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지 못하는 죽음이 얼마나 많을까?

사람이 아는 것은 세상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타자의 죽음에 대해 상상하지 않으면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마음에 온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로 조합한 죽음은 사실과 동떨어 졌고

동떨어진 생각은 오해와 편견을 만든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와 연결된 사회와 관계가 있고

그 관계로 인해 결국 나는 그의 죽음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

나의 삶은 그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나의 저렴한 생활이 가능해 진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좀 더 편하게 살거나

누군가의 욕심으로 좀 더 불편하게 사는 것 같다.

 

더 편하게 살고자 한다면 조금이라도 나누고 도우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인류가 발전한 이유이기 때문일 꺼다.

 

김동준 학생의 죽음과 그 외 일터에서 죽은 많은 학생들의 명복을 빈다. 

 

 

유족들을 위로하는 방법은 슬픈 이야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내 생각과 사회의 시선으로 하지 말고 아픔이 있는 상대의 생각대로 해주자.

치유는 근원을 드러내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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