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무리와 이별하고, 자기성찰을 위한 ‘자발적 고립’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군중 속에, 무리 속에 있을 때 안심이 됩니다. 그러다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있게 되면 불안해지지요. 대개는 그 불안을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무리 속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개인도, 기업도 그렇습니다. 
 
편안함은 종종 위험합니다. 무리 속의 편안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리 속에서 바쁘게 지내다보면 자신과 대면하기도, 목적지에 대해 숙고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홀로 있을 때 내가 누구이고,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자발적 고립’을 선택해야 나 자신과 대화하고 목적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장 편안하려 한다면 무리 속에 머물러야 하겠지만, 그래서는 본래의 목적은 잊은 채 그럭저럭 지내게 되기 쉽습니다. 가끔은 무리가 주는 안온함을 박차고 나와야 합니다. 불안해야 대안을 찾아 나설 수 있습니다. 그 제서야 비로소 의문이 생기고,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니체는 우리에게 시장을 떠나 고독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예로부터 시장과 명성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에서 위대한 것이 탄생했으며, 진리가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고독으로 돌아가라. 시장에서는 똥파리들에게 시달릴 뿐이다. 거센 바람이 사정없이 부는 곳으로 가라.” 
“고독한 형제여, 당신의 사랑과 창조와 함께 당신의 고독으로 돌아가라. 정의는 때가 되면 절룩거리며 당신을 따를 것이다.”
 
톨스토이도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메모했습니다.
“진정한 길은 좁아서 한 사람씩밖에 들어갈 수 없다. 거기에 들어가려면 군중과 함께 걸어갈 것이 아니라 부처나 공자, 소크라테스, 그리스도 같은 고독한 사람의 뒤를 따라야 한다.”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는 '마음의 평정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분주히 돌아다니는 것을 멈추어야 하네. 많은 사람은 집과 극장과 광장을 돌아다니며 남의 일에 개입하고 늘 바쁜 듯한 인상을 준다네. 그 가운데 한 명이 외출을 하는데 "어디 가시오? 무슨 용건으로 가시오?" 하고 자네가 묻는다면 그는 "나도 모르겠소. 그러나 만나볼 사람들이 있고 볼 일이 좀 있소"라고 대답할 것이네." (12장2절)
 
물론 고독만이 해답은 아닙니다. 고독과 ‘소통’이 함께 가야 합니다. 창의성이나 독창성도 '고독에 기반한 소통'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그 많은 발명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홀로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런 고독에 더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협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통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그것들을 결합하고 정리하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모두 필요한 겁니다...
 
홀로 나 자신과 대면해 대화해본 적이 언제였던가요. 충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끔은 무리와 이별하고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한켠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고독을 위한 의자'를 하나 마련해 그 의자에 정기적으로 앉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 10년의 노트> 예병일 

 

 

숲에서 찾는 고독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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