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아들 백어(伯魚)에게 시(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수가 없고, 예(禮)를 배우지 않으면 서지 못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인격 도야에 의한 인간 완성의 최고 방편으로 예술을 들었으며, 시에서 얻은 풍부한 감흥을 예로서 다듬고, 악(樂)의 화(和)를 얻어 인간이 완성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예와 악은 개인에 있어서나 화평하고 질서 있는 인간 사회를 구현하는 지고의 효용이 있으며, 때문에 군자는 예와 악을 잠시라도 몸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이 악론(樂論)에서 악을 알 때에는 예를 아는데 가까이 이르렀다고 할 수 있으며, 예악 양자를 다 알아서 몸에 채득한 자를 유덕자(有德者)라고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예기(禮記)에서 음악은 사람 마음의 움직임에서 생기는 것으로 마음의 움직임은 주위의 사물이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마음이 사물에 감응해 움직여 성음(聲音)으로 표현되고, 수많은 성음의 상호작용으로 일정한 형(型)이 이루어진 것을 악음(樂音)이라고 합니다. 이들 여러 종류의 악음을 배열하고 연주하여 춤을 추게 할 정도로 진보된 것을 음악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악음의 표현방법인 오음(五音) 중 궁(宮)은 임금에 해당되고, 상(商)은 신(臣), 각(角)은 민(民), 치(徵)는 사(事), 우(羽)는 물(物)에 해당합니다. 오음이 바르게 나면 음악 전체가 잘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만일 궁의 음이 바르게 나지 않으면 음악 전체가 거칠어지는데, 이는 임금이 교만하고 정치가 난폭하기 때문입니다.

상음이 바르지 않으면 음악이 평형을 잃으며, 이는 신하가 소임을 다하지 못하여 민정(民政)이 안정을 잃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각음이 바르지 않으면 음악에 근심이 생기며, 그것은 세상이 문란하고 백성이 원망하고 있음이 원인입니다.

또 치음이 바르지 못해 음악이 슬퍼지는 것은 노역이 많아 백성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불안정한 우음으로 음악에 위기감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나라 재정이 궁핍하여 곤란이 절박해 있는 증좌라고 합니다.

만약 오음이 모두 바르지 못하여 뒤죽박죽 섞인다면 그것은 나라의 상하가 모두 교만하여 정치가 미치지 못한 상태로서 이렇게 되면 얼마 안가 나라가 멸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은나라 주왕(紂王)이 음악에 도취되어 주지육림에 빠져 있다 주의 무왕(武王)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도 사연(師延)이 지은 망국의 노래 ‘신성백리(新聲百里)’란 악곡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소리나 음악의 성질은 정치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고 예기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

(2006년 11월 6일 www.자유칼럼.kr)

삶 속 음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과거 '딴따라'라 비하하던 음악이지요.

그들 나름대로의 사물과의 감흥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을 겁니다.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동일한 사물에도 다른 감흥을 받을 수있는

'살아있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런지요.

'살아있음'에 그들의 감흥도 인정해 줘야하지않을까요?

물론 정양용 선생님의 말씀처럼 '예'를 벋어나지 않는 범위가 되야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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