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훈의 <삶의 향기>]

#1537호 - 노인을 위한 자본주의는 없다


삶의 향기 지인분들께 물질의 발달과 더불어 발생하는 사회현상, 세대갈등,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숙제를 같이 나눠보았으면 합니다. 출처는 철학박사 강신주의 [다상담2: 일,정치편]입니다. 가능한 원문 그대로 옮겨드리는게 현장의 언어를 생생하게 전달드리는 것 같네요. (이 책은 강의 형식으로 진행한 팟캐스트 방송을 워낙 인기가 높아지고 많은 분들이 들으니까 책으로 묶어서 따로 낸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번 원문을 살펴볼까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제일 피폐한 인간,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치부되는게 노인이라는 거 아시죠? 노인들은 새로운 스마트폰을 만지지도 못해요. 여러분들 컴퓨터 고장나면 누가 고쳐줘요? 아버지가요? 아버지가 뭘 고쳐요. 아버지한테 맡기면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어요. 여러분 후배가 더 잘 고치죠. 산업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얼리어답터는 젊은 세대밖에 없어요.  나이 드신 분들은 더 이상 지혜의 상징이 아닌거죠. 왜냐하면 그분들이 썼던 물건들은 존재하지 않거든요.그 자괴감이 느껴지세요? 

제가 이야기 하나 해 드릴게요. 옛날에 어떤 잡지에서 본 건데, 한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심장에 통증이 오면 약만 먹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약도 안 먹고 돌아가신 거예요. 혼자 사는 아버지인데 아들이 와서 당혹스러운 거죠. 약병도 안 보여요. 그런데 마당에 있는 돌이 들려 있는 거예요. 그 돌 밑에 약병이 있고요. 아버지가 깨려고 그런 거죠. 왜 깰려고 했을까요? 아버지가 문맹이었던 거예요. 약병이 바뀌어서 '눌러서 돌리세요'라고 쓰여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아요? 새로운 제품 사면 설명서가 무섭지 않나요? 복잡하죠?

(중략)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노인들은 이 세계가 낯선 곳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노스탤지어가 더 강해지죠. 어디서 자기의 위신을 찾을까요? 옛날에 농촌 시절에는 춘하추동을 다 보냈기 때문에 할아버지들이 지혜의 상징이었잖아요. 마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어르신들께 여쭤 보면 다 해결이 됐다고요. 지금 여러분 인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아버지한테 조언 듣는 분이 있나요? 아버진 모르잖아요. 스마트 폰으로 현금결제를 어떻게 하는지 그걸 어떻게 물어봐요?

자본주의는 노인을 폐물로 만들어요. 그래서 종로 3가에 모여계시는 거예요. 그분들이 누구를 뽑을까요? 그분들이 마지막으로 강렬했던 게 어느 때일 것 같아요? 자기 젊었을 때에요. 노인들의 피해의식을 아셔야 합니다. 나쁜 것들은 그 피해의식을 집요하게 이용하는 것들이에요. 자본주의를 고도로 발달하게 하고 경쟁을 시켜서 그들을 폐인으로 만든 것들이 다시 또 그들을 이용한다는 게 가증스럽죠. '어떻게 가급적 상처 안 주는 실천을 가족 사회에서 할 수 있을까', 이게 여러분들의 숙제죠." - 강신주의 [다상담2 : 일,정치] 편 중-


이렇게 말하면 놀라실텐데, 제가 대학교때까지는 나름 친구들 사이에서 PC 도사였습니다. 그당시 유명한 S/W는 물론이고, PC분해와 조립까지도 어렵지 않게 했던 바람에(그 당시에는 SCSI 방식의 제품이 많아서 그냥 끼기만 하면 되는 게 별로 없었거든요)용산과 국제전자센터를 돌아다니며 부품값을 줄줄히 외우고 다녔죠. 매달 읽던 PC잡지도 있었고요. 교수님 방에 들어갔던 것도, 학과의 컴퓨터 관리를 맡으며 소소하게 장학금을 탔던 적도 있습니다. 그게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지금은요? USB만 꽂을 줄 압니다. 그마저도 작동 안하면 "얘(PC)가 기분이 나쁜가보다.내일 다시 해보자" 이러면서 슬그머니 접습니다. 다뤄봤던 PC제품도 이럴진데, 키보드, 마우스 아닌 손가락으로 하는 스마트 폰 사용은 거의 젬병수준입니다. 그야말로 전화통화, 문자, SNS정도 조금 합니다. 스마트 폰에 별별 기능이 다 나왔다고 하는데 저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아니, 내 폰에 그런 기능이 있었어?" 놀래보지도 못합니다.

이게 빠른 기술이 가져다주는 지식유통기한의 단축결과입니다. 제 아버지 세대요? 당연히 더 모르시겠죠. 지혜보다 지식을 필요로 하는게 자본주의의 속성입니다. 광고를 보세요. 예전 스마트폰, 예전 차를 아끼고 잘 타는 법을 가르쳐 주던가요? 아니면 새 핸드폰, 새 차를 사라고 하나요? 결국 새로운 제품에 익숙치 못한 세대는 자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그랬듯이 이제는 30~40대가 그런 차례가 되는거죠. 또 지금의 20대는 10년 후 그 윗세대가 느끼던 감정을 알게 될 거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른들을 퇴물로 만들고, 다시 그들을 이용해 분열을 조장하며 세력을 키우려고 하는 집단들. 자본의 속성과 함께 그들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평가가 세대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제가 강의할 때 자주 말씀드리는데, 한국의 산업화는 일개 독재자가 만든 게 아닙니다. 그당시 자신의 인생과 몸을 혹사시키며 희생했던 이름없는 수많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으셨기 때문이죠.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가요?


p.s) 제목은 2007년 조엔 코엘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영화에서 차용했는데 어떤 형식을 띤 공동체든 세대간의 분열, 불필요한 지역, 국경감정, 명분없는 종교전쟁이 사라진 그런 세상을 희망합니다. 그 세상이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든, 저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장미가 장미란 이름으로 불려지기 전에도 그 향기가 없어지지 않았듯, 그런 세상이 어떤 세상으로 불려져도, 그 세상이 주는 향기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치기어린 삼십대에서 이제 사십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모두 늙고, 모두 죽습니다. 탐욕이라는 괴물만 빼곤요. 가끔 탐욕은 암세포의 형질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숙주를 파괴하면서까지 집어삼키니까요. 길게 보면 동반자살인데, 죽기 전까지 탐욕이란 건 그걸 깨닫지 못하더라고요.


"세상이 빠름이 노인을 쓸모 없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나올 수 있는 당연한 명제인데 생각을 못했네요

왜 우리의 아버지들이 정년퇴직하고 퇴물취급이 되었는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족에게 버림 받았는지 

알게됩니다.


아이들의 정보 속도를 못 따라가니까요

저도 아이들이 둘 있는데 걱정이네요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리면 앞으론 더 빨라 질텐데


철학적 사유를 더 많이 해야할 필요성을 더욱 느낍니다.

세상의 이치는 바뀌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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