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흑인입니다. 태어나 보니 흑인입니다. 1960년대 버지니아 주는 인종 차별이 극심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경비원으로 일했고 가정은 가난으로 범벅이었습니다.
‘아서 애쉬.’
당시 버지니아 주는 인종 차별을 위해 흑인은 테니스를 못하도록 아예 법으로 정해 버렸습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아서 애쉬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인종 차별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뛰어 넘었습니다. 흑인으로는 최초로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1968년 US 오픈, 70년 호주 오픈 우승, 1968년과 1975년엔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며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가 되었습니다.
인생이란 언제나 굴곡이 있는 법입니다. 그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1979년 심장질환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은퇴 후에도 테니스에 관한 코치의 일과 방송 해설자로 활약했습니다. 아울러 억울하게 생활하는 흑인들을 위하여 인권운동가와 자선 사업가로 활발한 인생을 이어 갔습니다. 그건 그의 존재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있어서 다시 한 번 곤두박질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을 찾았는데 결과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에이즈 감염이라고? 이럴 수가 있는가? 내가 언제 무엇 때문에 에이즈에 걸려야 하는가?’
아무리 부정해도 그건 현실이었습니다. 심장 수술 때 수혈을 받은 피가 에이즈 환자의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러나 애쉬는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전 보다 더 열정적으로 사회봉사에 전념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기 보다는 불우한 이웃을 위해 남은 인생을 쏟아 버려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남은 인생을 쏟았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1993년 그가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뉴스 앵커는 그의 죽음을 알리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가장 인간적인 존경을 받았습니다.
애쉬가 에이즈와 싸울 때 누가 물었습니다.
“하늘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신은 왜 당신에게 이런 무서운 질병을 주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당신입니까?”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온갖 고난을 통과하면서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안았을 때도 ‘왜 나지?’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절망 앞에서도 ‘왜 나지?’라고 묻지 않겠습니다. 내가 만난 고통에 대해 ‘왜 나야?’라고 묻는다면 내가 받은 은총에 대해서도 ‘왜 나야?’라고 물어야 하지요.”

출처 : 좋은생각 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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