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왜 해병대에서 나를 이 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임명되었으니 우리 함께 잘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나는 내 학력이 여러분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현재 내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살지만, 사실 남들이 보기에 근사한 직업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최근에 복무한 경력이 있고 다들 능숙한 비행사들이라 요즘 해병대가 어떤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여러분에게 직접 지시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은 비행대대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정보장교도 있고, 작전장교도 있고, 정비장교도 있고, 행정장교도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맡은 일을 잘해 주길 바랍니다. 소통하고 팀워크를 발휘하여 서로 잘 돕길 바랍니다. 나는 뒤로 물러나 있겠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나이든 퇴역장교보다 더 유능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조종술도 여러분보다 못하기 때문에 그걸로 여러분에게 존경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나라는 사람은 존경하지 않더라도 내가 입고 있는 이 제복과 계급은 존중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비행대대를 이끌어 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319p)
밥 루츠 지음, 홍대운 옮김 '빈 카운터스 - 숫자와 데이터로 기업을 망치는 사람들' 중에서 (비즈니스북스)
GM과 BMW, 포드, 크라이슬러의 부회장을 지낸 밥 루츠. 47년 동안 자동차 분야에서 일한 '자동차 업계의 전설'인 루츠는 1960년대 초 UC버클리 경영대학원에 재학중이었습니다. 그는 동시에 버클리 부근 해군 기지에 있는 해병대 예비군 비행대대에 전투기 조종사로도 있었지요. 미국의 예비군은 우리의 예비군과는 달리 장기간 훈련을 받고 해외훈련에 참가하기도 합니다.
어느날 루츠의 비행대대의 지휘관이 바뀌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아트 바우어는 원래 장교는 아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장교로 임관한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샌프란시스코 소방서의 말단 소방관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UC 버클리와 스탠포드 대학원에 재학중이었던 비행대대의 중위, 대위들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해병대가 자신들에게 가방끈도 짧고 나이 든 소방관을 지휘관으로 보냈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임식이 끝나고 키가 작은 예비역 중령인 아트 바우어는 20여명의 젊은 장교들에게 짧은 연설을 했습니다. 그러자 새로운 지휘관에 대한 의심과 비웃음은 즉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반 후 아트 바우어가 지휘하는 루츠의 비행대대는 전체 해병대 예비군 부대들 중에 최고의 부대로 선정됐습니다. 작전수행 준비태세도 1위였고, 무기보급 능력도 1위였으며, 감찰관의 평가점수도 1위였습니다.
루츠는 자신감이 가득하고 건방지기까지 한 미래의 의사, 변호사, 경영전문가들로 구성된 그 비행대대에 바로 아트 바우어 같은 리더가 제격이었다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리더십에서 무언가를 꼭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위에 루츠의 비행대대에 새로 부임했던 아트 바우어의 연설 내용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요즘 자신이 제일 잘난듯 떠드는 교만한 리더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한 초선의원이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새끼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라고 말했다 하지요. 국회의원을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단한 벼슬'로 생각하는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리더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트 바우어의 연설을 보며 진정한 리더와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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