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그룹의 회장을 만났더니 자랑스럽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모든 의사결정을 아랫사람들이 합니다. 나는 결재 같은 건 하지 않고 중요한 일만 보고를 받지요. 모든 일은 사장들이 다 알아서 처리합니다.”
회장의 얘기를 듣고, 소신껏 일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했더니 한 직원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리에게는 권한위임이 전혀 없습니다. 과장들에게 물어보면 사소한 일도 부장들이 결정한다고 불평합니다. 부장들에게 물으면 임원들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정작 임원들은 자기네끼리 모이면 사장이 모든 걸 결정하니 우리들은 껍데기라고 자조 섞인 한숨을 쉰답니다.”
듣고 있던 다른 직원이 끼어들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장들의 반응이에요. 자기들이야말로 허울 좋은 허수아비일 뿐이고 실권은 모두 회장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크고 작은 일에 회장의 간섭을 받으니까 자기들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여직원 한 사람 채용하는 일도 사장들이 마음대로 못합니다. 회장의 눈치를 살피니까요.”
이 회사의 보스들은 모든 권한을 부하들에게 위임했다고 생각합니다. 회장은 사장에게, 사장은 본부장에게, 본부장은 팀장에게, 그리고 팀장은 담당자에게..... 그러나 누구도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므로 회사에는 권한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임직원들이 스스로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므로 책임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령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책임도 함께 증발해 버린 것이지요. 결국 이 회사는 책임과 권한이 회장 한 사람에게만 몰리는 기형적인 조직이 되고 맙니다.
이런 현상은 왜 생기는가? 그것은 리더가 부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인데 부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거짓말을 종종 하거나 배신의 기록을 가지고 있거나 신의가 약한 사람이 부하들을 의심하는 법이니까요. 최악의 상황은 이런 리더가 자기만이 회사를 가장 사랑하며, 자기만큼 회사 돌아가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없으며, 자기가 없으면 회사에 큰일이 난다고 믿는 경우입니다.
나라 경영도 이와 비슷합니다. 대통령은 총리에게 각료제청권을 주었고 모든 권력을 스스로 놓아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개각 때마다 총리는 들러리의 역할을 넘지 못합니다. 장관들은 인사권을 포함한 소관부처 업무에서 자신들에게 권한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크고 작은 일에 청와대의 지시나 의견조율을 받아야한다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국과장들의 얘기는 들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북핵이 터져도, 부동산이 폭등해도, 불법시위가 빈발해도, 주무장관들이 아무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다. 결국 모든 권한과 책임이 부담 덩어리가 되어 대통령 한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지, 다음 정부는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여 권리와 의무를 확실히 지키는 기풍을 정착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권리와 의무가 분명한 세상, 책임과 권한이 뚜렷한 사회, 이런 사회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 선진사회라고 하니까요
(2006년 11월 10일 www.자유칼럼.kr)
믿고 사는 사회, 선진 사회!!
믿고 일하는 회사, 선진 회사!!
나부터 믿어야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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