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힘 중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믿는다.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원한도 고통도 모두 이해하게 되는 치유


할머니의 시에 대한 열정이 그 분의 일생을 돌아보며 치유되었기를 눈물로 바래본다.


※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앎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저자의 살아온 길이라던가. 해석을 위한 기초 상식이라 던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감동한다.


[양정훈의 <삶의 향기>]

#1570호 - 한센병 할머니의 꽃보다 붉은 울음


"니 그동안 참말로 욕 봤다. 인자 오지 마라."

할머니는 담담히 나지막히 말했습니다.

"전에는 밤에 누우면, 무신 생각이 그리 많은지 잠이 안온다. 잠은 안 오고 생각은 자꾸 나고, 눈물은 왜 그리 나오던지. 그런데
요새는 시 생각한다고 다른 생각이 안 난다. 뭐라고 할꼬. 우찌하면 잘 표현이 될꼬. 하룻밤에도 수십 번은 시를 썼다가 허물다가 안 하나. 어떤 때는 머리가 아파서 에이 하지 말자 하다가도 또 생각하는 기라. 그라마 보모 머리도 안 아프고 잠이 든다."

할머니의 시 쓰기를 도와드린 김성리씨는 묵묵히 할머니와 했던 이야기를 회상합니다. 

"보래이, 김 선생. 내 살아온 이런 이야기도 시가 되나? 참 우습제. 내 다시는 말 못할 줄 알았다. 하모, 누한테 말하겄노. 시를 생각하다 보모 내가 나한테 말을 하는 기라. 그때는 그랬다. 아이다. 이랬다. 혼자 그라마 보모 날이 샌다. 허허허. 참 우습제?"

이말란 할머니는 1927년에 태어나셨습니다. 활발하여 뛰기를 좋아했던 할머니는 19세에 한센병에 걸렸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있어 뱃속에 아이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고, 아이는 결국 수많은 아픔끝에 한으로 엮인 가슴을 찢으며 입양합니다.  

한센병이 걸린 사람들의 난민촌에 갔으나 그들 역시도 주변 사람들의 멸시와 미움을 받으며 이리 저리 거주를 옮겨다닙니다. 그때마다 또 맨몸뚱아리로 더 추운곳, 더 외진곳으로 쫓겨납니다. 그러던 와중에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 딸 하나를 더 낳지만 딸에게만은 일상적인 생활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 이번에는 호적을 파 옮깁니다. 

자신에게 닥친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병과 그 병으로 인해 생긴 이별과 멸시, 헤어짐과 춥고 배고픈 가난. 이 모든 것들을 할머니는 자신의 생으로, 자신의 몸으로 받아냅니다. 몇 번이나 죽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후 삶을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할머니가 죽기 전 (저자의 도움으로) 시를 씁니다. 열 한 편의 시 속에 자신의 삶을 정리해봅니다. '시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으며 찾아간 저자는 시는 치유로 가는 문일뿐, 치유는 시가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시 11편과 그 시를 써가는 과정, 할머니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김성리 저자는 [꽃보다 붉은 울음]이란 책에 담았습니다. 꽃보다 붉은 울음이라는 책 제목은 서정주의 시 '문둥이'에서 나왔던 구절 중 하나입니다. (해와 하늘 빛이/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

백내장이 걸려 동공조차 흐릿해진 할머니께서 기억을 더듬으며, 삶을 돌아보며 지은 열 한 편의 시 중 <내 인생길>이라는 시를 공유합니다. 그 사람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동안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저 역시 2009년 소천하신 이말란 할머니를 기억하겠습니다.


<내 인생길>
            이말란

오늘은 학교 가기가 싫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날을 즐거워하며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고통이 많고
내 앞에는 여러가지 시련이 닥치나
절망에 싸였다.

하나님,이렇게 땅 위에는
모래알같이 많은 인간이 살고 있지만
내게는 나병이라는 걸 내립니까.
하나님도 원망하고 싶고
내 자신도 미워
차라리 이 땅위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이래도 부모는 병든 자식이
그렇게도 좋을까
우물에 물을 뜨러 가시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레박을 빼앗기며
양철통을 발로 차이고
온갖 학대와 멸시와 천대를 받고
돌아오면 모녀간에 부둥켜안고 울어
눈도 붓고 얼굴도 부었네.

분노를 참지 못해 쫓아가서
손톱만한 벌레도
풀의 이슬을 먹고 사는데
하물며 생명인 인간을
물도 못 먹게 합니까?
약한 자는 아무리 말을 하여도
소귀에 경 읽기더라.

너무나도 복잡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
사람이 살지 않는 들판으로
뛰어갔다.

무릎께에는 바람이 불고
미치갱이같이 뛰고 달렸다.
저 먼 바다를 보니 성난 파도는
삼킬 자라도 있으면 삼키려고
이리저리 꿈틀이며 파도를 치더라.
가을 햇빛에 무르익은 벼는
고개를 숙여 추수할 일꾼을 기다리고
차라리 나도 벼가 되었으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겠지.

아, 내 인생길이
왜 이다지도 가시밭길인가.
찌를 때마다 피 흘러
걸을 때마다 핏자죽이었네.
걸을 때마다 잡초에 휘말려서
엎어지며 넘어지며
또 한 자국 걸을 때마다 자갈밭
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진흙이 떡반죽 된 길
하나도 평탄한 길이 없더라
이것이 내 인생길인가.

어느 8월 15일
유난히도 밝은 달이었다
내 발걸음은 태화강을 걸어가
강변에 우둑히 선
반구돌에 우뚝 서서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했다.
이것마저도 내 운명이 아니었는가
뱃놀이 나오는 사람들의 
구제의 손길에 다시 살아났다.

내게도 행운이 있었던가
김철수라는 청년을 알아서
60년 동거생활하며 그 안에서
예쁜 딸을 선물로 하나 받았더라.
그리고 김성리라는 선생을 알아서 
오늘날 말씀의 위로 받고
시를 배우며 가르침을 받아
날마다 시 짓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용서하는 자는 강하다.


모든 사람들은 강하다.


단지 알지 못할 뿐이다.


자신이 진정 강한지 의심하다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우리는 강하다.








출처 : 고도원의 아침편지

 

겁먹지 말아라


채윤은 다짐했다.
겁먹지 말아라. 겁을 먹는 순간
지는 것이다. 그것은 수십 번의 전투에서
몸으로 배운 생존의 방식이었다.
살아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백발백중의 활솜씨도,
전광석화의 칼솜씨도 아니었다. 그것은
겁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적이
많아도, 기세가 등등해도, 겁을 먹지
않으면 이기지 못할지언정
살아남을 수는 있다.



- 이정명의《뿌리 깊은 나무》중에서 -


*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했던가요.
배는 해류와 같은 방향으로 항해해야
더 빠른 속도로 달립니다. 몸과 맘은 하나입니다.
맘먹기에 따라 몸은 움직여 주는 것이니 겁을 먹지
않는 것이 좋은 무기를 들고서 벌벌 떨고
있는 것보다 이길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겁 먹지 마라!!

용기를 가져라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속에도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하면 하는 것이다.

스스로 가져야 용기다!!

 

정문기 용기를 가져라!!










경험이 긍정으로 쌓여야 한다


나이에 맞게 경험이 쌓여야 한다. 
경험은 세상을 모방해 자아를 성숙시켜 주고
그 경험들이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 세상을 
무조건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면서 
모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당하게 
세상에 적응하게 되는 것
이다.


- 김정일의《나도 내가 궁금하다》중에서 -


* 좋은 경험, 새로운 경험, 
경이로운 경험, 고생을 사서 하는 경험,
다 좋습니다. 즐겁고 행복했던 경험도 좋지만
슬프고 아프고 절망했던 고통의 경험도 필요합니다.
성공의 경험도 좋지만 실패의 경험도 소중합니다.
그 모든 경험이 내 안에 긍정으로 쌓일 때
값진 재산이 되고,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이 됩니다. 




경험은 모방에서 시작하여 분별하여 적응하고 창조로 귀착한다.


지식은 경험이 없으면 지혜가 되지 않는다.


경험도 지식도 지혜를 원한다면 함께 있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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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훈의 <삶의 향기>]

#1537호 - 노인을 위한 자본주의는 없다


삶의 향기 지인분들께 물질의 발달과 더불어 발생하는 사회현상, 세대갈등,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숙제를 같이 나눠보았으면 합니다. 출처는 철학박사 강신주의 [다상담2: 일,정치편]입니다. 가능한 원문 그대로 옮겨드리는게 현장의 언어를 생생하게 전달드리는 것 같네요. (이 책은 강의 형식으로 진행한 팟캐스트 방송을 워낙 인기가 높아지고 많은 분들이 들으니까 책으로 묶어서 따로 낸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번 원문을 살펴볼까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제일 피폐한 인간,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치부되는게 노인이라는 거 아시죠? 노인들은 새로운 스마트폰을 만지지도 못해요. 여러분들 컴퓨터 고장나면 누가 고쳐줘요? 아버지가요? 아버지가 뭘 고쳐요. 아버지한테 맡기면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어요. 여러분 후배가 더 잘 고치죠. 산업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얼리어답터는 젊은 세대밖에 없어요.  나이 드신 분들은 더 이상 지혜의 상징이 아닌거죠. 왜냐하면 그분들이 썼던 물건들은 존재하지 않거든요.그 자괴감이 느껴지세요? 

제가 이야기 하나 해 드릴게요. 옛날에 어떤 잡지에서 본 건데, 한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심장에 통증이 오면 약만 먹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약도 안 먹고 돌아가신 거예요. 혼자 사는 아버지인데 아들이 와서 당혹스러운 거죠. 약병도 안 보여요. 그런데 마당에 있는 돌이 들려 있는 거예요. 그 돌 밑에 약병이 있고요. 아버지가 깨려고 그런 거죠. 왜 깰려고 했을까요? 아버지가 문맹이었던 거예요. 약병이 바뀌어서 '눌러서 돌리세요'라고 쓰여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아요? 새로운 제품 사면 설명서가 무섭지 않나요? 복잡하죠?

(중략)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노인들은 이 세계가 낯선 곳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노스탤지어가 더 강해지죠. 어디서 자기의 위신을 찾을까요? 옛날에 농촌 시절에는 춘하추동을 다 보냈기 때문에 할아버지들이 지혜의 상징이었잖아요. 마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어르신들께 여쭤 보면 다 해결이 됐다고요. 지금 여러분 인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아버지한테 조언 듣는 분이 있나요? 아버진 모르잖아요. 스마트 폰으로 현금결제를 어떻게 하는지 그걸 어떻게 물어봐요?

자본주의는 노인을 폐물로 만들어요. 그래서 종로 3가에 모여계시는 거예요. 그분들이 누구를 뽑을까요? 그분들이 마지막으로 강렬했던 게 어느 때일 것 같아요? 자기 젊었을 때에요. 노인들의 피해의식을 아셔야 합니다. 나쁜 것들은 그 피해의식을 집요하게 이용하는 것들이에요. 자본주의를 고도로 발달하게 하고 경쟁을 시켜서 그들을 폐인으로 만든 것들이 다시 또 그들을 이용한다는 게 가증스럽죠. '어떻게 가급적 상처 안 주는 실천을 가족 사회에서 할 수 있을까', 이게 여러분들의 숙제죠." - 강신주의 [다상담2 : 일,정치] 편 중-


이렇게 말하면 놀라실텐데, 제가 대학교때까지는 나름 친구들 사이에서 PC 도사였습니다. 그당시 유명한 S/W는 물론이고, PC분해와 조립까지도 어렵지 않게 했던 바람에(그 당시에는 SCSI 방식의 제품이 많아서 그냥 끼기만 하면 되는 게 별로 없었거든요)용산과 국제전자센터를 돌아다니며 부품값을 줄줄히 외우고 다녔죠. 매달 읽던 PC잡지도 있었고요. 교수님 방에 들어갔던 것도, 학과의 컴퓨터 관리를 맡으며 소소하게 장학금을 탔던 적도 있습니다. 그게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지금은요? USB만 꽂을 줄 압니다. 그마저도 작동 안하면 "얘(PC)가 기분이 나쁜가보다.내일 다시 해보자" 이러면서 슬그머니 접습니다. 다뤄봤던 PC제품도 이럴진데, 키보드, 마우스 아닌 손가락으로 하는 스마트 폰 사용은 거의 젬병수준입니다. 그야말로 전화통화, 문자, SNS정도 조금 합니다. 스마트 폰에 별별 기능이 다 나왔다고 하는데 저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아니, 내 폰에 그런 기능이 있었어?" 놀래보지도 못합니다.

이게 빠른 기술이 가져다주는 지식유통기한의 단축결과입니다. 제 아버지 세대요? 당연히 더 모르시겠죠. 지혜보다 지식을 필요로 하는게 자본주의의 속성입니다. 광고를 보세요. 예전 스마트폰, 예전 차를 아끼고 잘 타는 법을 가르쳐 주던가요? 아니면 새 핸드폰, 새 차를 사라고 하나요? 결국 새로운 제품에 익숙치 못한 세대는 자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그랬듯이 이제는 30~40대가 그런 차례가 되는거죠. 또 지금의 20대는 10년 후 그 윗세대가 느끼던 감정을 알게 될 거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른들을 퇴물로 만들고, 다시 그들을 이용해 분열을 조장하며 세력을 키우려고 하는 집단들. 자본의 속성과 함께 그들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평가가 세대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제가 강의할 때 자주 말씀드리는데, 한국의 산업화는 일개 독재자가 만든 게 아닙니다. 그당시 자신의 인생과 몸을 혹사시키며 희생했던 이름없는 수많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으셨기 때문이죠.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가요?


p.s) 제목은 2007년 조엔 코엘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영화에서 차용했는데 어떤 형식을 띤 공동체든 세대간의 분열, 불필요한 지역, 국경감정, 명분없는 종교전쟁이 사라진 그런 세상을 희망합니다. 그 세상이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든, 저는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장미가 장미란 이름으로 불려지기 전에도 그 향기가 없어지지 않았듯, 그런 세상이 어떤 세상으로 불려져도, 그 세상이 주는 향기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치기어린 삼십대에서 이제 사십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모두 늙고, 모두 죽습니다. 탐욕이라는 괴물만 빼곤요. 가끔 탐욕은 암세포의 형질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숙주를 파괴하면서까지 집어삼키니까요. 길게 보면 동반자살인데, 죽기 전까지 탐욕이란 건 그걸 깨닫지 못하더라고요.


"세상이 빠름이 노인을 쓸모 없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나올 수 있는 당연한 명제인데 생각을 못했네요

왜 우리의 아버지들이 정년퇴직하고 퇴물취급이 되었는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족에게 버림 받았는지 

알게됩니다.


아이들의 정보 속도를 못 따라가니까요

저도 아이들이 둘 있는데 걱정이네요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리면 앞으론 더 빨라 질텐데


철학적 사유를 더 많이 해야할 필요성을 더욱 느낍니다.

세상의 이치는 바뀌지 않으니까요.









[양정훈의 <삶의 향기>]

#1534호 - 아크라의 문서(성공)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아크라 문서]가 나왔습니다.


각 본문의 내용을 가능한 충실히 옮기려고 하므로 두 파트로 나눠서 원문을 소개해 드리는 형식으로 소개해 드리고 있으며 이번에는  <성공> 파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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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해 말했던 남자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운이 좋은 겁니까?"

이에 그가 대답했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성공한 것은 아니다.
성공이란 그대들이 애정을 기울여 심은 씨앗에서 나온 열매다. 일에 애정을 쏟아왔다면 수확기가 됐을 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난 성공했어.'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려 일한 것인 만큼, 자기 일을 제대로 존중하는게  성공한 것이다.

곳곳에 숨은 함정들을 예측하진 못했지만 그대들은 일을 잘 끝맺었다.위험을 감수하는 삶을 택한 이상 겪을 수 밖에 없는 패배로 인해 무기력해지지 않았다.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고 해서 손해난 부분에 대해 계속 고민하며 시간을 탕진하지도 않았다. 아직은 정해놓은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기에 영광의 순간을 경험하면서도 도취되어 멈추지 않았다. 남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때가 왔을 때 그것을 창피하다 여기지 않았다. 누군가 도움을 청했을 때 비결이 알려질까, 남에게 이용당할까 두려워하지 않고 그동안 배운 것을 모두 알려 주었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릴 것이다. 청하는 자는 답을 구할 것이다. 위로하는 자에게는 언젠가 위로가 주어질 것이다. 기대하는 시기에 맞춰 위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 그대들이 남들에게 너그럽게 베푼 애정이 열매맺는 시기가 조만간 올 것이다.

성공은 자신의 일을 남들과 비교하며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간다. 성공은 매일 "나는 최선을 다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의 집으로 찾아간다. 성공만을 좇는 사람은 오히려 성공하기 어렵다. 성공은 그 자체가 목적인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주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강박은 성공을 일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금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해서 마음까지 부유하지는 않다. 매 순간 사랑의 힘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다.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 풍경을 즐긴다고 해서 크게 잘못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갈수록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게 되고,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럴 때 그대들은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의 가치관은 여전한가? 남들을 만족시키려고 남들이 기대하는 대로만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내 일이 내 영혼과 열정의 표현임을 진심으로 확신하는가? 나는 다른 것을 다 희생하고라도 오직 성공만을 원하는가, 아니면 매일을 사랑으로 채워가는 성공을 원하는가?"

(중략)

우리는 저마다 시인이고 농부이고 예술가, 병사, 아버지, 무역상, 상인, 배움을 전파하는 사람, 정치가, 현자, 가정과 자녀를 돌보는 사람이다. 우리보다 유명한 사람들은 많다. 진실로 훌륭해서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지만, 허영이나 야망이 빚어낸 거짓 유명세인 경우도 있는데, 후자는 오랜 세월을 버티지 못한다. 그렇다면 성공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

매일 밤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다.

행복은 진실한 과정을 거쳐야 나오는 열매라는 생각이 든다


혹독한, 어려운 과정들

때론 길고 긴 과정들을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지나쳐 왔을 때 

그 결과로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행복은 스스로 성공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밥>

              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고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 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


현실이 진하게 묻어 있는 한편의 시를 공유 받아

다시 공유 합니다.


깊이 공감하며 

밥 한 그릇에 자신을 팔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고 

나 자신을 다 잡아 봅니다.







박원순시장님이 책을 내셨네요 ^^

홍보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정보의 체계화와 공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서울시의 사례가 눈에 들어와서 공유 합니다.


인터넷의 발전이 시민의 다양한 참여를 이끈 것은 누구나 아시죠?

그 것이 정보의 독점이 아닌 공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공유야 말로 인터넷의 가장 큰 유익이며 

사회발전의 근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seri에서 공공데이터 사업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서울시 정책과 일맥 연결 부분 있네요


어제 옛날 영화인 래리 플렌트를 보았습니다.

'포르노 잡지라 해도 표현의 자유는 억압되면 안된다'는 

의미있는 내용이 담겨 있더군요 


교육이란 이름으로 제단하는 우리사회와는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삶의향기 Lettering

since 2005

[양정훈의 <삶의 향기>]

#1530호 - 수가재주 역가복주, 투명성과 책임성


투명성과와 책임성. 이 두 가지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라고 봅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어떤 단체든 이
투명성과 책임성이야말로 부패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선진성의 기초입니다. 특히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민주주의 (Deliberative Democracy)와 정보 민주주의 (Information Democracy)가 이뤄져야 합니다. 시민들에게 정보나 자료가 충분히 주어져야 깊이 생각하고 의견을 내고 논의하는 일이 가능하거든요. 표현의 자유가 한 차원 높아집니다. 제가 정보공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략)

제가 추구하는 새 정치의 핵심은 소통과 참여, 거버넌스(Governanve : 공공경영)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는 행정, 위키피디아(Wikipedia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만드는 온라인 백과사전)식 행정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처음 정책을 입안할 때부터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서울 시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 방향에 따라 공무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중요하죠. 그러나 시민의 자발적인 지혜를 모으는 것이 먼저입니다. 

시민들은 무한한 잠재력과 추진력을 갖고 있어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많고요. 일반 시민과 전문가의 힘을 공무원이 끌어안으면 그 효과가 엄청납니다. 이해관계가 달라도 서로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다 보면 실현 가능한 정책들이 만들어져요.


(중략)

'수가재주 역가복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또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저는 아직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시민들의 염원과 소망을 충실하게 따르면 순항할 수 있고, 만약 거스르면 아무리 큰 조직이라도 하찮은 먼지처럼 가라앉겠죠. 정당이 아무리 크고 당원이 많단 한들 그게 뭐그리 대수롭고 큰 힘이겠어요. 시민의 꿈과 소망 위에 서 있는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합니다.

정치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한 청년에게 제가 이렇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어요. "정치란 자신이 굶고 남을 배불리 먹게 하는 것이며 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자세가 무릇 그래야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를 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다."고요

          박원순,오연호 공저 [정치의 즐거움 : 오연호가 묻고 박원순이 답하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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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 그걸 실천하는지? 한 입으로 두 말하는지는 사람들이 알아보죠.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현실과 대비시켜 얻은 결론은 박원순 시장은 '담론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각론을 놓치려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서울시 프로젝트 중 누드프로젝트라는게 있습니다.  서울시의 정보공개청구 대비 정보공개율이 기존 90퍼센트였는데, 이를 100%를 목표로 추진중입니다. (2013년 1월달에 99.4%까지 올렸습니다.)  예를 들어 각 지하철 역사별 유동인구 수를 공개하면 근처 상권의 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판매전략이나 임차료를 매기는 기준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이동인구와 시간대별, 출구별, 세대별 인구이동을 공유한다면 그 데이터가 필요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정보를 활용해 전략을 세울수가 있는거죠.

어떻게 이렇게 서울시 정책가도 아니면서 양코치가 아는척 하냐면 서울시의 정책이 나올 때마다 실시간으로 의견을 구하고 협의하는 SNS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실시간으로 오늘의 새로운 일들과 정책들을 받아보고 비교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저는 이런 정보의 투명성과 공개성 하나만을 가지고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바뀌는지를 경험하는 인터넷 세대이기 때문에 위 철학에 적극공감합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잘 안알려진 정책들이) 하나뿐만이 아니죠.


보도블럭 공사실명제를 하면서 <보도공사 설계시공 메뉴얼>만 138쪽으로 만든 이야기나 보도블록 거리 모니터링단 운영. 서울의 노숙자 리스트를 최초로 완성한 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민생침해사범의 단속('눈물그만'이라는 온라인 사이트 economy.seoul.go.kr/tearstop 운영으로 인권위원회와 보훈종합대책 관리),

응답하는 서울시 만들기 (SNS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소통하기). 트위터 팔로우가 70만명에 달함. 많은 사람들이 박원순 시장의 트위터를 통해 민원을 제기(전체 민원의 80%) 하는데 이런 다양한 소리를 서울시 소셜미디어센터(social.seoul.go.kr)에서 통합 관리하고 담당자가 체계적으로 답변됨. 예를 들어 버스정류장 표기 오류, 아파트 앞길 깨진 보도블럭, 열린 맨홀뚜껑, 고장난 가로등 같은 사연이 실시간 접수, 처리 됨. 하루 평균 130여개가 접수됨), 심야버스(올빼미 버스) 추진, 또 공동체 복원은 시대의 요구라며 마을공동체 사업, 협동조합 신설을 위한 제도 정비를 바꾸는 등 서울시의 추진정책에는 상당히 많은 시민활동 아이디어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서울시민을 위한 정책들은 지금도 계속 개선되고 개발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변하는 게 눈에 보이니까요.) 읽으면서 '정치'를 한다는 건 무엇인가? 실제 좋은 '다스림'은 세상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그리고 리더란 어떤 덕목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를 한참동안이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김구 선생님이 즐겨하던 말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에'이 있지요.

누가 지금 내 삶의 이정표일까요? 
그리고 나는, 우리는 누구의 이정표가 또 될까요?
정치의 즐거움을 읽으며 사회에 대해서, 제도에 대해서, 리더에 대해서 기준을 다잡아 본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p.s)어설픈 위로의 힐링책이 아닌 진정한 힐링책입니다. 제 기준에서는 철학과 실행방법을 포함하여 2013년 하반기에 읽은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선정하겠습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읽기도 편합니다.

    필자소개 : 정곡(正谷) 양정훈 (기업사내코치 전문가, 작가, 리더십 FT, 자기경영혁신가)

   2006년부터 매년 300권 정도 지인들과 함께 매일 한 권의 책읽기와 한 편의 칼럼을 나누고 있으며 
   작가의 꿈을 가진 [꿈꾸는 만년필]분들과 글쓰기 공부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전문강의로는 독서코칭, 시간관리 코칭, 글쓰기 코칭 등이 있으며, 
   네이버에서 교육분야 2008,2009 초대 파워블로거, 국제코치협회 인증코치, 한국코치협회 전문코치로 활동 중입니다
   월간HRD협회 선정 2013 베스트 코치이며

   저서로는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나만의 첫 책쓰기] / [내 책은 하루 한 뼘씩 자란다] / [9 to 6 혁명]
            전자책 나도 한번 내볼까?(공저) / 청소년을 위한 시크릿 : 시간관리편 (공저) 등이 있습니다.

   Blog : www.yangcoach.com  / E-mail: bolty@nave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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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라는 장애물이 없으면 독수리는 날지 못한다.


한 철학자는 독수리가 더 빨리, 더 쉽게 날기 위해
극복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공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기를 모두 없앤 진공 상태에서 새를 날게 하면
그 즉시 땅바닥으로 떨어져 아예 날 수 없게 된다.
공기는 비행하는데 저항이 되는 동시에 비행의 필수조건이다.


- 존 맥스웰

모터보트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프로펠러에 부딪히는 물입니다.
그러나 그 저항 없이는 보트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서도
장애물이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 됩니다.



음과 양의 조화라고 해야할까요

장애가 없으면 성장이 없다.


음이 없으면 양이 있어야 한다.

앞이 있으면 뒤가 있어야 한다.

성장하려면 장애가 있어야 한다.


어쩌면 상식인데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이네요

얼마나 더 자주 들어야 상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들려 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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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정훈의 삶의 향기


[양정훈의 <삶의 향기>]

#1514호 - 에밀리의 행복조건


17세기 프랑스에서 시작해 18세기 계몽주의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운 살롱 문화가 있습니다. 칸트, 몽테스키 등도 살롱 애호가였죠. (일명 '아비튀에'라고 부릅니다.)아 아뷔튀에들이 모이는 규모를 좌지우지 하는게 '살로니에르' 즉 샬롱의 여주인이었습니다.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화려한 화술의 살로니에르는 모임의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시와 철학, 즉석연주와 노래, 깊은 이야기들이 뒤섞이며 살롱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모임에서도 돋보였던 여자가 있었으니 '가브리엘 에밀리 르 토넬리에 드 브르퇴유'였습니다. (샤틀레의 부인이기도 했었죠) 그녀는 최초의 근대 여성과학자였으며 철학, 언어학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뉴턴의 에너지 보존을 연구했고 아이슈타인의 공식 E=mc2의 기본개념도 제시했었습니다.  (라틴어, 이태리어, 그리스어, 독일어에 능했고 문법 연구와 성서에도 관심을 갖고 그리스 고전들을 번역했습니다.) 

그녀의 작품 중에는 '행복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속에 나오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가장 첫번째는 자신이 무엇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결심하는 것이다. (중략) 결심은 행복의 전제조건이며 결심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결심이 없으면 계속해서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헤엄치게 될 뿐이며, 저녁에 이룬 일을 다음날 아침에 파괴하여 다시 바로잡느라, 또는 후회하느라 일생을 어리석게 낭비하게 된다. 이 후회의 감정은 우리 영혼이 느끼는 감정 중에서도 가장 아프고 불쾌한 것이다"





행복은 결심이다.


핵심을 찌르는 문장과 적절한 설명

멋지네요.


자신을 알고 그에 따른 결심과 실천은 행복을 동반 합니다.


결심은 쾌락과 열정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고


열정은 삶의 고난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며


고난은 더 큰 성취를 이루는 기반이 될 것이기에


달성된 목표를 통해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행복이 될 것이란 생각







출처 : 양정훈의 삶의 향기


[양정훈의 <삶의 향기>]

#1509호 -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오늘은 한국일보 선임기자 [서화숙씨의 3분칼럼]을 통으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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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3분칼럼] 당당하면 왜 지웠습니까?

어제 방송을 들은 분들이 매미소리가 들린다고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제가 방송을 하는 곳은 저희집인데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매미가 우니까 창문을 닫아도 그 소리가 흘러들어갔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확인하려고 집에서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들어봐도 저로서는 그 소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아시지요? 이미 저희집에는 또 오늘의 매미가 우렁차게 울고 있기 때문에 녹음 속의 미미한 매미 소리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환경에 젖어 있으면 그게 남다르다는 걸 인식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른 환경에 있는 이들은 그 차이를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스스로를 점검해보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객관화라고 부르지요.

최근 국회의 국정원 국정조사를 보면서도 든 생각이 그것이었습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경찰청의 은폐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 그들은 그게 왜 문제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걸 감싸는 새누리당 의원들도 똑같은 도덕성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들에게는 그런 부도덕 불법이 일상이라는 말이 됩니다. 문제를 알아채지 못할만큼요. 만일 이것을 방치한다면 그들은 점점 더 심한 부도덕과 불법의 늪으로 빠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 끝은 민주국가의 파탄입니다.

제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겠습니다. 국정원은 진심으로 종북세력의 국가전복을 막기 위해, 대북심리전의 하나로, 민주화 운동을 위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홍어라고 조롱하는 댓글을 달았습니까? 대북심리전을 해야 한다면 북한 사람들이 보는 사이트에 가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대중에게 공개된 사이트가 없다면 북한의 핵심 인물들이 보고 있는 북한 사이트에 가서 민주주의를 설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민주국가의 자정작용이 작동되는 사이트에 가서 자정하기 힘들만큼, 쓰레기 같은 댓글을 끊임없이 남긴 것이 대북심리전이라는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북한이 정예 사이버 전사를 양성해서 한국의 사이트에 와서 활동한다는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이나 그가 활용한 탈북자 참고인 진술도 그렇습니다. 그런 이들을 잡아내는 것이 국정원의 역할입니다. 누구 한 명을 잡았습니까? 그렇게는 안하고 민주국가의 뿌리를 흔드는 막말과 지역차별 댓글을 단 것이 국정원 직원들 자신입니다. 야당 후보를 모략하고 그 글에 추천을 많이 눌러 인터넷 포털에 크게 공개되도록 한 것이 국정원이 한 일입니다. 당신들도 그게 나쁜 짓인 줄 아니까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사흘동안 오피스텔에 숨어서, 경찰이 퇴로를 열어준다는데도 나오지 않고 댓글을 지운 것 아닙니까? 그렇게 당당한 대북심리전이라면 왜 지웠습니까? 그래 놓고는 어떻게 그것이 다시 올바른 행동이었다고 감히 국정조사장에서 거짓말을 합니까? 그런 거짓말도 믿는 척하고 덮어줄 만큼 당신들 주위는 모두가 지독하게 썩어있다는 말입니까?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도 그게 문제라는 걸 아니까 압수수색을 못하게 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당당하다면 경찰은 왜 축소수사를 하려 했습니까?

경찰은 법과 정의를 세우는 수사기관의 최일선입니다. 만일 이들이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한다면 누가 국가가 정의를 세우기 위해 수사에 나선다는 것을 믿겠습니까? 국가기관의 수사 자체가 신뢰를 얻을 수 없게 되면 죄를 지은 범인들은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범죄의 피해자들은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겠지요. 그런데 국정조사장에 와서, 자신들의 발언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동영상이 나오는 데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예사로 하는 경찰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그렇게 당당하다면 권영세 주중 대사와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왜 중국에 숨어서 국정조사장에 나타나지도 못합니까? 스스로 입을 벌리는 순간 범죄행위가 공개된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워서 아닙니까?

당신들을 감싸주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있으니까, 알아서 개혁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으니까 세상 모두가 다 그런 불법과 부도덕에 젖어있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국민들 대다수는 이미 국정원이 정치개입을 했다, 이걸 경찰이 은폐했다, 그 뒤에는 정치권이 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이 그렇게 보도를 안 해도 여론조사를 해보면 과반수가 국정원이 정치개입했다, 경찰이 은폐했다고 대답합니다. 당신들만 못 보고 못 듣고 악취나는 불법의 진창에서 허우적거릴 뿐 다른 사람들은 깨끗한 곳에서 당신들의 고약한 냄새를, 거짓말을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그 악취와 결별하는 방법은 한가지 뿐입니다. 진창에서, 거짓말에서, 불법과 부도덕에서 벗어나서 대다수 국민들이 있는 깨끗한 곳으로 오는 길 뿐입니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는 길 뿐입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오늘 마지막날 청문회에는 나타나지도 않을 거라는군요. 그렇게 당당하면 왜 안나옵니까?

이제 당신들이 이 진창과 결별하는 방법은 특검을 수용하거나 검찰이 밝혀낸 진상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길 뿐입니다. 국민이 당신들의 부도덕과 불법을, 거짓말을, 진창을 그대로 덮어두기에는 국가의 미래가 너무 위태롭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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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책의 일부를 인용하는 적은 있어도 칼럼을 통으로 인용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요. 그러나 이 사태를 수수방관하는 건 읽고 배우고 나누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제 블로그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겨놓기 위해서 여러 칼럼을 훑어보다가 가장 제 목소리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찾아서 인용합니다.

정말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거라고 생각하는걸까요? 국정조사 동영상을 보신 분들, 그리고 그 다음날 쏟아내는 기사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편향된 정치인과 언론들이 기계적 균형과 교묘한 양비론으로 얼마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애를 쓰는지 측은하기 이를데가 없더군요. 아무리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만, 정말 저 정도 수준인 사람들이 우리의 대표라고 거들먹거리며 눈과 귀를 자청하는가 생각해 보면 착찹했습니다.

역사는 후일 이 부정선거를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한 축으로 분명히 기록할 겁니다. 그건 여태까지 적지 않은 책을 읽고 사회를 바라보며 나름의 상식을 가지려고 애쓰는 제 이름을 걸고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최소한 제 가슴 속은 이건 분명히 잘못한 일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아마 누군가를 노예처럼 부린다면 여러분은 분노하겠죠? 그러나 불과 3~400년 전인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1,200백만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노예로 팔려 아메리카로 실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값싼 노동력으로 혜택을 누리며 이런 부당한 인권침해에 은근슬쩍 눈감고 편승해 즐기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노예제를 찬성하지도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으면서 갔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입장에서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수준의 인간들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분명한 역사입니다. 

18세기 아일랜드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는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악'이 승리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럼 두 눈 질끈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p.s)
1) 서화숙 기자의 칼럼 URL은http://t.co/MooQvhrp1V 이며
더 관련한 내용들은 국민TV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 서울경찰청의 증거분석실 CCTV 자료를 보시고 싶다면 아래 유투브 URL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fGu_YJoqEyc

    필자소개 : 정곡(正谷) 양정훈 (기업사내코치 전문가, 작가, 리더십 FT, 자기경영혁신가)

   2006년부터 매년 300권 정도 지인들과 함께 매일 한 권의 책읽기와 한 편의 칼럼을 나누고 있으며 
   작가의 꿈을 가진 [꿈꾸는 만년필]분들과 글쓰기 공부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전문강의로는 독서코칭, 시간관리 코칭, 글쓰기 코칭 등이 있으며, 
   네이버에서 교육분야 2008,2009 초대 파워블로거, 국제코치협회 인증코치, 한국코치협회 전문코치로 활동 중입니다
   월간HRD협회 선정 2013 베스트 코치이며

   저서로는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나만의 첫 책쓰기] / [내 책은 하루 한 뼘씩 자란다] / [9 to 6 혁명]
            전자책 나도 한번 내볼까?(공저) / 청소년을 위한 시크릿 : 시간관리편 (공저) 등이 있습니다.

   Blog : www.yangcoach.com  / E-mail: bolty@naver.com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조건.


이 한문장이 이 글을 제 블로그에 옮기는 이유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면제부를 받고 싶나 봅니다.

제 블로그를 통해서 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매주 토요일 시청광장에 계시는 분들께 마음속으로 나마 힘들 보탭니다.







출처: 예병일의 경제노트 - 트위터 : @yehbyungil / 페이스북 : www.facebook.com/yehbyungi 


어떤 마을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두 남자의 비유를 들어 생각해보자. 도중에 그들은 길을 잃었지만 그래도 계속 간다. 이제 그들에게는 오로지 함께 걸어가는 옆 사람보다 앞서겠다는 목표만 남았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모든 내재적인 목적들이 소멸하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 남는다. 남보다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자리 싸움이 우리의 운명인 것이다. 꼭 있어야 할 곳이 없다면 남보다 앞서는 게 최선이 된다. (149p)
 
로버트 스키델스키 &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박종현 감수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중에서 (부키)
 
 
이 책의 저자는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 우리에게는 '좋은 삶'(good life)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좋은 삶' 같은 목표가 소멸했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라 '누구만큼'이나 '누구보다 더 많이'라는 상대적인 목표만이 남겠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목표는 저자의 말대로 무한히 계속 멀어져갈 겁니다. '좋은 삶'과는 별 관계 없는 '자리싸움'(positional struggle)에만 매달려 지내기 쉽게 되겠지요.
 
'충분함'(enoughness)이라는 단어도 의미가 많이 바뀐 듯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준으로는 '좋은 삶을 위한 충분함'이지만, 
요즘에는 '욕구를 충복시키기에 충분함'의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내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위한 충분함'이 진정 무엇인지 고민하며 지내야겠습니다.
 

고민하는 삶이 필요한 이유 같습니다.


이미 충분한데... 생각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리다 망가져 버린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서







군자도 미워하는 게 있다.


“군자도 미워하는 게 있는가?”라고 자공이 묻자,
공자가 답했다. “미워함이 있다.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을 떠들고 다니는 사람,
윗사람을 헐뜯는 아랫사람,
용감하지만 예의, 염치가 없는 사람,
자기주장은 적극 펴면서도 고집스러워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 사람을 미워한다.”
- 논어


논어에 나오는 군자와 소인배의 차이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소인은 패거리를 만들고 두루 통하지는 않는다.

‘군자는 두루 통하면서 패거리를 짓지 않지만,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군자는 다른 사람의 일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나쁜 일은 막는다.
소인은 그 반대로 한다.’



#몇 대목이 요즘 상황과 잘 매칭되어 기억하기 위해.... ㅎ







왜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 것이 행복이기 때문이다.

라는 명제를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글



출처 : 예병일의 경제노트

'총체적인 인생설계'만이 개인적인 성공을 이끈다. 이것에 따라 살아야 내일 죽게 되더라도 보람과 만족을 무덤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미뤄진 인생계획'에 따라 살다 보면 보상받기를 원하는 욕심과 다른 것으로 눈 돌리게 하는 방해, 채우고 싶은 허기가 항상 끊이질 않는다. 언제나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258p)
 
 
랜디 코미사 지음, 신철호 옮김 '승려와 수수께끼 - 실리콘밸리 기업가의 성공하는 삶을 위한 아주 특별한 가르침' 중에서 (럭스미디어)
 
'한정된 시간'이 허락되어 있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죽기 직전에 "지금까지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겁니다. 만족할 수 있을 것이고 보람도 느낄 수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가장 소중한 존재인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매 순간 어떤 형태가 손이나 얼굴에서 완벽하게 그려지는가 하면,
자연의 언덕이나 바다에 표현되는 느낌이 다른 어떤 것보다 마음을 끌기도 한다.
한순간 열정이나 깨달음, 지적 환희가
거부하지 못할 만큼 생생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중요한 건 경험의 결과가 아닌, 경험 그 자체이다.
우리에겐 이 다채롭고 극적인 삶에 대해 한정된 시간만이 허락되었다.
어떻게 하면 그 속에서 가장 정교한 감각의 눈을 통해
모든 걸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매 순간 삶의 에너지가 절정으로 타오르는 지점에
항상 발을 딛은 채로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이 단단하고 보석 같은 불꽃으로 언제나 활활 타오르며 이 환희를 유지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월터 페이터(Walter Pater)의 '르네상스 역사에 관한 연구'(1873)에 나온 문구입니다. 
그의 말대로, 중요한 건 경험의 결과가 아니라 경험 그 자체입니다.
 







배푸는 이유는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한 것임을 소수만이 알고 있다고 하네요

진정 그렇기를 빕니다.



출처 :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이야기


(수)억만장자의 공통점-주는 능력이 탁월하다.


사업하면서 억만장자를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이런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주는 능력이 탁월 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게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한다.
‘성공하려면 줘야 해요, 
결국 주는 사람이 성공합니다’라고...

-데이비드 김, 바하 프레시 회장
(‘최고가 되려면 최고를 만나라’에서 인용)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주는 것만큼 당신의 리더십과 인격을 쌓게 하는 것은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부와 리더십의 핵심이
베푸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 억만장자가 적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깊이 느끼고 공감하고 잊지 않게 내용 옮겨 놓습니다.



출처  :  [양정훈의 <삶의 향기>] #1493호 - 착한놈들의 전성시대



로댕하면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나시죠? 다른 로댕의 작품으로 [칼레의 시민]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미지로 검색해 보시면 금방 '아~ 이 그림' 하실 겁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칼레의 시민]이라는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1347년,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프랑스 칼레시 부터 공격했는데, 의외로 이 조그만 성이 한 달도 아니고 1년 여를 버텼습니다. 하지만 칼레시는 결국 식량이 떨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항복했고, 화가 난 영국군은 모두 몰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이 다른 프랑스 성에 전해지면 격렬한 저항을 받을 듯 하여 할 수 없이 본보기로 6명만 처형하겠다고 했지요. 

누가 희생자가 될 것이냐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제비뽑기를 반대한 지도자의 연설로 나머지 5명의 지원자가 나가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 명망이 있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 연설을 한 이가 맨 앞의 작은 키(중간)인 외스타슈입니다. 칼레시 최고의 부자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스스로 실천한 인물입니다. 그 뒤로 장데르(법률가), 형제 피에르 드 위상, 자크 드 위상이 나오고, 학자 장 드핀네, 마지막 으로 앙드리외 당드레가 나옵니다.  

이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려는 순간 영국 왕비의 간청으로 이들은 극적으로 생명을 구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걸어나가는 그 순간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이들 6명의 이야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회자되면서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자랑거리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과연 어느 정일까요? 최근 한국 사회의 부패수준에 대한 외국 기업인의 인식이 3년 연속 나빠졌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홍콩의 컨설팅업체 정치경제자문공사(PERC)가 한국 등 15개 아시아 국가와 미국ㆍ호주에서 일하는 외국 기업의 중간ㆍ고위관리자 등 2,057명을 설문 조사했더니 올해 한국의 부패점수(최악 10점)는 6.98로 아시아 꼴찌며 10년 전보다도 악화됐다는 결과입니다. 

부패점수가 올라갈수록 공정경쟁 기회가 적어지고, 경영리스크는 커져 투자, 외자유치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PERC는 한국이 해외사업을 통해 부패문화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며 '부패 한류론'까지 들먹였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고위층일수록 병역의 의무를 등한시 한다든지, 자녀들에게 특례 조항을 적용시켜 출산, 입학 시키는 뉴스는 너무 평범해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게 현실입니다.  

타인을 위한 진정한 희생을 실천하는 사회 각계층의 리더. 그런 리더를 믿고 온 힘을 다하는 시민들과 직원들. 그런 곳에서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는 가고 진정한 '착한 놈들의 전성시대'가 오는게 아닐까요? 그런 사회에서 더 이상 '착하'다는 말이 경쟁력을 가진 말이 아닌, 당연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필요조건'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p.s) 더 재미있는 건 이 [칼레의 시민] 작품의 뒷 이야기인데요. 로댕이 칼레시의 의뢰를 받아 10년 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한 후 전달하려고 하자 칼레 시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우리가 부탁한 건 호기로운 영웅들의 모습인데,이렇게 나약하게 떨고 있고, 울고 있는 사람들로 만들어 놓으면 어떡하느냐.이거 우리 못 받겠다' 였습니다. 

그러자 로댕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모르는 소리다, 이 사람들이 위대한 것은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처럼 죽음이 너무나 두려웠지만,시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자원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좀 길다.

하지만 읽어 볼 만 하다.

사실인지 여부는 각자 알아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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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훈의 <삶의 향기>]

#1491호 - 부러진 반민특위, 둥지튼 친일버섯.

간혹 사람들이 왜 상식으로 이야기 하는 세상이 그렇게도 오기 어려운 건지 의아해 할 때가 묻습니다. 아마 그 분들의 입장으로 바라본다면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대한민국 근 현대사를 통해 누가 권력을 유지하고 왔는지를 바라본다면 답은 의외로 쉽게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과거사 청산'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근현대사에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전국토와 국민이 짓밟힌 안타까운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때리는 사람보다 더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친일파'입니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한 민족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동포를 짓밟고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함에 따라 찾아온 광복이지만, 역사는 그렇게 비용을 들이지 않은 민주주의를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지금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보수수구세력들이 과거사 청산에 노이로제 같은 반응으로 절대반대를 외치며(지금 역사교과서를 뉴라이트쪽으로 개정하자며 여론을 만들고 있지요) 여론을 조작하는 건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결국 지금 집권당의 전신은 근현대사 공부를 조금만 해보면 한나라당->신한국당->민자당->민정당->공화당->자유당 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유당의 전신은요? 바로 친일세력 아니겠습니까?

민족의 반역자를 단 한번도 제대로 처단하지 못했던 이 나라의 슬픈 역사. 그래서 광복은 했지만 홀로 서기인 '독립'은 진정 요원한 현실이 대한민국입니다. 그런 대한민국에게도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었으니 바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였습니다. 

민중들 스스로 개인 처단의 차원에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움직임 이외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친일파를 척결하려고 했던 건 반민특위가 유일했지요. 해방 이후 이승만과 김구의 입장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승만은 '단합과 단결'이라는 명분으로 친일파 처단에 반대했고, 김구는 "일제에 부합한 민족 반역자들을 반드시 척결하여 민족 정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당시 일제를 몰아내고 (우리가 몰아낸게 아니죠) 정권을 잡고 있던 미군의 생각이 이승만과 일치했었던 겁니다. 결국 미군정은 자신들의 행정적 편의와 안보를 내세워 친일파들을 다시 대거 기용합니다. 친일파 입장에서는 이게 웬 떡이냐 싶었던 겁니다. 몰매맞아 죽겠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다시 몽둥이를 쥐어준 겁니다. 이 기회를 생존의 기로에 선 친일파가 놓칠리가 있었을까요? 결국 군대는 만주에서 활약하던 친일파들이 대거 들어와 다시 장교 자리를 차지했고, 경찰 조직 역시 80퍼센트 이상이 일제하에서 경찰 끄나풀을 했던 자들이 그대로 관식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1946년 XXIV Corps Historical File을 통해 경찰조직을 보면 이게 말이 되는가 싶습니다. 총감(100%),관구장(63%),도경국장(80%), 총경(83%),경감(75%),경사(83%)의 친일경력을 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물갈이에 전면 실패한 해방의 시기였던 겁니다. 몽둥이로 내쫓아야 할 강도에게 몽둥이가 쥐어졌으니 그 이후는 우리가 상식으로 예상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시국이었음에도 독립운동가로 구성되었던 반민특위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신 출발을 했습니다. 경제계 친일파였던 매판 자본가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을 검거했고, 김태석(이종형, 강우규 열사를 체포한 경력이 있음)을 검거했으며, 3.1운동을 진압했던 중추원 부의장 출신의 박중양을 잡았습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악명이 높았던 대표 고등경찰인 노덕술역시 체포합니다. (노덕술은 일본인보다 더 앞장서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한 인물입니다.그런데 이승만 정권은 이런 노덕술을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에 임명합니다. 그리고 노덕술은 1947년 의열단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한 광복군 부사령관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을 체포하고 '빨갱이 두목'이라고 몰아부치고 고문을 합니다. 결국 노덕술은 반민특위가 와해되고 경기도 경찰부 보안주임으로 승진하니 대한민국의 정기가 바로세워졌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반민특위의 활약을 그대로 놓아두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한 이해집단이 생깁니다. 정기보다는 사사로운 기운이 주류를 이루게 하고 싶은 부류들은 현 권력자들과 맞닿아 있는 이해관계입니다. 결국 이승만은 친일경찰들을 전면에 내세워 반민특위 해체에 나섰고 결국 경찰 간부 중 일본 경찰 출신 80퍼센트가 넘은 집단과 손을 잡아 '6.6 반민특위 습격사건'을 일으킵니다. 즉 국회의원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국회 내에서 스파이 활동을 한다는 '국회 프락치 사건'을 조작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매카시', '매카시즘'이라고 하면 이런 색깔론으로 수많은 인명과 인권, 그리고 자유주의를 파괴한 사람의 이름이자 사건으로도 널리 쓰이는데, 뭐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현실로 일어났던 일이죠. 지금도 일부 언론과 손잡고 몇 몇 사건들을 침소봉대로 몰아가면서 색깔론으로 재미를 보려고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변함없이 제일 잘 팔리는 정치 장사입니다. 알면서 당하는 걸 보면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고 일갈하는 프랑스 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의 명언이 떠오르죠. (매카시 사건이 궁금한 분들은 미국 역사나 정치관련해서 인터넷 검색 몇 번만 해 보시면 아실겁니다.)

어쨌든 다시 역사를 짚어보면 이승만은 당시 이 사건을 공안사건 전담인 오제도에게 맡깁니다. 오제도는 보도연맹 사건, 여간첩 김수임 사건, 진보당 사건에 모두 관여했던 대표 정치검사였습니다. (이후에 1977년 정일형이 3·1 명동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여 치러진 종로 중구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9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제11대에는 민주정의당 소속 전국구로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수준 참 알흠답지요?)

결국 국회와 검찰, 경찰들의 탄압으로 1949년 6월 6일 내무차관 장경근의 지시로 중부경찰서장 윤기병이 중부경찰서 병력 40명을 이끌고 반민특위를 습격해 무장해제 시키고 모조리 체포한 후 다시 경찰서로 끌고가 모진 고문을 가합니다. 어떠십니까?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특별법으로 만든 독립운동가 출신 단체를 친일경찰이 습격해서 거꾸로 고문한 사건이 일제치하도 아닌 해방 후 백주 대낮에 버젖이 일어난 일입니다. 


이런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죄가 될만한 일들을 저지르고서도 호의호식하고 그 후손들까지도 그 재산과 권력을 물려받아 떳떳이 살고 있는 나라.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나라 이야기입니다. 반면 먼 나라 선지국 이야기는 어떨까요?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엄격하고 단호했습니다. 샤를 드골 임시정부는 나치독일 부역자 200만 명을 조사했습다. 이 중 약 35만명이 재판에 회부, 10만명 이상이 유죄. 6,763명이 사형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론은 과거사 청산 작업이 미진하고 속도가 느리다고 비판했습니다

프랑스는 4년 밖에 나치치하에서 신음하지 않았지만 나치협력자들을 예외없이 응징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구국의 영웅이라 칭송 받는 페탱 원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드골은 페탱의 부관이었지만, 프랑스의 명예와 자존심을 위해 페탱의 사형선고에 동의했습니다. 
또한 프랑스는 해방 뒤 친독親獨 매국노 숙청과정에서 특히 '언론인/문인'들에겐 매우 단호한 처벌을 했습니다. 1 순위가 친나치파 언론인이었습니다. 독일 점령시 나치에게 우호적인 언론으로 2주이상 발행한 신문은 모두 없앴습니다. 그 이유를 드골을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언론이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치 부역자들을 과감히 처단한 드골은 다시 외세에 침입당해도 민족 반역자는 나오지 않을 거라 말했습니다.(지금 프랑스 기준으로 우리나라 언론을 심판대에 올려 놓는다면 아마 내일 조간신문 발간량은 반 정도로 줄겁니다. 그만큼 -펄프를 제공해야 하는- 나무들도 덜 죽을 거고요. 암튼 친일 청산 실패가 여럿 잡네요.)

자동차 회사 르노는 독일에 비행기와 탱크를 제작해주었다는 이유로 국유화되었습니다. 독일 대사 부인에게 꽃을 보낸 사람, 관 앞에 나치식 인사를 한 장의사도 처벌 받았습니다. 비시 정권 4년간의 부역으로 7037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1만1343명이 공직에서 추방되었으며, 9만5000명이 공민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프랑스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다못해 우리보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한 발 뒤져있다고 보는 중국도 '한간'이라고 불리던 '친일파'를 깨끗이 처단합니다. (1931년 ~ 1945년 사이 만주 사변, 중일 전쟁 등을 통해서 일본제국에 협력하는 자들이 급격히 늘어났었는데, 대표적인 예로 만주국, 몽강국, 왕징웨이 정권 등이 있습니다.) 그 당시 중국 국민당의 패망으로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는 한간 숙청 작업 도중 타이완으로 도망갑니다. 그러나 국민당 정권의 숙청에서 빗겨갔던 한간 세력들은 장제스가 타이완으로 쫓겨간 뒤에도 역시 마오쩌둥 공산정권에 의해 재조사하고 처벌되었으니, 누구에게 권력이 갔어도 '친일파','반민족주의'자들만큼은 연대하여 마무리를 지은게 중국의 역사입니다. (짱깨라는 속어로 중국하면 비아냥 거리시는 분들은 최소한 민족주의 관점-특히 애국, 애족의 보수 관점이라면- 에서만큼은 중국의 근현대사 태도에 한 수 배우고, 우리나라의 교과서 개정 작업에 개탄의 돌맹이라도 한 번 던지는 팔뚝심을 보여주시는게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이후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여러분이 보시다시피입니다.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고, 미국부지 철수로 국가로 반환되어 공원으로 사용되어야 할 부평 땅까지 친일파 송병준에게 받은 거니 내놓으라고 2천5백억대의 소송을 다시 국가에 제시하는 후손들이 활개치는 나라입니다. 교과서는 친일의 역사를 지우려고 로비와 권력을 활용해 안간힘을 씁니다. 누구를 위한 나라이고, 누구를 위한 역사인지 가끔은 걸그룹, 좋아하는 프로야구 중계 챙겨보는 만큼의 반의 반 정도만큼이라도 생각해 보아야 할 주말입니다. 

p.s) 주말이라 글이 길어졌네요.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올바른 미래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매국자들과 결탁하여 결국 홀로 서기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이렇게 3대를 걸친 후손들이 계속 비용을 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여러분 삶의 수많은 문제들의 뿌리를 곰곰히 따져보면 '역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바른 삶이란 올바른 생각과 행동에서부터 출발합니다.양코치가 '민족문제연구소'같은 곳에 후원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올바른 일에 올바른 관심을 보여주는 것. 내 아이들을 위해, 내 후손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는 밑거름입니다. 

p.s)오늘 글은 이동형씨의 [와주테이의 박쥐들], 위키디피아 [한간],[매카시], 시사인 [보수세력이 친일파 되살리는 까닭은?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58] 민족문제연구소 ['민영은 후손 땅찾기 저지' 시민운동 확산http://www.minjok.or.kr/kimson/home/minjok/bbs.php?id=comm_news&q=view&uid=7979], 경향신문 박래용 편집장의 [청산하지 못한 역사, 그 후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262120045를 참조했습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반론 환영합니다. 대신 제대로 된 글로 의견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p.s) 친일 경찰과 연관하여 친일 군대 역시도 우리 나라 역사에 청산하지 못한 썩은 뿌리들 하나입니다. 이런 친일경력을 가진 군대는 '만주'인맥과 연관이 깊죠. 협화회, 만주군관학교, 만주 건국대, 대동학원, 봉천군관학교, 간도특설부대 등이 친일로 여러 활동을 펼칩니니다. 특히 만주군관학교는 아마 '박'씨 가문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한 번씩은 다 아실만할 겁니다. 군대 이야기는 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루기로 하지요.

    필자소개 : 정곡(正谷) 양정훈 (기업사내코치 전문가, 작가, 리더십 FT, 자기경영혁신가)

   2006년부터 매년 300권 정도 지인들과 함께 매일 한 권의 책읽기와 한 편의 칼럼을 나누고 있으며 
   작가의 꿈을 가진 [꿈꾸는 만년필]분들과 글쓰기 공부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전문강의로는 독서코칭, 시간관리 코칭, 글쓰기 코칭 등이 있으며, 
   네이버에서 교육분야 2008,2009 초대 파워블로거, 국제코치협회 인증코치, 한국코치협회 전문코치로 활동 중입니다
   월간HRD협회 선정 2013 베스트 코치이며

   저서로는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나만의 첫 책쓰기] / [내 책은 하루 한 뼘씩 자란다] / [9 to 6 혁명]
            전자책 나도 한번 내볼까?(공저) / 청소년을 위한 시크릿 : 시간관리편 (공저) 등이 있습니다.

   Blog : www.yangcoach.com  / E-mail: bolt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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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다 당신 편


당신의 재능은 
사람들 머리 속에 기억되지만,
당신의 배려와 인간적인 여백은 
사람들 가슴 속에 기억됩니다. 
가슴으로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당신 편입니다.



- 이철환의《못난이만두 이야기》중에서 -


* 외롭습니까?
너무 외로워 마십시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는 인생길,
언제 어디선가 평생 가슴으로 기억되는 길동무를 
만나는 행운의 시간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럼요. 당신이 먼저 가슴을 열면 
그 뒤에 만나는 길동무마다
모두가 당신 편입니다.   
(2009년 1월13일자 앙코르 메일) 





모두가 내편이 아니라도


나로 인해 세상에 등돌리지 않게 되기를


조금더 바란다면


세상에 행복이 있음을 알게되기를


그러한 모습으로 나 또한 세상의 사랑을 더욱 믿게 되고


나 또한 성장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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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8호 - 자유의지는 없는가?


살면서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내가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자유의지를 느끼게 함과 동시에 더욱 책임감 있는 행동을 수반하게 하니까요. 그러나 이런 나의 자유의지 몇 밀리세컨( * 1밀리세컨은 1,000분의 1초)전에 내 뇌가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면요? 그렇다면 나의 자유의지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생리학자 벤저민 리벳은 인간이 자신의 움직이기로 결심했다고 느끼기 300밀리세컨 전부터 뇌의 운동피질에서 활동이 나타난다는 것을 뇌파검사를 사용하여 증명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뇌의 결정을 자유의지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뇌가 '자유의지'라고 느끼도록 착각하게 만들어주는 걸까요? 뇌와 자유의지가 다르다면 자유의지는 어디서 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자유의지는 없다]의 저자 샘 해리스는 이 병리학적, 생화학적 불편한 진실을 곁들여 철학적 유물론에 회의적 접근을 시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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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고 힘빠지는 생각들도 있고, 힘을 주는 생각들도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원하는 사고를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앞선 사건들의 산물이며 그 사건들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잠시 시간을 들여 당신의 다음 번 결정이 어떤 맥락에서 일어날지 생각해보라. 당신은 부모님을 선택한 적도 없고, 생년월일이나 출생지를 선택한 적도 없다. 성별도 선택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인생 경험들도 선택하지 않았다. 자신의 게놈이나 뇌의 발전에도 아무런 통제권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당신의 뇌는 일생동안 주입되어 온 성향과 신념에 기초하여 선택을 내리고 있다. 더욱이 그런 성향과 신념은 당신의 유전자, 어머니의 자궁과 착상된 이래 이루어진 신체 발육 상태, 타인과 사건들과 아이디어들과 가진 상호작용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 여기에 무슨 자유가 있는가? 물론 지금 당장 당신은 원하는 것을 할 자유가 있다. 그렇지만 당신의 욕망은 어디서 왔는가?

                샘 해리스 [자유의지는 없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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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내 마음대로 시작된게 없죠. 부모님, 생년월일, 그리고 태어난 지역, 이 모든 것이 엄청난 우연이자 제게도 행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읽게 된 것도 사실 어떤 환경이나 계기가 습관화를 시작시켜주었겠죠. 물론 시작만 그렇게 했고, 결국 이렇게 계속 읽는 건 나의 의지 아니겠느냐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습관화 되고, 글을 써야지. 책을 읽어야지 결심한 것도 이미 뇌가 최적의 판단을 내리고 '내가 선택했다'고 하게끔 착각하게 만든거라면요?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엇일까요? 진정 내가 선택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이 혼란스러운 주장과 각종 사례는 뜻하지 않게 돌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설명해 주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또한 뜻하게 (예상대로) 돌아가는 인생을 설명하는데도 역설적으로 효과적입니다. 

우연이든 우연이 아니든, 예상가능하든, 예상 가능치 않던 어쨌거나 우리의 '자유의지'라는 개념으로 선택된 건 없다라는 사실 만큼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분명하니까요. (결정론자와 자유론자의 주장을 모두 포함한 양립가능론을 '꼭두각시는 자기를 조종하는 줄을 사랑하는 한 자유롭다'라는 말로 비판합니다.)

여기까지 따라오다보면 이 얇은 책은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뭘 어쩌라는 거야?' 우린 자기 마음대로 심장을 뛰게 할 수도 두뇌를 멈추게 할 수도 없습니다. 내 마음이라는 것이 할 수 있는게 움직이고 읽고 쓰고 맛보고 하는 동물적 움직임인데 그마저도 뇌가 먼저 결정을 한다면요? 

각자의 관점으로 정리해 볼까요? 저는 '자극을 느끼는 범주의 신체기능과 함께 존재하는 어떤 객체'로서 저 자신을 정의해 보았습니다. 이 자극은 쾌감일 수도 있고, 통증일 수도 있지요. (어쨌거나 지금 저는 바깥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뇌도, 뇌에 의해 움직이는 그 어떤 신체기관도 저의 일부입니다. 자식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내 자식이 아닌 건 아니듯, 신체와 뇌, 심장과 허파, 혈관과 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모두 유기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 칩니다. 이타적 희생을 감내하거나 신체적 기관이 노쇠해 작동을 멈출때까지 이들은 나와 함께 합니다. 나란 생각을 주게 하고, 상대방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하는 뇌도 나의 일부입니다. 

내가 선택하진 않았지만 우리(라는 표현이 좀 이상한가요?)가 함께 �어지고 가야 할 공동운명체입니다. 서로 속이기도 하고, 먼저 명령 내렸다고 뻐기기도 하겠죠. 그러나 같이 살고 같이 죽으려고 (가능한) 노력할 겁니다. 만약 제가 살인을 했다고 가정해 보죠. 의사들의 정밀 진단 결과 그것이 내 뇌의 종양때문에 일어난 일일지라 할지라도 타인에게 더 큰 또다른 피해를 주기 전에 저는 구속되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처벌받는) 결정을 지금 뇌만 결정하고 싶어도 몸뚱아리 전체가 같이 책임지는 겁니다. 

이런 하나의 사건에 대해 자유의지의 의심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에라도 저는 공동운명체의 관점을 대입시켜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야만 이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서로의 행동과 관습을 예측하고 불확실성을 파악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조금 더 생존의 메커니즘을 연장하는데 활용할 테니까요. (아마 각자의 뇌들도 그것이 더 효율적일 거라고 알고 있을 겁니다.) 자유의지는 없다. 좋습니다. 없어도 좋고 있어도 좋습니다. 우리의 관습과 나보다 먼저 결정내리는 뇌 때문에 이렇게 오늘 하루 살아가도 좋습니다. 다만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진 것들만큼, 앞으로도 선택할 수 없이 생겨난 많은 순간들을 사랑하겠습니다. 

이 사랑 역시도 제 선택이 아니고 뇌의 선택이라고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사랑을 선택한 뇌라면 제 선택이 아니라도 좋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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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있는 자는 객관적으로 두려운 것을 두려워하고 그에 대비하여 치밀하게 준비 실천하여 성공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자.


왜 용기있는 행동을 해야할까? 도의에 맞고 고귀한 일이기 때문

명예라기 보단 그것이 맞기 때문


  
두려움을 아는 자만이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  
예병일이 노트지기의 다른 글 보기2013년 6월 20일 목요일
두려움을 아는 자만이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공자가 높이 평가한 勇者(용자)란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子罕'(자한) 28'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知仁勇(지인용)이 등장한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지자)는 불혹하고, 어진 사람(인자)는 근심하지 않고, 용기를 가진 사람(용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희의 풀이대로 道義(도의)를 따르기 때문에 당당해서이다. (951p)
이한우 지음 '논어로 논어를 풀다' 중에서 (해냄)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세상이 혼란스럽고 상황이 어려울 때일 수록 자신에게 묻게 되는 질문입니다.
'논어로 논어를 풀다'의 이한우 저자는 공자가 무모한 용맹, 즉 만용을 용기와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소개한 '述而 10'의 내용을 함께 보시지요.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군대를 통솔할 기회가 있다면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 하여 죽어도 후회할 줄 모르는 사람과 나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임하여서는 두려워하고,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세우기를 즐겨하여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책의 이 부분을 읽다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떠오르더군요. 두려움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공자의 가르침과 비슷한 말을 그도 했습니다. 공자는 기원전 551~470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322년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강상진 등 역,길)에서 용감한 사람이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을,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과 마땅히 그래야 할 때 견뎌 내고 두려워하며, 또한 마찬가지 방식으로 대담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도 공자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아는 자만이 진정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무모한 사람' 이야기를 합니다. "켈트인들에 대해 말해지는 바와 같이, 지진이든 큰 파도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친 사람이거나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대담함에 있어서 지나친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며, 용감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이런 무모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무모한 겁쟁이'이기도 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합니다.

"무모한 사람은 경솔해서 위험이 닥쳐오기 전에는 위험을 바라지만, 실제 위험에 처해서는 물러선다. 반면 용감한 사람은 그 전에는 평정을 유지하다가 행동을 취할 때는 빠르고 강렬하다."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통합니다. 공자는 주희의 풀이대로 그것이 도의를 따르기 때문에 당당해서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란 두려운 것들과 대담함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에 관련한 중용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고귀하기 때문에, 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선택하고 견뎌 낸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을 알지만 용기를 내는 것이 도의를 따르는 고귀한 일이기에 그것을 선택해 견뎌내는 것,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치밀한 전략을 세워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 이것이 공자와 아리스토렐레스가 조언해준, 우리가 택해야하는 '용기의 길'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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