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5: 고려 위기 속에서 길을 찾다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5: 고려 위기 속에서 길을 찾다


2012년


숙종 (15대. 1095(42세) ~ 1105)


※ 제주도 편입 (1105)

. 물 건너에 있는 큰 고을이란 뜻

. 그전까지는 별도의 나라 '탐라'



의종 (18대. 1127~1173)
. 무예에 능하고 놀기도 좋아 함
. 아버지 인종 당시 반란이 잦아 어수선하여 자신의 세력화를 위해 측근과 자주 놀고 권한도 줌
. 그런데 이들 측근이 대부분 문신이고 무신을 홀대하여 정변 발생


※ 환관
. 과거에는 과거로 합격한 왕의 측근으로 엘리트
. 지금 우리가 말하는 내시
 


무신정변 (1170~1258) : 무신이 정치적 변을 일으키다

. 권력 장악 후 욕심은 문신보다 더 하고 머리는 문신보다 덜 해 

. 백성은 힘들고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줄줄이 서로 죽이며 권력이 옴겨 감

. 마지막이 최충헌 4대에 걸쳐 60년간 집권

. 최충헌은 봉사 10조를 이용해 도방, 교정도감(#현 국정원) 설치하여 집권 강화

. 최우는 정방(인사 결정권), 마별초 야별초 등을 설치하여 지속적 집권



※ 도방 : 무신 보디가드 군대

※ 마별초. 야별초는 도방을 세분화, 전문화하여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

. 마별초 : 말을 타는 특수 부대

. 야별초 : 밤에 활동하는 특수 부대 



망이망소이 난 (1176~1178) 

. 정중부 집권시기

. 명학소 사람들 주도의 농민 봉기 


※ 명학소 : 향-소-부곡 중 하나로 난 등으로 차차 없어짐



난(봉기:)이 잦은 이유

. 살기도 어려웠는데 무신들의 난으로 엄격한 신분제가 무너진 것을 지켜보고 수시로 잃어남


※ 봉기 : 벌 때 같이 들고 일어난다. 


김사미, 효심의 난 (1193~1195) 

. 이의민 집권시기

. 농민 봉기


만적 (1198)

. 최충헌 집권시기

. 노비봉기


※ 노비 : 노(남)비(여) 여자가 더 비쌌다. 출산 가능한 사람이기 때문




몽골 전쟁 (1231 ~ 1259)

. 몽골 : 칭기스칸 50년만에 대제국 건설

. 몽골과는 적절히 관계를 맺고 그게 간섭없어 적절히 조공하던 중

. 몽골 사신이 돌아가다 죽은 것을 이유로 침략했는데 져서 강화를 맺음

. 이후 최우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하였으나 내륙의 백성들은 몽골에 의해 짖밟힘


피해상황

. 백성 매년 20만명 끌려감

. 문화제 소실

. 재산 피해 막대


처인성 전투 (1232년 12월. 경기도 용인)

. 백성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전투에 참여 

. 승려 김윤후 이끔


# 이후 처인성 사례를 바탕으로 백성 스스로 저항하는 것이 생기지 않았나?


최의를 제거하고 몽골과 강화를 맺기 위해 태자를 보내는 와 중 뭉케칸이 사망

후계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

아릭부테와 쿠빌라이 간의 다툼이 발생

태자(원종 24대)는 당시 상황이 불리한 쿠빌라이를 찾아가 신뢰를 받고 고려의 불가침 약속을 받음

몽골 전쟁 마무리 됨 (1259)


팔만대장경 (1236 ~ 1251, 16년)

. 초고 대장경 불타서 몽골 침입을 막고자하는 기원




원종 (24대. 1259(40세) ~ 1274)



삼별초 (1269~1273)

. 야별초(좌별초 + 우별초) + 신이군 (몽골과 전쟁 중 포로가 되었다 탈출한 병사) # 구별한 이유는 뭘까? 차별?

. 초기에는 최씨 정권의 보디가스 역할의 조직

. 후기에는 최씨 정권을 무너뜨리는 역할

. 원종의 해산 명력에 불복하며 진도 중심으로 별도의 나라를 세움 (지금 전라도 지역 일부까지 확장)

. 세력이 커지자 원의 도움을 청해 해결

# 몽골과 원종의 연합에 자신들의 살길이 없어 항복하지 않음을 명분으로 버틴 듯



삼국유사(1281. 충렬왕) vs 삼국사기(1145. 인종)

삼국유사 : 저자 일연. 개인 저서. 백성에게 자부심과 희망주려 제작. 정치,권력,외교+이야기(신화,전설,백성,불교,향가). 예로 부터 전해오는 일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국가 저서. 지배층의 단결을 위해 제작. 정치,전쟁,외교의 사실위주. 유교 중심



불교

. 원당 : 위패를 모시는 절

. 불화 : 원당 발달로 불화도 발달

.. 물감을 뒷명에 발라 비치도록 만듬

.. 앞면의 그림은 선이 일정

.. 기계로 재현 불가

.. 금가루 사용

. 사경 : 불교, 경전을 손으로 베껴 쓰는 것. 신성한 행동으로 여겨 제작



원(몽골) 간섭기 (1258~)

. 쌍성총관부, 동녕부, 탐라총관부 설치

. 태자와 원 공주 결혼 

. 태자는 일정기간 원에서 지내다 와야 했음

. 당시 왕들은 원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이름에 '충'자가 들어 감 (25대 충열왕 ~ 30대 충정왕)




충선왕 (26대. 1298(24세) ~ 1313 )


. 대부분 원에 머물며 고려에는 잘 안감

. 원에 과거를 제안하기도 함

. 만권당 (개인 도서관)에서 학자 교류 유도하여 고려에 성리학이 적극적으로 유입되는 계기


당시 원나라의 영향으로 유학파 많았다.

출세의 지름길 # 지금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와 비슷한 듯

이슬람 등 외래 문화와의 교류로 세계관 넓어짐



최영 (1316 ~ 1388 )
. 문신 집안의 무신
. 당시 왜구 침입이 잦아 출동하여 소탕  : 홍산대첩(1376. 공주)
.. 왜구의 침입으로 백성이 힘들어 세금이 적어 국력도 약함
.. 1년에 50번 동,서,남해 모두 침입
.. 고려가 어수선하면 내류까지도 침입

이색 (1328 ~ 1396)

. 고려 원 과거시험에 모두 통과한 인재
. 성리학자
. 경세제인 목표 : 세상을 다스려 백성 구제
. 성균관 책임자 대사성 역임
. 정몽주, 정도전, 조준 후배 양성하여 신진 사대부 만듬

이성계 ( 1335 ~ 1408 )

. 쌍성총관부 지역 출신 (변방 출신)

. 홍건적, 왜구, 여진족, 원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영웅

. 황산 대첩 (1380)



공민왕 (31대. 1351(22세) ~ 1374)


. 왕이 되기 위해 원의 노국공주와 결혼

. 그런데 사랑하게 됨


. 고려의 왕권은 약했다.

.. 재상회의인 '도평의사사'에서 중요한 결정은 모두 하고'

.. 정방에서 인사권 모두 결정 하고

.. 부원세력(원 추종)이 원을 등에 업고 득세 (홍씨, 기씨-기황후 등)

.. 권문세족(권력있는 집안, 세력있는 족속)이 득세


. 왕권강화 시행

. 정방 폐지 

. 몽골 풍습 금지

. 숙청

. 쌍성총관부, 정동행성 이문소 없앰

.. 당시 원은 홍건적의 난 등 반란과 질병으로 정신 없었음. ㅎㅎ



※ 몽골 풍습

.  족두리, 연지곤지

. 언어 : 마마. 수라. 무수리. 마누라. 00치


. 위기

.. 홍건적 침입

.. 기존 세력의 저항

... 자객

... 몽골군 투입

... 반란 등등

.. 노국공주의 죽음

... 개혁 의지를 잃어 현 권력과 관계가 없어 보인 신돈에게 권한을 주다 시피 함


신돈 ( ~ 1371)

.. 전민변정도감 시행 (1366) : 땅을 백성에게 노비를 양민으로 

.. 성균관을 통해 신진 사대부를 양성하여 개혁을 강화하려 했으나 불교 불신으로 균열

.. 기존 세력(권문+부원)의 방해

.. 신돈 처형되고 개혁은 물건너 감


※. 안동 축제의 '놋다리 밟기'는 '홍건적의 난'때 왕과 공주가 안동까지 도망친 사연으로 만들어짐



최무선 (1362 ~ 1395)

. 화약과 관련 무기 개발

. 1377년 화통도감 만들고 총 책임자로 임명

. 1380년 진포 대첩에서 최초의 함포 해전으로 500대를 100대로 승리

. 1389년 대마도 공격 왜구 침입 감소



성리학 계보
: 안향 -> 이제현 -> 이색 -> 정몽주, 정도전




우왕 (32대. 1374(10세) ~ 1388) 1389 사망


창왕 (33대. 1388(9세) ~ 1389) 

1388 
이성계 위화도 회군하여 공양왕 세움

공양왕 (34대. 1389(세) ~ 1392) : 1394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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