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이것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시집『거대한 뿌리』(민음사, 1974) <문학춘추> 1965년

.............................................



양정훈의 삶의 향기에서 추천받아 큰소리로 읽었다.

처음에 무심코 읽다.

마지막 구절에서 눈물이 핑돌고 목이 매였다.

왜일까....

내가 그렇게 작게 느껴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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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풀이 되어 엎드렸다.
풀이 되니까
하늘은 하늘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햇살은 햇살대로
내 몸 속으로 들어와 풀이 되었다
나는 어젯밤 또 풀을 낳았다  


- 이종해의《풀》중에서 -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의 글이라 공유합니다. ^^ 

 

이 글을 읽고

제가 풀밭에 누워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느낌이 드신다면 풀밭에 누워본 경험이 있으실 꺼에요.

그 포근한 느낌을 알고 계신다니 축복입니다.

 

 

부천 방과후 학교  http://cafe.naver.com/bcforestschool

 

 







친구야 너는 아니?
 
                                   이 해 인 수녀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거래


사람들끼리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도 참 아픈거래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참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혼잣말처럼 하시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는 날


친구야
봄비처럼 고요하게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 싶은 내 마음
너는 아니?
향기 속에 숨긴 나의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 것
너는 아니?

 

 

이해인님 홈페이지
http://haein.isamtoh.com/sub_3_1.asp?page=&seqid=11&s_field=&s_string

 

부할의 노래 '친구야 너는 아니'(2006)

http://youtu.be/Lr-243EKU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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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말이 없다고 침묵이라 말할 순 없다.

입맞춤 하나로

절절한 사랑 꽃피고

아름다운 낙원의 새소리 듣는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목소리

저렁저렁 울리는 심장소리

 

때론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의미를 전하고

마주 본 눈빛이

숱한 언어를 추락시킨다

 

그대 목소리를 듣는다

 

 

-------------------------------

 

모든 사람에게는 감, 정, 사랑 등 보여지기 어려운 단어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죠.

누구도 이러한 단어 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믿음과 공감의 크기가

손끝과 심장을 더욱 떨리고 울리게 하는 거겠죠 

 

연인이 있어본 분들은 다 아시죠?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는 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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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을 가리지 않는다.

 

                         - 이 하 (李 夏 : 시인, 교수)

 

비킬 뿐
산은 산을 가리지 않는다.
낮은 데로 낮추어
소리도 묻어나지 않게
앞은 앉고 뒤는 서고
크면 큰 대로 빛깔을 던다.
 

언젠가
강이 지나칠 무렵
한 자락씩 거두어 길을 내고는
은밀히 강바닥으로
무릎을 맞대어,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산은
산을 밀어 내지 않는다.
무성한 제 그림자를
강물에 담글 때면
건넛산이 잠길 어귀를
비워둔다.
 

때로 겹친 어깨가
부딪칠 때도
조금씩 비켜 앉을 뿐
산은
산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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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게  - 이 해 인


 



몸이 아프고 마음이 우울한날
너는 나의
어여쁜 위안이다. 바람이여

 


창문을 열면
언제라고 들어와
무더기로 쏟아내는
네 초록빛 웃음에 취해
나도 바람이 될까



근심 속에 저무는
무거운 하루일지라도
자꾸 가라앉지 않도록
나를 일으켜다오
나무들이 많이 사는
숲의 나라로 나를 데려가다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겠다
삶의 절반은 뉘우침 뿐이라고


 

눈물 흘리는 나의 등을 토닥이며
묵묵히 하늘을 보여준 그 한사람을
꼭 만나야겠다.


 


 


 

숲으로가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사랑을 고백하고


삶의 뉘우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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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저자 이해인 지음
출판사 열림원 | 2002.10.22
형태 판형 B6 |  페이지 수 166

 

자연에서 시적 영감을 많이 받은 시집 같음 ^^

 

 

바람에게

 


몸이 아프고 마음이 우울한날
너는 나의
어여쁜 위안이다. 바람이여

 

 

창문을 열면
언제라고 들어와
무더기로 쏟아내는
네 초록빛 웃음에 취해
나도 바람이 될까

 

 

근심 속에 저무는
무거운 하루일지라도
자꾸 가라앉지 않도록
나를 일으켜다오
나무들이 많이 사는
숲의 나라로 나를 데려가다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겠다
삶의 절반은 뉘우침 뿐이라고

 

눈물 흘리는 나의 등을 토닥이며
묵묵히 하늘을 보여준 그 한사람을
꼭 만나야겠다.

 

 

 

숲으로가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사랑을 고백하고

삶의 뉘우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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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이타카」의 일부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 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더라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볼모지라고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시, 예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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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순간: 시


우리가 보낸 순간: 시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간행물윤리위 청소년 추천 책 2011년 2월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0.12.20 

형태    판형 A5 | 페이지 수 288 |



청소년 추천도서가 이렇게 어렵나... ^^;

시에서 감흥은 못 느끼고 

그에 따라 쓴 수필에서 약간 공감

그런데 시와 수필이 잘 매칭 안되서 그것도 힘들게 읽음 ㅎㅎ




오래된 유원지 - 박준



마음이 동할 때는 떠나자

조금만 미적거려도 마음이 바뀌니

그전에 떠나야 한다.

먹을 것, 자는 것, 입을 것은 따지지 말고

먹는 건 김밥먹고 

자는 건 근처 여관가고

입는 건 그냥 입고 있는 옷이면 되지

그렇게 도착한 곳은 "좋지 않냐?" ^^

절대 남과 비교하지마 그 장소와 느낌을 즐겨!




책임을 다하다 - 문인수


도시들의 가로수는 금방 죽는다.

옮겨심으며 뿌리를 다치고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그런데 잘 자라는 것 처럼 보이는 건 

구청 직원들이 부지런해서다

우리의 세금이 하는 일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안 일어나는 건 아니다.

도시의 죽음이 안보인다고 죽음이 없는 것이 아니듯이









           겨울 사랑

 

                                             박 노 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듯한 포응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먼 눈 뜨고 그대를 기달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위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자연에는 필요없는 것이 하나도 없나 봅니다.

장애는 성장의 씨앗이라고 하지요

경험이 있어야 더 큰 세상을 이해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더욱 책이 필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네요

더 많은 간접경험을 위해서요.


아주 간단한 시지만 

삶, 교육, 사회, 정치 등 다양한 생각을 대입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이게 시의 힘인가요? ^^









     <밥>

              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고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 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


현실이 진하게 묻어 있는 한편의 시를 공유 받아

다시 공유 합니다.


깊이 공감하며 

밥 한 그릇에 자신을 팔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고 

나 자신을 다 잡아 봅니다.









5/15 제가 올린 글 '창의성은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에서 당시 박웅현씨가 들려준 시가 있었습니다.


이 시를 듣고 진짜 눈물이 났습니다.


이게 진짜 인문학의 힘이겠죠 ^^



제목은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입니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끄고 잘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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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맛이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깔끔하지만 깊은 감동이 있는 것



 누군가 


누군가 등산로에 
채송화를 심었다
채송화 꽃이 피었다

누군가 
봉숭아를 심었다
봉숭아 꽃이 피었다 

누군가
내게 마음을 심었다
나도 꽃이 되었다


- 고창영의 시집《힘든줄 모르고 가는 먼길》에 실린
                  시〈누군가〉중에서 -


* 맨 땅에 
꽃을 심으면 꽃밭이 되고
나무를 심으면 푸른 숲이 됩니다.
맨 땅처럼 마르고 지친 내 마음에
누군가 들어와 사랑을 심으니
나도 어느새 꽃밭이 되고
푸른 숲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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