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생존을 위해 어쩔수 없다.
오랜시간 동안의 환경이 살기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장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생명을 유지했을 것이다.

인간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생각은 표현을 낳고 표현은 말과 글을 만들었다.
지식이 전달되며 시행착오를 줄였다.
지식인이 생기며 문화, 제도, 의식이 생겼다.
환경이 아닌 인간에 의한 진보의 시작이다.
인간만이 스스로 환경을 개척한다.
적절한 방법을 모색하며 도전한다.

하지만 생각이 보수적인 본능과 연결될 때
무지하게 되거나 편견을 가지기 쉽다.
무지와 편견은 강력해 퇴행을 일으키고 동물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타인을 도구화하며 자신의 가치만을 정당하다 말한다.

보수화는 삶이 위협을 받을 때 쉽게 일어난다.
그 위협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삶이 위협받고 있다 생각되면 판단을 잘 해야한다.
잘못된 판단은 더 삶을 힘들게 한다.
권력자는 삶의 풍요가 아닌 위협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뛰어난 한 사람이 내 삶을 해결해 줄 것 같지만 아니다.

진보는 사람들 간의 믿음이다.
다시 일어서 나아가리라는 믿음.
슬픔, 노여움으로 살아가는 자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고통으로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평온한 세상으로 나아간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선생의 글을 다시 읽으니 선생이 네게 묻는다.
넌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지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
부끄럽다. 당당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사상의 은사 앞에 서는 것이 정년 이토록 두려운 일인가.
49-50
나는 지식인인가? 지향하나?


북 체제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나의 지적 수준이 너무 낮았기에. 둘째 북에 대한 경험의 질적 차이 때문에
148
경험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
아이도 어른도
자연에 대한 경험 부족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88
아이에 대한 사랑이 슬픔과 노여움으로
돈에 대한 사랑이






부를 축적하는 경쟁에서는 남을 이기는 것이 행복이었다. 부의 절대적인 크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베블런의 주장은 관찰의 산물이다. 그는 추상적 공리와 논리적 추론에 기대되지 않았다.
행동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233.
깊은 관찰이 진실을 보기 더 쉽다.


역사는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평균적 지성과 성찰 능력도 더 높이 발전하며, 제도의 진화 역시 그만큼 빠르고 수월해진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250
세상은 지성인들에 의해 발전한다 무조건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정부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265
선거 제도는 가진 자들이 이기기 쉽다.
언론을 돈으로 장악하면 끝난다.


진리가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사람은 보통 진리보다는 이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온전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271

근본적 변화는 아름다운 꿈이다.
근본적 변화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기에 사람들은 이런저런 부분적 점진적 개선이라도 해보려고 노력한다.
272


뵐은 후기에서 폭력이 '무지'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무지'란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보는 능력의 전적인 결여"를 의미한다.
289


카타리나 블룸이 묻는다. "그대는 신문 헤드라인을 진실이라고 믿습니까?" 나는 대답한다
. "아니오 믿지 않습니다. 헤드라인을 진실로 믿어도 되는 그런 좋은 신문을 집에서 구독해 보는 것이 내 간절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소망입니다."
302
내 소망이기도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알지 못하면 한국 독자들에게 이런 고위명사는 일종의 장애물로 느껴질 수 있다.
313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도 정확히 해석되지 않는다.
옛날 책은 읽기가 어렵다.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의 의도도 해석되지 않는다.
내가 아이가 아니니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나는 단지 역사가의 작업이 그가 속한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가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흘러가는 것이 사건만은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흐름 속에 있다.
역사책을 볼 때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제 집필되었고 언제 출판되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때로는 이런 것이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낸다. 만일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같은 책을 두 번 쓸 수는 없다는 말 역시 같은 이유로 진실일 것이다.
318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가 진보주의자에게)
"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 믿음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의 격려를 받아들여야 할까?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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