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향기 Lett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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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훈의 <삶의 향기>]

#1900 - 내 손엔 그대들이 너무도 많아

가끔 우리는 "나는 혼자야!" 라는 말을 내뱉곤 하는데 생물학적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과학 저널리스트인 에드 용이 말합니다.
미생물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을 때 그들을 먹고, 우리가 여행할 때 함께 떠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죽을 때 우리를 분해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그들의 역할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해 왔던 미생물의 역사는 우리를 겸허하게 만듭니다. 지구 나이는 약 45억 400만 살로 추정하는데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이해하기 어려우니 1년을 지구 나이로 환산해 보자면 (지금 2017년을 12월 31일 자정 직전이라 치고)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로 지구상에 머물기 시작한 시간은 밤 11시 30분 부터입니다. 공룡은 12월 26일 저녁까지 있었고요. 꽃과 포유동물은 12월 초에 진화합니다. 11월에 식물이 육지에 상륙했고, 다세포 생물이 10월 초에 진화했습니다. 

즉 10월 이전에는 거의 모든 생물들이 단세포 생물이었다는 뜻입니다. 단세포 생물이 지구상에 처음 태어난 생명은 3월 어느날 정도입니다.

지구에서 30분 동안 숨쉬고 있는 인류라는 종과 3월 부터 지금까지 약 9개월을 숨쉬고 있는 미생물과의 비교입니다. 그들은 토양을 기름지게 만들고, 오염 물질을 분해했으며, 지구의 질소, 탄, 황의 순환주기를 이끌며 원소들을 화합물로 전환시켜 동식물에게 공급함으로써 자연을 일궈내기 시작했습니다.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너지를 활용해 식량을 자급자족한 최초의 생물이며 노폐물로 산소를 배출해 지구의 대기 조성을 바꾼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소우주라는 표현을 쓰는데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별의 개수보다 한 인간의 소화관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개체 수 가 더 많다는 사실에 근거하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모래알 하나에서 세상을 보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본다'는 말 처럼 세상의 모든 부분은 함께 함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우리의 장기를 독소와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며, 음식물을 분해하고, 면역계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할 때조차 매순간 타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삶이라면 조금은 시각을 넓혀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나 자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조차 말이죠. 우리 모두 그런 존재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과학 저널리스트인 에드 용의 책 [1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I contain multitudes]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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