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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언제나 괜찮았다. 특별히 '작업'을 걸지 않아도 몇 번의 신호만 보내면 여자쪽에서 순수히 넘어와 주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언제나 그를 떠나가버렸다.
만난지 백일을 못 넘기고 이별을 통보받은 남자는 화를 억누르고 이유를 물었다. 이번이 세번째이다. 그는 드디어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의 진심을 가늠해보듯 가만히 눈을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을 해 줄 수는 있는데, 한가지 조건이 있어.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끼어들지 마. 시선을 돌려서도 안 돼. 초조한 표정도 짓지마.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난 바로 일어나서 나가버릴 거야."
그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굳게 다문 다음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여자는 여차하면 일어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듯 두 손으로 가방을 움켜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좋았지. 호감 가는 인상에 유머도 있고, 뭐든 척척 잘해내고, 자신감 넘치고 내 남자 친구는 이런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야. 너는.
그런데 이상하지. 너와 함께 있으면, 내가 몹시 시시한 사람 같아져. 특별할 것도 없고 의미도 없고 그저 너한테 붙어 있는 액세서리 같은 기분? 그래서 이유를 생각해 봤어.
내 결론은, 넌 나에게 전혀 집중하지 않는다는 거야. 너에겐 다른 사람을 관찰하려는 의지가 없어. 타인의 기분, 느낌, 생각 같은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해. 소통할 수가 없는거야. 나를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을 이유가 없잖아? 이런 말도 너한테는 안 들리겠지만, 그동안 쌓인 정을 봐서 말해주는 거야."
막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를 향해 그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애절하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일어선 채로 그녀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떤 그림이든, 마음에 드는 걸 한 장 골라. 시간이 날 때마다 그걸 들여다 봐. 빛을 보고 색깔을 보고 구도를 보고 느낌을 봐. 선을 보고 면을 보고, 여백을 봐 그림이 마음을 열 때까지 귀를 기울여.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어. 눈을 감고 그 그림의 세밀한 부분까지 떠올릴 수 있을 떄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서 봐야 해. 그 일에 익숙해지면, 그때 누군가를 만나도록 해. 부부을 기억하고 전체를 이해하는 것. 그게 소통이라는 거야."
-작가 황경신의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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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진짜 운 좋은 남자죠? 웬만한 여자라면 이런 말 안해주고 떠나거든요.
다음 4번째 만남때 상대방의 삶을 기억해 주고,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람으로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좋은 하루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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