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가 안고 있는 그릇된 역사해석

역사해석 하나 : 군사제일주의

영화를 보면 실미도부대장인 안성기를 비롯해 대부분의 부대관련자가 작전계획이 정치적 판단에 의해 취소된 데 대해 분노와 개탄의 목소리를 발한다. 본의 아니게 군사문제에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군사제일주의가 은연중 전파될 위험을 이 영화는 안고 있다. 그래서 정치적 개입이 없었더라면 주석궁이 폭파되어 결국 통일이 되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는 식의 허황된 상상이 관람객 사이에 쉽게 자리잡은 점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군사제일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우리는 역사 속에 쉽게 확인한다. 6.25전쟁 때 미군사령관인 맥아더는 한반도와 중국접경에 무려 26개의 원자탄을 투하할 것을 강력히 고집했다. 만약 국제여론과 정치가들이 이 전쟁광인 맥아더의 군사제일주의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미국의 고위장성은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랬을 경우 그 엄청난 전쟁참화는 미국이 안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우리에게 씌워진다.

필자는 2004년 국방비 증액과 자주국방의 문제점에 대한 학술토론회를 사상 처음으로 국방부 산하기관과 민간 평화운동간에 가진 적이 있었다. 당시 절감한 것은 국방장관은 절대 군인출신이 맡아서는 안 되고, 군사정책 문제는 국방부 산하에 둘 것이 아니라 대통령 직속으로 두어 군사제일주의의 침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분단냉전체제 아래 있는 우리의 경우 국방부나 군사관련 기관의 힘이 막강하여 이들에 대한 문민통제는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

역사해석 둘 : 국가혐오주의

영화는 국가주의의 문제점을 아주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훈련병의 주민등록을 아예 말소시켜버리고, 훈련병 모두를 살해함으로써 부대해체와 비밀의 탄로를 막는 계획을 국가가 꾸몄다. 그야말로 인간은 없고 단순한 소모품으로만 부대원들이 인식 및 취급되었다. 이 결과 국가혐오주의가 영화 전 장면에 깔리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국가주의에 대한 경계는 정당하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이런 혐오주의의 대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 냉전개발독재국가 시대의 국가와 민주화 시대의 국가는 동일한 국가가 결코 아니다. 영화 속의 국가가 모든 국가의 본질인양 과대 일반화되는 영역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국가주의에 대한 경계는 좋지만 잘못하면 신자유주의 식의 시장독재 찬양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다.

역사해석 셋 : 패거리주의

영화는 훈련병들 사이의 끈끈한 전우애를 듬뿍 담고 있다. 극단적 상황일수록 이런 전우애는 필요하고 끈끈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피로 뭉쳐진 전우애가 가져올 파국에 대한 경계심이 희박해지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 특히 군사문화가 시민사회 곳곳에 침투한 우리 사회의 경우 유독 의리를 강조하는 악습이 남아 있다. 흔히들 전두환과 장세동 간의 의리나 깡패들 사이의 의리도 의리 그 자체는 높게 평가되어져야 한다고 한다.

전우애나 의리가 변종이 되다보면 패거리주의가 된다. 이는 소집단의 이익과 의리 및 전우애를 위해 보편적 가치인 사회규범이나 윤리규범을 박 먹듯이 위배하는 것으로 반윤리와 범법행위로 귀결된다. 친구간의 우의를 위해 친구의 강도 짓에 동참하는 것이 올바른 우의나 우애는 아니듯이 빚나간 전우애가 XX대 전우회 같이 얼마나 극우적인 폐단을 가져오는지를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전두환이 이끈 하나회라는 군대 패거리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짓밟고 광주학살을 불러온 반역사적 범죄는 바로 패거리의리와 전우애에 기반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냉전성역 허물기''의 일상화를!

위의 북파공작원 문제와 같이 현대사, 북한, 통일 영역의 많은 현상들은 극단적인 냉전분단체제 아래 이제까지 음폐되고 왜곡되어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남북이 서로를 원천적으로 적대 및 부정(否定)하여 상대방에 대해 악의적인 덧칠을 하여 악마화 하고 자기 것은 절대적인 선으로 미화하거나 신성시 해왔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전쟁, 친일파청산, 정통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주한미군, 연방제, 주체사상, 김일성, 김정일, 민족자주, 평화협정 등이다. 여기에는 언제나 교과서와 같은 ''표준정답''이 있어 이에 도전하게 되면 그들은 인혁당이나 조봉암처럼 죽음에 처하게 되거나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을 받고 또 왕따도 당하고 불이익을 겪어야 했다.

필자는 이들을 냉전성역이라고 개념규정 했다. 곧, 극단적인 냉전분단체제 아래 어느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는 성역, 곧 금기영역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규정했다. 이들 냉전성역에 대한 표준정답은 진짜 정답이 아니라 허물어져야 할 허구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세계사적인 탈냉전과 민족사적인 통일시대를 맞은 이 시점에서 이들 냉전성역을 허물지 않고는 민족의 화해, 협력, 평화, 통일을 향해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냉전허물기를 통해 역사의 진실과 실재를 밝혀 냉전논리에 의해 왜곡된 것을 바로잡고 극복해서 이 냉전성역들이 더 이상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민족앞길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일, 곧 냉전성역 허물기는 꼭 거창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맞닥뜨리는 영화 실미도와 연극 한씨 연대기 등을 통해 영감과 고뇌를 얻어 한 두 발자국씩 역사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데서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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