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에 영화 암살을 가족과 보았어요

영화로 나마 독립에 의미를 되세겨 봅니다.

 

 

3·1 운동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탄압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수많은 인파가 종로 일대로 모여듭니다. 사회 지도층, 종교인, 노동자, 농민, 학생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만세 운동은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다음 달인 4월까지 약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운동에 참여했다고 해요.

 

살이 터지고 녹아내리는 형벌, 태형

‘태형’은 몽둥이 등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형벌입니다. 반복해서 당할 경우 피부가 터지고 괴사하는 것은 물론, 세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끔찍한 형벌이에요. 

 그런데 일제는 1912년 제정한 ‘조선태형령’을 통해 이 끔찍한 태형을 하루에 30대씩 최대 90대까지 집행할 수 있도록 했어요.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제외하고 오직 조선인에게만 말이에요.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도 체포되어 태형을 당했습니다. 조선총독부 통계를 보면 총 10,592명의 만세 운동 참가자에게 태형을 선고했다고 하는데, 일제의 공식 통계가 이 정도니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돼요. 이렇게 태형을 당한 이들은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고통받거나, 끝내 후유증을 못 이겨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김명하와 탁창국. 강계 지역 학교를 졸업하고, 누구보다 조국의 독립에 앞장섰던 두 청년은 일제의 잔혹한 태형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당시 김명하를 치료했던 간호사는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어요.

“마취에서 깨며 김 군은 쉴 새 없이 ‘대한독립만세’ 를 외쳤습니다.

사망 당일 오후 내내 김 군은 손가락 끝을 물어뜯으려 했습니다.

그는 곧 숨을 거뒀고, 저는 나중에서야 그가 연신 손가락을 물어뜯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간 애국자가 그러했듯, 그도 자기 손가락을 뜯어 피로 독립선언을 쓰려 했던 것입니다.

 

 

 

https://newstapa.org/article/EaoOR

 

일제 '태형'에 사망한 조선 청년의 '마지막 소원'

일제 '태형'에 사망한 조선 청년의 '마지막 소원'

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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