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다음 김진화 기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송두율 교수 가족은 그 어느 해보다 슬픈 명절을 보내야 했다. 독일에서도 해마다 설날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떡국을 들고 세배를 나누며 고국의 정취를 그리워했다는 송 교수 가족. 고국에서 보내는 설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한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서울구치소의 차가운 독방에서 명절을 나야 하는 남편 생각에 정정희 여사(62)는 이내 눈시울이 불거졌다.

“오늘은 참 슬픈 날입니다”.
설을 하루 앞둔 21일 장남 준(28)씨와 함께 서울구치소로 면회를 다녀 온 정 여사는 22, 23일에는 면회를 할 수 없어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독일인 바루트 목사 등 지인, 친지들과 시간을 보냈다.

21일 면회에서 정 여사는 구치소 측과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수면용 안대를 넣어주려는 것에 대해 구치소 측이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24시간 형광등이 켜 있다는 독방, 그 탓에 송 교수는 밤에도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고 한다. 가벼웠던 천식 증세가 다시 심해졌고, 한번도 앓지도 않았던 고혈압까지 발병해 송 교수의 수감생활은 설상가상 더욱 괴로운 실정이다.

추위가 심하지는 않지만 윗풍이 드세 송 교수는 늘 장갑을 끼고 지낸다. 정 여사에게는 그 마저 안타까운 일이다. “항상 장갑을 끼고 지내서인지, 심리적으로 위축돼서인지 요즘은 좀처럼 글을 쓰지 않습니다. 평생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 온 사람인데…”.


“보수언론의 마녀사냥, 인권을 무시하는 공안기관… 야만의 한국사회”

정 여사가 느끼는 슬픔은 지금의 상황을 있게 한 일부 보수언론과 공안당국을 향한 분노로 이어진다.
“언론이 변하지 않고는 민주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멀고 험할 뿐이라는 사실을 통감했습니다. 한국의 보수언론은 알권리의 대변자를 참칭하면서 국민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귀국 후 수구세력에 의해 송 교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최대거물 간첩’, ‘北 거물공작원’ 등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수식어를 붙여 온 보수 일간지들. 그러나 재판을 통해 하나 둘 진실이 밝혀지는 단계인 지금은 사실보도조차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그는 꼬집었다.

“한쪽에선 의혹을 제기하고 다른 쪽에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를 대서특필합니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런 식으로 여론재판은 끝나버립니다”. 사회적 약자의 요구에는 법치주의의 잣대를 들이밀다가도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땐 ‘자기들만의 법정’에서 마녀사냥을 자행하는 거대 언론이 지배하는 사회, 정 여사가 보는 한국사회는 여전히 야만의 습속을 떨쳐내지 못한 사회였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공안기관의 비인권적인 수사 방식 또한 민주주의 정부 하의 합리적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여사는 "변호인 입회를 허용치 않았던 국정원은 청와대와 독일대사관에 변호인 입회 하에 조사하고 있다는 거짓말까지 둘러댔다"고 말한다. 조사를 하는 방법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12명이 30분에 한번씩 돌아가며 조사를 하는 등 고령의 피조사인에게 혼란을 주는 수사기법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정 여사는 “지하 조사실에서 하루 종일 포승을 당한 채 기다리게 하는 등 모멸감까지 주면서 작성된 자술서는 도저히 민주화된 문명국가의 공권력 시스템이라고 받아 들이기 힘든 부분”이라고 탄식했다.


“너무 순진했다. 이제는 당당히 맞서 싸울 것”

38년 만에 돌아 온 고국에서 맞이한 참담한 상황. 정 여사는 처음부터 국가보안법 등 구시대적 유물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렀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공안당국의 조사에 협조할 것을 권유한 주위 사람들의 판단을 믿은 것이나, 한국의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송 교수와 자신의 대응이 결과적으로 수구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입국 당시부터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도 기념사업회 측에선 ‘가만히 있자’며 문제 확산을 막기에만 급급했었죠. 국정원의 체면도 고려해야 하니 조사를 받자고 해 받은 것인데, 변호인 입회를 불허하고 조사 과정에서 계구를 사용하는 등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유린하는 현실이 너무나 당혹스러웠습니다”.

지난해 10월 일부 언론의 추측 보도가 잇따르자 주위에서는 조선노동당 탈당, 지난 행적에 대한 반성, 대한민국 실정법 준수 등의 내용을 담아 기자회견을 갖자고 권유했다. 정 여사는 이에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수구언론에 의해 여론 재판이 끝난 상황에서 양파 껍질 벗듯 그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수긍하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국가보안법에 저항하며 주어진 상황을 정면돌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기자회견은 이루어졌고, 이번에는 마치 송 교수가 말 바꾸기를 한 것인양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다.

“재판 통해 진실 밝혀질 것, 보다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한 전환점 되었으면”

정 여사는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져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하여 분단된 민족의 현실에서 가교 역할을 자임했던 한 양심적 학자가 걸어 온 길이 제대로 평가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송 교수가 겪은 고초를 끝으로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한 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희망사항도 덧붙였다.

14살 되던 해 독일통일을 현장에서 목도하며 부모님의 활동을 존경하게 됐다는 장남 준씨는 “명절에 수의를 입은 채 감옥에 갇혀 있는 아버지를 대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합리적 사회에서 성장한 자신으로서는 "현 사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 사회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20대에 유학길에 올랐다가 60을 넘겨 다시 찾은 고국 땅.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26일자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송교수와의 친분을 언급하며 "송교수가 통일에 대해 갖고 있는 철학이나 사상, 행동양식은 검찰에서 주장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재판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가 야만을 벗어 나지 못했다는 서글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송 교수가 결행한 ‘선택’과 ‘죄값’ 사이에서 우리 사회는 이성적 결정 대신 숨가쁜 여론재판으로 이미 판결을 끝낸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가 없다. 언론도 더 이상 흥미를 잃은 듯한 그의 재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송교수는 수구세력과 진보세력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된 정치적 희생양이었습니다.

수구세력의 반공주의 색깔론에 희생된 불쌍한 한 영혼이 지금도 차가운 교도소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실미도의 죄수들 처럼.

이제는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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