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10 (수) 00:13 오마이 뉴스

클린턴과 노무현, 그 ''탄핵''의 차이

[오마이뉴스 지용민 기자]"이번 사건을 촉발시킨 저의 언행과 그로 인해 미국민과 의회에 큰 부담을 안겨 대단히 죄송합니다."

1999년 2월 12일. 자신에 대한 탄핵안이 상원 표결에서 부결된 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당시 하원을 통과한 탄핵안이 상원에서까지 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연방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고 상원의원 1백명이 배심원이 되는 상원의 탄핵재판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인 67명이 찬성해야 하지만 당시 공화당 55명, 민주당 45명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에게 탄핵안이 발의된 사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법방해였고, 다른 하나는 위증죄였다. 헌법을 보호하고 사법제도를 지켜야할 위치의 대통령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법적 정의실현을 방해했다는 ''사법방해'' 사유가 있었고, 위증죄는 법정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했음에도 ''거짓증언''한 사실이 탄로 났기 때문에 추가됐다.

사법방해와 위증죄는 법치체제의 근본을 부정했다는 비난을 야기했고 미 하원은 법치제도 수호차원에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435명의 하원 의원(당시 의석분포- 공화 228, 민주 206, 무소속 1) 중 연방대배심 위증과 관련된 탄핵 결의안은 찬성 228, 반대 206표로 통과됐다. 사법방해 결의안 역시 찬성 221, 반대 212표로 통과됐다.

이후 상원에서 표결이 진행됐다. 위증 혐의는 찬성 45표 반대 55표로, 사법방해 혐의는 찬성과 반대가 각각 50표씩을 얻었다. 2개항 모두 의결정족수인 67표(재적의원 3분의 2)에 크게 미달해 탄핵안은 부결됐다. 민주당 상원의석이 45석이었음을 고려할 때, 부결은 예상됐지만 공화당 의원들조차 상당수 ''반대''에 표를 던진 결과였다.

부결되긴 했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안은 미 헌정사에 또 한 차례 수치스러운 사례로 기록됐다.

미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이 탄핵재판을 받은 것은 지난 1868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클린턴은 이후 131년만에 그 불명예스러운 전통을 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단 1표의 도움으로 인해 가까스로 탄핵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한 표를 던져 대통령을 구한 상원의원의 ''현명함''은 이후 케네디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 저술한 ''용기의 모습들(Profiles in Courage)''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미국의 제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의 탄핵 사유는 남북전쟁 이후 남부지역에서의 노예해방, 흑인의 권리보장에 소극적이었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사유였다. 명백한 불법행위가 없었지만 당시 의회는 존슨의 태도에 분개하던 급진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상원에서 탄핵에 대한 표결이 진행됐고 재적의원 54명 중 3분의 2인 36명의 찬성이 있으면 존슨은 불명예퇴진을 할 위기였다.

스코어는 35대 18. 나머지 한 명이 어디에 표를 던지느냐에 따라 미 헌정사상 최초로 의회권력이 최고 통치권자를 무너뜨릴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존슨 대통령에 분개하던 급진당 소속 로스 의원이었다.

고민 끝에 로스 의원은 ''무죄''표를 던졌다. 35대 19. 탄핵은 부결됐다. 급진당은 로스 의원의 행위를 거세게 비난했지만 로스 의원은 "의회가 대통령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쉽게 탄핵을 결정하는 것은 헌정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1974년에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결과로 하원에서 탄핵 소추를 건의한 뒤 하원 본회의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기 직전에 사임했다.

닉슨은 명백한 범죄행위로 인해 스스로 물러난 경우이고, 클린턴 역시 사법방해와 위증죄라는 탄핵 사유가 있었다. 존슨 대통령의 경우 의회와의 정책에 대한 이견 차이였지만 반대당 소속 의원은 ''헌정파괴 반대''라는 대의를 쫓아 탄핵 반대에 표를 던졌다.

한나라당, ''탄핵'' 이외 선거 치를 뾰족한 다른 카드 없어

우리도 ''드디어'' 선진국 미국처럼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선례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 소추'' 위기에 몰린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번 탄핵안은 야당의 정치적 공세 이외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노 대통령이 명백한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탄핵발의는 얼마 남지 않은 4.15 총선 국면을 ''친노 대 반노'' 구도로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야당의 의도가 어느 정도로 절실한 것인지를 보여줄 따름이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야당으로서는 이번 총선을 확실히 ''친노-반노'' 구도로 이끌 수 있다. 선거의 큰 그림을 ''노무현 정부 1년의 실정(失政)''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탄핵안이 국회에서 부결된다고 해도 소기의 성과는 이미 거뒀다. 열린우리당을 지지한다는 대통령은 최초로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 대상이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탄핵소추는 한나라당의 오랜 고민이었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3월 18일 제2창당에 준하는 행사를 예정해 놓고 있다. 차떼기 정당이라는 치욕스런 이름을 가진 ''한나라당''은 최병렬로 대표되는 구 체제가 안고 가고, 새로운 술은 ''뉴 한나라''라는 새 부대에 담겨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뉴 한나라''로 선거를 치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벤트는 예정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대표가 돼 선거를 이끌 새로운 얼굴은 찾을 수 없고, 박근혜·홍사덕의 이름만이 오르내릴 따름이었다. ''뉴 한나라''는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고, 당개혁을 향한 고통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당 지지도는 떨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3.18 이벤트'' 역시 성공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4월 총선은 ''정치개혁''이 화두가 될 것이 명약관화했다. 불법정치자금과 관련된 구호들이 열린우리당의 벽보 등을 통해 등장할 것이고, 어느 벽보건 빠짐없이 ''차떼기당'' 운운할 것이 예견됐다. ''한나라 대 반한나라''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반복되는 여론조사결과는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PK에서도 열린우리당에게 밀리고, TK에서까지 적신호가 켜지는 상황이었다. 국민들은 한나라당보다 검찰을 신뢰하고 있는 듯했다.

이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탄핵''이 유일했을 것이다. 그러나 벼룩도 낯짝이 있었던가. 민주당이 먼저 제안해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아량을 보여줬다. 그리고는 드디어 한나라당 다수로 탄핵이 발의됐다.

탄핵정국, 오히려 정치개혁이 화두될 듯

탄핵카드가 선거정국을 기존 ''한나라 대 반한나라'' 구도에서 ''친노무현 대 반노무현'' 구도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적어도 노 대통령이 상처를 입을 것만은 확실하다. 4.15 총선 현장에서 ''차떼기당''이라는 단어만큼이나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 탄핵이 발의될 정도로 ''문제가 많은 대통령''이라는 맞대응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당에서 제기한 탄핵사유는 ''헌법학개론''에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선례가 없었기도 했지만 앞서 미국의 사례로 비춰볼 때, 그 사유가 비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의회권력의 횡포로 인식될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거의 유일한 불법사항이라고 한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지적당한 ''특정 정당에 유리한 발언''인데, 이 사안으로 탄핵이 가능하다면 대한민국 개국 이래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은 탄핵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일례로 15대 총선 때, 한나라당 강삼재 의원이 당시 YS로부터 받은 ''안기부 자금''은 어떻게 처리해야 한단 말인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동발의로 제출된 탄핵 사유를 보면 그 명분 없음이 지나칠 정도다. 이들은 크게 세 가지를 사유로 들고 있다.

(가) 국법질서 문란
(나) 자신과 측근들의 비리 사실로 인해 국정을 이끌 도덕적 명분 없음
(다) 경제 위기 상황 초래 등.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 세 가지를 야당에서, 특히 한나라당에서 들고 나왔다는 점은 의회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필요한 상황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안풍, 세풍, 불법정치자금 수수 및 유용, 차떼기, 구속의원 석방결의안 통과 등등 지난 몇 년 동안의 행적을 보면 한나라당이 탄핵발의를 했다는 대목에서 놀라움을 느끼는 네티즌이 상당수다.

불법정치자금으로 인해 어느 당 소속 의원들이 사법심판을 더 많이 받았던가. 명확한 이유도 없이 의회권력을 발동시켜 서청원 의원을 꺼낸 사람들이 누구였던가. 안풍, 세풍 등 행정기관까지 동원해 선거자금을 끌어들였던 일로 곤욕을 치르는 정당이 어디인가.

탄핵정국에서 조·중·동은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자칫 독주하는 의회권력에 의해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두 발로 청와대를 나올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 정국의 대립각은 한-민 공조를 이룬 야당과 청와대+열린우리당이 세우는 형국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위시한 조·중·동은 의외로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고 있다. 탄핵 발의가 된 것은 유감이나 ''대통령이 잘못한 일이니 먼저 사과하고 끝내라''는 주장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10일자 사설을 통해 "국정의 만사(萬事)를 오로지 총선 전략의 도구로 만드는 대통령과 어리석게도 여기 번번이 충동적으로 휘말려드는 야당이 벌이는 끝없는 행패 속에서 이 나라는 지금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고 주장해 이 책임의 대부분이 노 대통령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10일자 <동아일보>의 논조 또한 동일하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처음부터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았거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고 국민에게 사죄했다면 탄핵이 발의되는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유야 어떻든 자신이 탄핵이 발의된 첫 현직 대통령으로 기록된 점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중앙일보> 역시 대통령이 책임이 있으니 먼저 사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대통령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즉각 사과하고 앞으론 선거중립을 지키겠다고 다짐해야 하며 여야는 이를 출발점으로 꼬인 정국을 풀어나가길 바란다."

모든 신문이 다 조·중·동과 같진 않다. <한겨레>는 이번 2야의 탄핵발의를 일컬어 ''거야 쿠데타''라고 정의했다. <경향신문> 역시 명분 없는 탄핵발의에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서울신문> 또한 야당의 탄핵발의는 ''정치적 파괴행위''라고 거세게 비난하고 나섰으며, <국민일보>는 ''야당의 철회돼야 할 정치공세''라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사유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사유를 비교하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또한 탄핵을 논하는 조·중·동의 시각을 접하면 왜곡된 여론시장의 자화상을 보여줄 따름이다.

''의견은 자유이나 사실은 신성하다.'' 언론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권위의 상인 퓰리처 상의 모델 죠셉 퓰리처가 한 말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솔직하게 ''말''만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했다는 이유가 결정적인 탄핵사유가 되는 것인지, 그 ''사실''은 국민들이 알 것이다.

조·중·동의 의견은 자유다. 그러나 ''이번 사단은 대통령이 먼저 시작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지용민 기자 (ymchi@yonsei.ac.kr)

할말을 잃을 만큼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세계에서 문맹율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하는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똥뭍은 개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보고

''넌 개도 아냐'' 라고 말할 수 있나요?





'paran 시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위장소 공고  (6) 2004.03.12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2) 2004.03.12
함께 눈치우는 즐거움  (1) 2004.03.05
청계천 문화재 현장조사  (0) 2004.03.05
3.1 절에.  (3) 2004.03.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