 노동자 일 가능 

1991 남북유엔가입, 상대정부 인정
. '남북 기본 합의서' 교류 현력 약속

1992 14대 김영삼 당선 '문민정부' 여당 
1995 지방자치 시작
1996 OECD 가입
. 빚(외국자본)으로 생산 수출하는 체계 -> IMF 원인
1996 8.26 전두환, 노태우 법정에 세움
1997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17년형 선고 
1999 12월에 김영삼 사면해 줌
# 왜? 여러설 중 기존 여당의 지지와 후원금 등이 가능성 높은 듯

1997 15대 김대중 당선 야당
1997 11월 IMF 발생
. 외국 빚 못 상환해 기업 망해 
- 은행 망해 - 외환 이탈 - 외화 부족 - 국가 부도
- 부도 막으려 IMF에게 외화 빌림 - IMF가 수금하기 위해 간섭
- 사업 정리 - 해직자 증가 - 경기 하락 - 국가 경쟁력 추락
. 금 모으기 운동으로 2001년 IMF빚 청산
. 자금 경색, 비정규직 양산 - 양극화 시작
. 1990년 후반 한류 시작
1997 햇볕정책
1998 소500마리 북으로 지원, 금강산 관장 시작
2000 6월 남북정상회담 '6.15 남북 공동 선언'


2000년대

2002 16대 노무현 당선 '참여정부' 야당
2002 한일 월드컵
2005 여성차별적 호주제 폐지
2007 10월 남북정상회담 

2007 17대 이명박 당선 여당
. 경재 성장 약속으로 당선

2012 18대 박근혜 당선 여당

역사는 흐러간다
우리는 그 위의 잔물결
지금 이순간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9: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으로


1910.8 대한제국 멸망
조선총독부 통치 시작 ('독'은 관리를 뜻함)
헌병경찰제도 시행
1910.12 조선회사령 발표 : 조선 내 회사 인허가 권리 소유
* 대한제국 -> 조선 호칭 변경하며 일본의 지방으로 귀속

1911.8 조선교육령 : 일본인 만들기 교육 
1912.4 경찰범 처벌규칙 : 재판 없이 처벌 가능 
1918.10 동양척식주식회사, 토지 조사 사업 완료(1910시작) -> 일인 토지 거래 권리 인정으로 거래가 증가하고 세금이 많이 걷힘  
 -> 농민은 삶이 더욱 어려워져 산, 만주, 일본 등으로 이주 

1928 전국 철도, 통신망 구축 (1905년 시작)
. 조선의 자원을 일본으로 빠르게 수송하기 위한 것

1911 신흥 무관학교 10년 독립군 배출
1912 고종의 지시로 비밀조직 대한독립의군부 설립
1915 대한 광복회 : 황제가 아닌 국민 주권을 우선하는 독립군

1918.1 
. 윌슨 미국 '민족 자결주의' 선언
1차 세계대전 종결 후 선언
. 각 식민지는 스스로 독립할 수 있다
. 미국의 숨은뜻은 타국이 식민지를 가진 강대국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음
. 러시아 레닌도 동참하며 소련을 세움
 
1919.2  일본에서 2.8 독립 선언 유학생 주축
1919.3 3.1 운동 시작
. 고종 장례식을 기점으로 준비
. 파고다 공원 + 태화관(33명)
. 6월까지 국내외에서 진행
. 방법 : 철시(가게), 파업(노동), 농사거부(농부), 무력(경찰, 면사무소)
. 일본기록 : 1만3천명 투옥, 550며 사망, 1천4백명 부상 -> 국제적 비난
1919.4 대한 민국 임시 정부 수립 
. 국제적 비난과 3.1운동의 열기에 의해
. 기존에 뿔뿌리 흩어져 활동하던 여러 임시정부가 합쳐짐
. 국민이 주인인 정부 (왕 아님)
. 상하이 (안전하고 외교에 유리한 지역)

1919.11 의열단 결성
. 정의로운 일을 열열히 실행한다는 뜻
. 무장 투쟁으로 일본을 떨게하다
. 강경 -> 유화 변화 계기

유화 정책 : 친일파 양산
. 문화정치
. 언론 허가
.. 조선( ), 동아( ) 개간 했으나 검열 편집 
. 회사령 폐지
.. 일본기업 많아지고 돈 있는 사람만 좋음
. 경성 제국 대학 입학 등
.. 총원 30%만 조선인 입학 대부분 친일파

1920.6  봉오동 전투 (홍범도)
1920.10 청산리 전투 (홍범도 + 김좌진)
1920.11 산미 증식 계획 : 일본 흉년으로 부족한 쌀을 조선에서 생산해 공급하기 위한 계획
1922.5 친일
. 이광수 <민족 개조론> 발표
.. 일본인 처럼 민족을 발전 시키자 주장 
#투쟁보다 항복해 편히 살자
. 최남선

1923.8 임태도 소작 쟁의 (농민) 추수 소작료 거부


레닌, 여운영, 박헌영 사회주의 
1924 조선 노동 총연맹 (260개 단체)
. 1950 조선 노동당
. 1927 노동 총연맹-농민 총연맹으로 분열

1925.5 치안 유지법 발표 
. 헌병 경찰 제도 폐지 
. 경찰 인력 3배로 늘리고 
. 무력 -> 감시 전환

1929(확인?) 원산 총파업
. 약 80일간 투쟁
. 노동자 주도
. 수입이 없어 식량을 못 구해 패배

1926.4 6.10 만세 운동
. 순종 장례식에 맞춰 실행
. 성인들의 활동은 감시를 받아 사전 발각 가능성이 높아 학생 주도
. 국민에게 구체적 투쟁방법 제시
.. 물산장려운동 : 일재 말고 국산 쓰자
... 물가가 올라 서민은 고생하고 돈 있는 사람만 좋았다
. 당시 회사령 폐지로 일본 기업 증가

1927 신간회
. 민족주의 + 사회주의 지식인 총 집결
. 지회 100개 이상, 회원 4만명 
. 초대 회장 홍명희 (임꺽정 저자)
. 독립운동 전국 확대
#일제는 신간회를 그냥 둬?

1929.11 광주 학생 항일 운동
. 희롱당하던 여학생 2명과 의로운 남학생 1명에 의해 시작 
. 천왕 생일에 맞춰 11.3 광주에서 시작 전국으로 확대 

1931.5 신간회 닫음 
. 일본의 압박과 사회주의 변화로 분열

1920~30년대 생활상
#사진 있다
당시 본점 = 현 명동
. 자본주의 시작되는 사회 풍토
.. 쌀2가마 = 구두 신발 1켤레
.. 아이스커피 등장
. '연애'시작, 기존엔 정해진 결혼
. 모던걸 : 자본주의 신여성
.. 지식인 (나혜석-이혼 고백서, 최승희-무용, 단발머리) 
. 3.1운동 이후 태어나 20대 
. 꿈의 직장 : 공무원, 교사, 은행원 등
# 2016년 지금과 같네
. 백성은 매우 가난 
.. 토막민 : 움집, 청계천 근처 다수
.. 세금민 : 세민-생계 스스로 유지, 금민-생계 도움으로 유지
.. 약 10만5천명 이상 예상(경성인구 60만) 
#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떠오른 다

1차대전 이후 패전국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 미국과 일본은 늘어난 경제력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미국은 대공황이 발생하고
일본은 조선에 팔아 해결하고 나머진 전쟁으로

1931 민족주의 조선 어학회 : 한글 보급

1931.9 만주 침략
 
1933 사회주의 경성트로이카, 조선 공산당 재건 (이재휴)

1937.7 중일 전쟁 - 난징 대학살

군인부족 -> 조선인을 일본인화하는 작업 시작
1937.10 황국 신민 서사 암송
1938.4 국가 총동원령 : 조선의 모든 사람, 물자 전쟁에 동원
1939.10 징용령 실시, 제2차 세계대전 시작(독일-히틀러, 이탈리아-무솔리니)
1940.2 창씨 개명, 위안부 운영

1941.12 태평양 전쟁
. 동남아에서 자원을 수입하는 미국이 일본이 말을 안들어
. 일본으로 가는 돈과 석유를 끊음
. 일본은 열받아 진주만 공격
. 미군 참전

1943.3 조선어 과목 폐지  #이때까지 조선어가 있었다는게 신기
1943.8 징병제 실시, 곡식 강제 공출
1943.11 학도병 지원제 발표 : 지원이 아닌 강제로 끌려 감



[독립군]

30년대 초 
조선 혁명군 : 남만주 (영릉가 전투)
한국 독립군 : 북만주 (쌍성보 전투, 대전자령 전투)

1935 민족 혁명당 : 김원봉(조선의열단)이 이끌어 여러 단체 규합
-> 1938 조선 의용대로 

1936 동북 항일 연군 
. 사회주의 사상
. 중국 공산당 지원 -> 김일성
. 보천보 전투

임시정부 결성
1925 이승만을 대통령 자리에서 쫒아냄
- 임시정부 본부가 아닌 미국에 거주
- 미국 후원금 개인이 사용
- 국제 연매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통치 제안 등

1931. 10 한인 애국단 
- 김구, 이봉창(1931, 천황 폭판 테러 실패), 윤봉길(1932,상하이 점령 행사장 고위 간부 살해)
- 일본에 대한 테러로 중국 국민당 지원 받음

1940. 충칭에 정착, 
- 한국 광복군, 일본에 선전포고(독립된 국가로 세계에 인식 시키기 위함)
- 건국 강력 발표 : 삼균주의 (정치, 경제, 교육 분야에서 국민들이 같은 권리를 같는다)
# 현 민주주의의 근간을 만든 듯. 매우 진보적 느낌 강함

1942 여러 단체가 합쳐짐 (민족혁명당 등)

1943.11 카이로 회담
. 미중영 전후 논의
. 대한민국은 '적절한 시기'에 독립 시키기로 협의 

1944.8 건국동맹 : 국내 해방 활동 조직 (여운형) , 사회주의+민족주의

1945.8.15 일본 항복
. 미국의 원폭 투하에도 버티다 소련의 참전 소식에 항복
# 소련은 무슨 구실로 참전? 일본은 왜 항복했지 적이 많아져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