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역기능적 불안이다.
정상적인 불안을 넘어 과도한 불안이 불안의 긍정적 효과를 사라지게 했다
과도한 불안은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게 한다.
걱정은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과도한 경쟁은 불필요한 경쟁 인플레이션을 불러 온다.

경쟁 인플레이션은 정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전체적인 비효율을 낳는다.
과도하게 공부하느라 가장 중요한 자신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은 하나의 자아가 아니다.
다중자아를 경험해야 한다.

사람은 다양한 것을 좋아 한다.
반대로 다양한 것을 싫어 한다.
나의 다양함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수 많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공부로는 다 알 수 없다.
직접적 경험만이 나를 알게 하는 방법이다.

직접 경험하면 완결성과 주체성을 가지지만
간접 경험하면 분절되고 도구화 되기 쉽다.

하나를 완전히 해낼 수 있는 직접 경험과
하나의 일부만을 해 본 간접 경험은 하늘과 땅차이다.

나를 위한 일은 결국 상대를 위한 일이 되지만
남을 위한 일은 나를 위한 일이 되지 않는다.

나를위한 일은 단골을 만들어 관계로 연대할 수 있지만
남을 위한 일은 고객을 나를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도구일 뿐이다.

나를 위한 일은 대등한 연대가 가능하지만
남을 위하 일은 갑질, 계층화를 만든다.

장기적으로 
나를 위한 일은 사회의 효율을 높이고 다양하고 풍요로운 사회로 향하지만
남을 위한 일은 사회의 비효율로 획일적이고 부족한 경쟁 사회로 향한다.

결정은 스스로의 몫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던 그 결과도 자신의 책임이 된다.

나를 위한 삶이냐?
남을 위한 삶이냐?
지금은 추세는 어렵더라도 나를 위한 삶이다.
선택해라!



정책적으로 이를 구현하기 좋은 제도는 기본소득이다.
기본 소득이 구현되면 인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는 사회.
생각만으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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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_비영리 #책_토론 #본깨적_책모임






성장은 모범사례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을 통해 좌절하고 
그 낙담 속에서 다시 일어서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다시 말해 절망과 역경을 딘고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이 그의 성장에서 가장 주요한 촉매로 자리 잡습니다.

오히려 실패와 극복의 경험이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각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입니다. 

상처와 회복으로부터 얻는 단단한 피부는 
더 어려운 역경을 견터낼 갑옷이 됩니다.

오류 가능성을 제거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실제의 삶에서 언젠가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될 난관에서 
필요한 면역의 형성을 억제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시뮬레이션 과잉이 주는 핵심적인 비극입니다. 
비료에 의지하여 자란 식물이 
자연의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할 힘을 기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호명사회> 송길영. 





최대 효용을 얻고 싶다는 최적화의 욕망은 
자주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킨니다. 

이런 시스템적인 문제가 가장 응축된 영역은 교육과 직업의 선택입니다. 

요즘은 초등학생 필수 교육에 관해 검색하면 
국영수 교과 교습은 기본에 악기 하나, 운동 하나, 로봇 과학, 숲 체험 등 
다양한 활동 정보까지 쏟아집니다. 

'이 정도는 다들 하는 깃'이라는 어떤 블로그의 메시지는 
종종 부모들을 위축되게 만들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면 다시 악기는 피아노에서 바이올린이나 하프로,
운동은 발레 혹은 태권도에서 방송댄스와 복싱까지 확장됩니다. 

어린이 성악이나 음악 줄넘기 같은 초등학생에 맞춘 특화 수업도 눈에 뜀니다. 
그야말로 '다빈치형 인간'을 기르는 종합 교육의 향연입니다.

하지만 자라나는 이들의 잠재력과 자질이 모든 분야에
서 발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기원에 가깝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없기에 각자 분화된 역할을 맡아 
종 단위의 협업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직업입니다.

그렇다면 직업을 위해서라면 
자기 분야의 기예와 능력을 축적해 나가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지, 
불필요한 전 분야에 매진할 필요가 없음은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림에도 우리 사회는 교육 분야에서 '전과목 100점'이나 
'올 A'를 받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해 온 것입니다. 

혹자는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모르기에 두루 준비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문제는 그러다 보면 각자가 자질을 지닌 분야를 특정하여 
깊은 사고와 몰입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 잔의 물을 달게 만드는 시럽을 한 항아리에
넣는 순간 그 단맛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점점 이루기 어려운 목표가 됩니다.

<호명사회> 송길영. 

기준이 명확하다 느낄 수록 경쟁은 과열됩니다. (부모가 생각하는)사회가 원하는 것이 명확하다는 생각이 문제
하지만 사회는 계속 바뀐다는 문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모든 개인이 고유한 자질과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자 김영훈은 그의 책 <노력의 배신>에서 
한국 사회를 '노력 신봉 공화국'으로 정의합니다. 

그는 타고난 인지 능력이나 재능을 테스트해 입시를 결정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배운 범위 내에서만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 '교육 과정'과 공정성'
을 중시하는 사회라고 분석합니다. 

이는 열심히 노력만 하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며 
노력 여부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고 재능보다 노력이라는 가치 규범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각 분야에서 이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각자 타고난 재능이 있는 분야를 찾아 
그에 맞는 노력을 해나갈 때 성취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스티븐 하이네 교수의 연구를 인용하여 서양 사회는 
개인의 자질이 상대적으로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믿기에 
못하는 것을 보완하기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려하고, 
동양 사회는 후천적 노력에 의해 자질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에 
본인이 못하는 것을 보완하려 더욱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개인의 노력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는, 
어쩌면 각자가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일까지 열심히 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자립의 반대말은 의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립의 또 다른 반대말은 표류입니다. 

독립했다는 것과 뿌리내렸다는 것의 조합이 굳혀지면 
자립이라는 선물이 열매를 맺습니다.

공동체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독립이라면 
나를 찾아 바로 서는 것이 자립입니다. 
'도망가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깊어지자'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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