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지성인의 삶의 회고에 슬프고

스스로 생각해 깨닳은 지혜의 말들에 공감한다.

 

<내용 중>

“아니야. 나는 매번 패했어. 글 쓰는 사람은 매번 패배한“이해가 안 되는군요. 글로 치면 모든 영역에서 거의 다 백전백승하지 않았습니까?"

 

“아니라네. 난 매번 KO패 당했어. 그래서 또 쓴 거지. 완벽해서 이거면 다 됐다, 싶었으면 더 못 썼을 거야.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 조나단의 생애를 쓰고 자기 타자기를 바닷속에 던져 넣었다잖나. 그걸로 다 썼다는 거지. 난 그러지 못했네. 내가 계속 쓰는 건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야. 정말 마음에 드는 기막힌 작품을 썼다면, 머리 싸매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을까 싶어."

 "모르겠어. 나는 평생 도전이 필요한 인간이었네. 계속 쓰고 또 쓰고 다시 썼네. 강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다시 하는 거라네. 니체도 다르지 않아. '운명이여 오너라.' 위인들이 거창해 보여도 그렇지가 않아. 지면 또 한 번 부르짖을 뿐이지. 스스로 쓸 말이 없어서 남의 얘기나 옮겨봐, 그건 서생이지. 글자 쓰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이 아냐

27

 

“왜요?”

 “지루했거든. 그래서 논문도 몇 개밖에 안 썼다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셨군요."

 “못 참아. 지루해서. 책도 마찬가지네. 내 책이라고 다르지 않아.모든 책을 다 의무적으로 서문부터 결론까지 읽을 필요는 없네."

 "선생님은 그럼 책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의무감으로 책을 읽지 않았네. 재미없는 데는 뛰어넘고, 눈에 띄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 읽지. 나비가 꿀을 딸 때처럼. 나비는 이 꽃 저 꽃 가서 따지, 1번 2번 순서대로 돌지 않아. 목장에서 소가 풀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 난 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먹지 않는다고. 그런데 책을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그 책이 법전인가? 원자 주기율 외울 일 있나? 재미없으면 던져버려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그 기나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나는 세 번을 읽었어. 의무적으로 읽지 않는다는 말이네. 사람들도 친구 사귈 때, 이 사람 저 사람 두루 사귀잖아. 오랜 친구라고 그 사람의 풀스토리를 다 알겠나? 공유한 시절만 아는거지. 평생 함께 산 아내도 모르는데(웃음).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도 모르는 거야. 책 많이 읽고 쓴다고 크리에이티브가 나오는 것 같아? 아니야. 제 머리로 읽고 써야지. 일례로 번역은 창조지만 학술논문은 창조가 아니거든."

41

 

 

 

“어린 이어령은 그때 무엇을 본 걸까요?”

“대낮의 빛. 그걸 느끼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어. 어린아이들에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네. 가장 순결한 영혼이어린아이야. 프로이트도 어린아이 놀이에서 그 유명한 '포르트-다(있다 없다 놀이)'를 발견했잖아. 두 살짜리 외손자가 실타래 가지고노는 모습을 보면서 공포를 다루는 심리 연습을 캐치한 거지. 털실이 침대 밑으로 굴러들어가면 '어? 없네' 했다가 당기면서 '어? 있네. 눈 가리면 엄마 없고, 손 내리면 엄마 있고, 까꿍! 까르르 하는 거 알지?

 엄마 없다? 엄마 있네! 어찌 보면 그게 우리 인생의 전부라네."'엄마 없다? 엄마 있네!' 그게 우리 인생의 전부라는 말이 가슴에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엄마 있네'의 확신이 없으면 인생에 바람구멍이 뚫려버리죠. 가장 가까운 타자가 시야에서 사라져도 영영 떠난 게 아니라는 믿음,그 믿음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저는 압니다. ”

 “그렇지. 그런데 아이 눈으로 보면 엄마는 밤낮 외출하잖아. 엄마가 없어지면 절망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다 또 엄마가 나타나면 기쁘고, 그런데 그 불안을 견디기 힘드니 털실 놀이로 해보는 거지. 실타래를 침대 밑으로 굴렸다가 다시 당겼다가 엄마 없다. 아니 엄마있네. 엄마의 부재를 자기통제 속에 두는 거야.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야. 어떤 이는 애인이 언제 떠날지 몰라 늘 불안해해. 그래서실연당하기 전에, 버림받기 전에 내가 먼저 버려. 그게 일종의 '포르트-다'라고 할 수 있네.

 엄마가 없는 쪽에다 힘을 싣느냐, 있는 쪽에 힘을 싣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져. 해피 엔딩으로 볼 수도 영원한 헤어짐으로도 볼 수도 있어. '있다 없다' 까꿍놀이가 결국 문학이고 종교야.”

 82년 전, 굴렁쇠가 굴러가던 그때, 당신의 죽음 의식이 싹터서 평생을 지배하고 있다고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선생의 말은 어린아이가 부르는 비장한 동요처럼 내 마음을 울렸다. 

57

 

 

그런 '비논리'에 저항할 수 있어야 '자유인'이라고 그가 목소리를높였다.

“선생님! 일상에서 생각하는 자로 깨어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연습을 해야 합니까?"

“뜬소문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게나 있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풍문의 세계에 속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맨chinking man 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 어른들은 머리가 굳어서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 '다 안다'고 착각하니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거 묻지 말라'고 단속을 해. 그런데 쓸데없는 것과쓸데 있는 것의 차이가 뭔가?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의 차이는 뭐냐고? 그건 누가 정하는 거야? 인간이 표준인 사회에는 세상 모든 것을 인간 잣대로 봐. 그런데 달나라에 가면 그거 다 소용없다."

103

 

 

밤사이 내린 첫눈, 눈부신 쿠데타

간간이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질문 없는 답이 숨통을 틔웠다.

“어제 첫눈이 내렸잖아."

"(반색하며) 어제 첫눈이 내렸죠.”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더니 밤에 눈이 와서 새하얗게 깔린 거야. 그때 첫마디가 뭐야?"

"와! 눈 왔다!"

"손님이 온 것처럼 '눈이 왔다'고 해. 어릴 때 생각이 났어. 추워서 이불을 쓴 채로 창문 쪽으로 가서는 창호지 문구멍을 뚫어서 바깥을 보는 거야. 밤사이 내린 눈, 뜰에 장독대에 수북이 쌓인 눈을보면, 너무 좋은 거야. 눈 내린 게 왜 그렇게 기쁠까? 낮에 내린 눈보다 밤사이 내려 아침에 보는 눈은 왜 그리 더 반가울까? 눈부시지. 맑지. 해는 비치는데 은빛으로 온 세상을 덮어버렸어."

"눈이 새하얗게 와서

눈이 새물새물하오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 제가 아끼는 시예요."

“(환하게 웃으며) 경이롭지."

"밤사이 내린 눈은 왜 그렇게 경이로울까요?"

"변화잖아. 하룻밤 사이에 돌연 풍경이 바뀌어버린 거야. 우리가 외국 갔을 때 왜 가슴이 뛰지? 비행기 타고 몇 시간 날아왔더니 다른 세상이 된 거야. 하루하루 똑같던 날들에서 갑자기 커튼콜 하듯커튼이 내려왔다 싹 올라가니까 장면이 바뀌어버린 거야. 막이 내렸다 올라가는 건 일생 중에 그렇게 많지 않거든. 외국 여행을 한다든지, 수술했다 마취에서 깨어난다든지… 그런데 일상에서 유일하게 겪을 수 있는 게 간밤에 내린 눈이라네. 잠자는 사이 세상이 바뀐 거지. 

142

 

내리면 들창에 사납게 들이치거든, 비에는 경이가 없어. 그런데 눈은? 고요하지, 고요한데 힘이 세.

 그거 아나? 서양 사람은 눈을 소리로 표현하라고 하면 빗자루로 쓰는 소리를 내. 한국 사람은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고 하거든. 소리가 없어도 '펑펑'이라고 표현하는 거야. 얼마나 낭만적인가."

 "어제 눈 왔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어요?"

 “문 열어보니까 눈이 왔어. 그래서 집사람한테 그랬지.

 '눈 왔다.'

 '그래? 정말?' 하고 문을 여는 거야.

 가끔 거짓말을 하거든, 우리가 어떤 드라마가 눈처럼 세상 바뀌는 걸 한순간에 보여주겠나."

 멀리 북악산에 희끗희끗 남은 눈을 내다보며 그가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이생에서 볼 마지막 눈인 것처럼, 그림이 담아가려는 듯.

 “봄 여름 가을 겨울……… 진달래가 피고 단풍이 지고 눈이 내리는 것 외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시골에서 나는 자랐네. 자연의 변화가 가장 큰 볼거리였지. 죽음을 앞둔 요즘은 꽃이 피고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리면… 더욱 어릴 적 환희에 가득 찬다네. 요즘 사람들은 어떤가. 바깥 창문보다 텔레비전 창문을 더 많이 보고 살잖아. 옛날엔 창문 열면 바깥에 들어찬 겨울이 들어왔는데, 이젠 인터넷 윈도우 창 열면 클릭 한 번으로 디지털 별세계가 쏟아져 들어와.

 그래서 어제 오랜만에 밤사이 내린 눈이 더 별스럽게 좋았던 거야. 축복처럼 느껴졌어. 날리는 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날리는 건 송홧가루가 좋았네. 집 앞 큰 소나무에서 송홧가루가 날리면 세상이 노랗게 변하거든. 온 세상이 노랗게 수채화 속 풍경처럼 바뀌어버리는 거야. 인간은 절대 바람을 볼 수가 없어. 그런데 송홧가루를 통해 바람을 보는 거야. 하늘 전체에 노란 가루들이 움직이거든. 신비하지."

 141-144

 

 

"하지만 양으로 장사하는 주인 입장에서 보면 아흔아홉 마리 버려두고 한 마리 찾기 쉽지 않습니다. 한 마리 찾으러 갔다가 늑대가아흔아홉 마리 다 먹어버리면 어쩝니까?"

“이보게. 성경의 '탕자' 이야기를 생각해보게나. 자기한테 효도하는 큰아들 놔두고, 집 떠났던 작은아들이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오니 반가워하잖아. 탕자이기 때문에, 집을 나갔기 때문에, 그 한 마리 양이 아흔아홉 마리보다 뛰어날 거라는 생각은 왜 못 하나?

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 먹었지.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 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지 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하는 놈이야. 탁월한 놈이지. 떼로 몰려다니는 것들, 그아흔아홉 마리는 제 눈앞의 풀만 뜯었지. 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닌 거야. 존재했어?"

 허공에 날아든 단도처럼, '존재했어?'라는 스승의 말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165

 

 

 

 “예술에 한정시키지 않더라도,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타고나. 모든 아이들이 다 타고나. 천재로 태어나서 둔재로 성장할 뿐이지. 하나님이 주신 것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갖고 사는 사람들이 천재라네. 그 재능을 어머니가 줬겠어? 아버지가 줬겠어?학교 선생님이 줬겠어? 하늘이 준 거지. 태아는 하늘이 준 재능으로 엄마 배 속에서 10개월을 살아. 그리고 태어날 시간을 스스로 정해서 나온다네. 제왕절개 수술을 하지 않는 한 그래. 아이는 스스로 태어나는 거야. 엄마의 의지로 낳은 게 아니야. 아이가 아이의 의지로 나온 거지. 생일날이 그 의지와 힘이 가장 만개한 날이야. 출생일만은 하나님이 주신 날짜 중에 내가 골라서 나온 것이거든. 그 이후로는 전부 남의 간섭과 보호를 받고 산다네."

 “이미 이전 세대가 정해준 코스를 달리게 되죠."

 "그러다 보니 '짜장면 먹을래? 짬뽕 먹을래?'도 잘 못 고르잖아.선택의 자유를 못 누리는 거지."

 “정해주는 대로 따라가면 책임도 남에게 전가할 수 있거든요. 선택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니까요.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도 인간답게사는 재능인 것 같습니다."

 “제 머리로 선택한다면 그렇지. 그런데 요즘엔 생각도 좌우로 진영 나눠서 정해주더구만. 

 171

 

 

 

 

“애들의 동요 속에 미래의 예언이 있다네. 어린아이들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이렇게 부르는 노래도 다 현대사를 반영하고 있거든. 아이들의 영성은 배운 학식에서 오는 게 아니야. 그냥 직관으로 알아버리는 거지."

 "가끔 저는 선생님이 웃으시는 모습에서 어린아이를 봅니다. 어린이의 세계와 초인의 세계가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가? 지금도 나는 글을 쓸 때 그런 어린아이의 세계를 느껴. 내 글 중에도 영감과 영성으로 쓰여진 글이 있고 억지로 지식으로 짜맞춘 글이 있어. 설명할 수는 없어도 신들린 듯이 쓴 글에는 영성의 빛이 있는데, 사방의 지식을 가지고 쓴 글은 아무리 절묘하게 썼어도 감동을 주지 않아 글 쓰는 데도 운이 있고 영성의 담금질이 있는 걸세. 그건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의 공통의 경험이야. 깜깜한 공백속에서 도저히 풀리지 않다가 어느 순간 탁 빛줄기가 쏟아지지."

222

# 영성을 망가뜨리는 교육체계

 

 

(88올림픽 개막식) 

을………… 그게 얼마나 강력한 이미지였으면, 그 많은 돈 들여서 한 공연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시끄럽던 운동장이 조용해지고 소년이 굴리던 굴렁쇠만 기억들을 하겠나. 그게 어린 시절 미나리에서 돌 던지며 듣던 정적에서 나온 이미지라네."

 “침묵의 힘이 엄청나군요! 그러니까 살아 있다고 질러대는 집단의 아우성이 일시에 소거될 때, 시간이 잠시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그런 느낌이지요."

 “맞아. 우리가 죽음을 의식한다는 것도 바로 그런 거라네. 시끄럽게 뛰어다니고 바쁘게 무리지어 다니다 어느 순간 딱 필름이 끊기듯 정지되는 순간, 죽음을 느끼는 거야. 정적이 바로 작은 죽음이지. 우리가 매일 자는 잠도 작은 죽음이거든. 우리가 침묵의 소리를 들을 때, 그걸 잡아채야 해.

244

 

 

 

"침묵을 만들고 침묵을 견딘다는 건 내공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낯선 시간을 자주 감각하는 사람이 예술가가 되고 철학자가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어릴 때 그런 체험들이 더 잦은 건 왜인가요?"

 "어머니 태에서 가지고 나온 천상의 시간 기억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거지. 커서도 내세라든지 전생이라든지 우리의 체험과 상관없는 공백의 시간을 느낄 때가 있지 않던가. 공백의 시간이 확장되고, 정적이 완전히 점령한 세계가 죽음일세.

 죽음은 고통이야. 그런데 고통이 죽음은 아니지. 고통이 끝나는 공백, 시끄러움이 끝나는 정적……… 그러니까 고통까지도 죽음 밖에 있는 거라네. 숨이 넘어가서 무로 돌아가는 그 순간은 우리가 체험할 수도 느낄 수도 없어.”

 “이미 죽었으니까요."

245

 

 

언제나 그렇듯 선생은 놀라운 비유로 단번설명해냈다. 더불어 디지로그 시대에 최적화된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첨언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말이 있지? 뽕도 따고 님도 보고. 이거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야 이거냐? 저거냐?'가 아니라'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거지'. 외국인들은 디지털이면 디지털,아날로그면 아날로그, 경계가 뚜렷해. 그런 이원론으로 과학과 합리주의를 만들고 매뉴얼과 원칙을 만들어 세계를 리드했지. 하지만 한국인은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 원칙과 직관을 융합해버려.그래서 조직도 오거나이즈가 잘 되는 시스템보다 비상시에 만드는임시 조직이 더 잘 굴러가 한국 사람이 위기에 강하다고 하는데,위기에 강한 게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강한 거라네."

 

"한국인들은 미리 계산하고 계획하고 자로 잰 듯 원칙에 맞게 행동하지 않고, 흐르듯이 상황에 맞춰 직관으로 반응한다는 거지요?”

“그렇지. 우리말에 버려두라는 말이 있지? 버리는 것과 두는 것의 중간이야. 그런데 버려두면 김치가 묵은지 되고, 누룽지가 숭늉되잖아. 버리지 말고 버려두면, 부풀고 발효가 되고, 생명의 흐름대로 순리에 맞게 생명자본으로 가게 된다네.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버리는 건 쓸모없다고 부정하는 거잖아. 버려두는 건, 그흐름대로 그냥 두는 거야. 코로나까지도 버려두면 백신이 되는 거야. 재생이 되는 거라고. 그게 생명이 자본이 되는 원리야.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힘이지."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아니라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인 상태. 함께 있되 거리를 두고,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그 '경계의 힘', 그 사이에서 나온 막춤의 리듬이 디지로그이고, 바이러스의 발효가 생명자본이라고 했다.

"대적이 아니라 '경협(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군요.”

 "그렇지, 에너미cnemy는 안 돼, 라이벌rival 이어야지. 라이벌의 어원이 리버river야. 강물을 사이에 두고 윗동네 아랫동네가 서로 사이가 나빠. 그런데도 같은 물을 먹잖아. 그 물이 마르고 독이 있으면 동네 사람이 다 죽으니, 미워도 협력을 해. 에너미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지만, 라이벌은 상대를 죽이면 나도 죽어. 상대가 있어야 내가 발전하지. 같이 있는 거야. 그게 디지로그 정신이야. 기업도 마찬가지라네.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는 에너미가 아니라 라이벌이식의 모험 정신을, 작은 조직은 큰 조직의 시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해야 해.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 줄 아나? 인터페이스야. 위치로 보면 목!"

"목요? 머리와 가슴을 이어주는 목?”

 "그렇지! 꼭! 분리하면서도 이어주는 목! 머리와 가슴을 잇는 목,

손과 팔을 잇는 손목, 발과 다리를 잇는 발목. 모든 국가, 모든 기업, 모든 개인은 이 '목'이 가장 중요해. 사람 꼼짝 못 하게 할 때 어떻게 하나? 목에 칼 씌우고, 손목에 수갑 채우고, 발목에 쇠고랑 채우지, 인터체인지를 묶는 거야. 우리 어릴 때 놀 때 어른들이 “사이 좋게 놀아라" 그러잖아. 그 사이가 '목'이야.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목이 막히지 않고, 사이가 편안한 상태야. 반면 코로나는 문명과 자연의 사이가 나빠서 왔지. 이 나쁜 사이, 뭉친 목을 풀어줘야 세계가 잘 굴러간다는 얘길세."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그런 사람이 바로 21세기의 리더고 인재라네. 어느 조직이든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망하지 않아. 개발부와 영업부, 두 부서를 오가며 서로의 요구와 불만을 살살 풀어주며 다리 놓는 사람, 그 사람이 인재고 리더야. 리더라면 그런 '사잇꾼'이 되어야 하네. 큰 소리 치고 이간질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저기 오가며 함께 뛰는 '사잇꾼'이 돼야 해.”

 “한때 선생님은 양치기 리더십을 말씀하셨어요. 목자가 양떼를 살피듯………….”

 “그건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를 이야기한 거라네. 목자는 양의 앞도 뒤도 아닌, 양떼 한복판으로 들어가서 양을 지켜낸다네. 진정한 목자는 양가죽을 쓰고서라도 스스로 양이 되어 그들의 삶에 동참하는 거야. 리더지만 플레이어지. 한니발이 그랬잖아. 부하와 똑같은 밥 먹고 똑같은 잠자리에 들고 똑같이 싸웠지.

~ 273

 

 

 

 

“그런데 선생님은 사진 찍는 걸 즐겨하지 않으시잖아요."

“웃는 사진에는 소리가 들려, 카메라 너머에서 '치즈~' 하는 소리. 그게 자기 얼굴인가? 남의 얼굴이지. 나는 여간해서는 제대로찍은 사진이 없어. 다 강연하는 사진이나 말하는 도중에 찍은 사진들이지."

280

 

 

 

"당시엔 우리나라에 고층 건물이 많이 없을 때였어. 나는 60층 건물 15층에서 혼자 생활했어. 뉴욕 간 첫날, 시차가 맞지 않아 밤을 꼬박 새웠다네. 시계도 볼 수 없어 가만히 있는데 어디선가 '삑' 작은 소리가 들리는 거야, 환청인가? 여기서 새가 울 리가 없는데 ・

조금 있으니까 또 삑삑 울어, 이번에는 서너 마리가 조심스럽게 날이 조금씩 밝아지니 짹짹짹짹 여러 마리가 수다스럽게 우는 거야.'삑' 소리를 들은 거지. 깜깜해서 다 잠들운 녀석・

어둠 속에서 새벽의 미세한 빛이 눈꺼풀로 스며들 때 그걸 느낀 예민한 녀석인 거야."

 “선생님은 새 한 마리에게서도 자기를 느끼시는군요!"

 “얼리버드나 퍼스트 펭귄 같은 계도적인 이야기가 아니야. 그 예민함을 이야기한 거네. 새벽인가?' 긴가민가하며 우는 새. 그러면 다른 놈들이 맞장구를 쳐서 '야! 맞다' 같이 울면 새벽이 오거든. 새들은 합창만 하는 줄 알았지? 아니야. 제일 먼저 우는 놈이 있다는 걸세. 울음만 그런가? 방향을 바꿀 때도 그래. 함께 날아가다 최초로 각도를 트는 놈이 있는 거지."

 282

 

 

 

 

옛날 사람들은 기계문명도 몸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은 관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우리 뇌가 얼마나 썩었는지 모르네. 역설적으로 옛날사람들은 뇌가 덜 오염됐었어. 제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건 못 받아들였지."

 "그러니까 선생님의 뇌는 자연의 뇌와 문명의 뇌 사이의 얇은 막에서 태동했군요!"

 “그 얇은 막을 찢고 나왔지. 인간의 뇌는 고생대의 뇌와 신생대의뇌가 있어. 고생대는 변화를 싫어하네. 바깥으로 안 나가고 고향을안 떠나려 해. 신생대 신피질 뇌는 반대야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모든 사람의 뇌에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가 동시에 탑재돼 있어. 변화하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고생대의 머리와 끝없이 새것을찾고 학습하는 신생대 신피질의 뇌, 우리 인간은 먼저 새것을 찾고학습했던 소수자에 의해 나아가고 있네. 소수자가 경험하고 만든 문명에 다수가 거저 올라탄 거야."

 287

 

"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미소 지으며)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당신의 인생은 촛불과 파도 사이에 있었군요. 정오의 분수가 왜슬픈지 알겠습니다."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292

 

 

업어준다는 건 존재의 무게를 다 받아준다는 건데. 서양인에겐 익숙지 않은 경험이군요.

 “그들은 아이를 요람에서 키우니까. 태어나자마자 존재를 분리하지요. 땅에 놓으면 쥐들이 공격해서 아이를 천장에 매달아두기도 했어요.우리나라는 무조건 포대기로 싸서 둘러업잖아. 어미 등에 붙어 커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천성이 착해요(웃음). 서양은 분리가 트라우마가 돼서독립적인 만큼 공격적이거든. 한국의 전통 육아는 얼마나 슬기로워요.오줌똥도 쉬쉬~ 끙끙아~ 하면서 어린애 말로 다 유도를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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