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힘 중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믿는다.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원한도 고통도 모두 이해하게 되는 치유


할머니의 시에 대한 열정이 그 분의 일생을 돌아보며 치유되었기를 눈물로 바래본다.


※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앎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저자의 살아온 길이라던가. 해석을 위한 기초 상식이라 던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감동한다.


[양정훈의 <삶의 향기>]

#1570호 - 한센병 할머니의 꽃보다 붉은 울음


"니 그동안 참말로 욕 봤다. 인자 오지 마라."

할머니는 담담히 나지막히 말했습니다.

"전에는 밤에 누우면, 무신 생각이 그리 많은지 잠이 안온다. 잠은 안 오고 생각은 자꾸 나고, 눈물은 왜 그리 나오던지. 그런데
요새는 시 생각한다고 다른 생각이 안 난다. 뭐라고 할꼬. 우찌하면 잘 표현이 될꼬. 하룻밤에도 수십 번은 시를 썼다가 허물다가 안 하나. 어떤 때는 머리가 아파서 에이 하지 말자 하다가도 또 생각하는 기라. 그라마 보모 머리도 안 아프고 잠이 든다."

할머니의 시 쓰기를 도와드린 김성리씨는 묵묵히 할머니와 했던 이야기를 회상합니다. 

"보래이, 김 선생. 내 살아온 이런 이야기도 시가 되나? 참 우습제. 내 다시는 말 못할 줄 알았다. 하모, 누한테 말하겄노. 시를 생각하다 보모 내가 나한테 말을 하는 기라. 그때는 그랬다. 아이다. 이랬다. 혼자 그라마 보모 날이 샌다. 허허허. 참 우습제?"

이말란 할머니는 1927년에 태어나셨습니다. 활발하여 뛰기를 좋아했던 할머니는 19세에 한센병에 걸렸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있어 뱃속에 아이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고, 아이는 결국 수많은 아픔끝에 한으로 엮인 가슴을 찢으며 입양합니다.  

한센병이 걸린 사람들의 난민촌에 갔으나 그들 역시도 주변 사람들의 멸시와 미움을 받으며 이리 저리 거주를 옮겨다닙니다. 그때마다 또 맨몸뚱아리로 더 추운곳, 더 외진곳으로 쫓겨납니다. 그러던 와중에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 딸 하나를 더 낳지만 딸에게만은 일상적인 생활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 이번에는 호적을 파 옮깁니다. 

자신에게 닥친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병과 그 병으로 인해 생긴 이별과 멸시, 헤어짐과 춥고 배고픈 가난. 이 모든 것들을 할머니는 자신의 생으로, 자신의 몸으로 받아냅니다. 몇 번이나 죽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후 삶을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할머니가 죽기 전 (저자의 도움으로) 시를 씁니다. 열 한 편의 시 속에 자신의 삶을 정리해봅니다. '시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으며 찾아간 저자는 시는 치유로 가는 문일뿐, 치유는 시가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시 11편과 그 시를 써가는 과정, 할머니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김성리 저자는 [꽃보다 붉은 울음]이란 책에 담았습니다. 꽃보다 붉은 울음이라는 책 제목은 서정주의 시 '문둥이'에서 나왔던 구절 중 하나입니다. (해와 하늘 빛이/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

백내장이 걸려 동공조차 흐릿해진 할머니께서 기억을 더듬으며, 삶을 돌아보며 지은 열 한 편의 시 중 <내 인생길>이라는 시를 공유합니다. 그 사람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동안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저 역시 2009년 소천하신 이말란 할머니를 기억하겠습니다.


<내 인생길>
            이말란

오늘은 학교 가기가 싫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날을 즐거워하며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고통이 많고
내 앞에는 여러가지 시련이 닥치나
절망에 싸였다.

하나님,이렇게 땅 위에는
모래알같이 많은 인간이 살고 있지만
내게는 나병이라는 걸 내립니까.
하나님도 원망하고 싶고
내 자신도 미워
차라리 이 땅위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이래도 부모는 병든 자식이
그렇게도 좋을까
우물에 물을 뜨러 가시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레박을 빼앗기며
양철통을 발로 차이고
온갖 학대와 멸시와 천대를 받고
돌아오면 모녀간에 부둥켜안고 울어
눈도 붓고 얼굴도 부었네.

분노를 참지 못해 쫓아가서
손톱만한 벌레도
풀의 이슬을 먹고 사는데
하물며 생명인 인간을
물도 못 먹게 합니까?
약한 자는 아무리 말을 하여도
소귀에 경 읽기더라.

너무나도 복잡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
사람이 살지 않는 들판으로
뛰어갔다.

무릎께에는 바람이 불고
미치갱이같이 뛰고 달렸다.
저 먼 바다를 보니 성난 파도는
삼킬 자라도 있으면 삼키려고
이리저리 꿈틀이며 파도를 치더라.
가을 햇빛에 무르익은 벼는
고개를 숙여 추수할 일꾼을 기다리고
차라리 나도 벼가 되었으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겠지.

아, 내 인생길이
왜 이다지도 가시밭길인가.
찌를 때마다 피 흘러
걸을 때마다 핏자죽이었네.
걸을 때마다 잡초에 휘말려서
엎어지며 넘어지며
또 한 자국 걸을 때마다 자갈밭
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진흙이 떡반죽 된 길
하나도 평탄한 길이 없더라
이것이 내 인생길인가.

어느 8월 15일
유난히도 밝은 달이었다
내 발걸음은 태화강을 걸어가
강변에 우둑히 선
반구돌에 우뚝 서서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했다.
이것마저도 내 운명이 아니었는가
뱃놀이 나오는 사람들의 
구제의 손길에 다시 살아났다.

내게도 행운이 있었던가
김철수라는 청년을 알아서
60년 동거생활하며 그 안에서
예쁜 딸을 선물로 하나 받았더라.
그리고 김성리라는 선생을 알아서 
오늘날 말씀의 위로 받고
시를 배우며 가르침을 받아
날마다 시 짓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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