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5: 고려 위기 속에서 길을 찾다
숙종 (15대. 1095(42세) ~ 1105)
※ 제주도 편입 (1105)
. 물 건너에 있는 큰 고을이란 뜻
. 그전까지는 별도의 나라 '탐라'
무신정변 (1170~1258) : 무신이 정치적 변을 일으키다
. 권력 장악 후 욕심은 문신보다 더 하고 머리는 문신보다 덜 해
. 백성은 힘들고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줄줄이 서로 죽이며 권력이 옴겨 감
. 마지막이 최충헌 4대에 걸쳐 60년간 집권
. 최충헌은 봉사 10조를 이용해 도방, 교정도감(#현 국정원) 설치하여 집권 강화
. 최우는 정방(인사 결정권), 마별초 야별초 등을 설치하여 지속적 집권
※ 도방 : 무신 보디가드 군대
※ 마별초. 야별초는 도방을 세분화, 전문화하여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
. 마별초 : 말을 타는 특수 부대
. 야별초 : 밤에 활동하는 특수 부대
망이망소이 난 (1176~1178)
. 정중부 집권시기
. 명학소 사람들 주도의 농민 봉기
※ 명학소 : 향-소-부곡 중 하나로 난 등으로 차차 없어짐
난(봉기:)이 잦은 이유
. 살기도 어려웠는데 무신들의 난으로 엄격한 신분제가 무너진 것을 지켜보고 수시로 잃어남
※ 봉기 : 벌 때 같이 들고 일어난다.
김사미, 효심의 난 (1193~1195)
. 이의민 집권시기
. 농민 봉기
만적 (1198)
. 최충헌 집권시기
. 노비봉기
※ 노비 : 노(남)비(여) 여자가 더 비쌌다. 출산 가능한 사람이기 때문
몽골 전쟁 (1231 ~ 1259)
. 몽골 : 칭기스칸 50년만에 대제국 건설
. 몽골과는 적절히 관계를 맺고 그게 간섭없어 적절히 조공하던 중
. 몽골 사신이 돌아가다 죽은 것을 이유로 침략했는데 져서 강화를 맺음
. 이후 최우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하였으나 내륙의 백성들은 몽골에 의해 짖밟힘
피해상황
. 백성 매년 20만명 끌려감
. 문화제 소실
. 재산 피해 막대
처인성 전투 (1232년 12월. 경기도 용인)
. 백성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전투에 참여
. 승려 김윤후 이끔
# 이후 처인성 사례를 바탕으로 백성 스스로 저항하는 것이 생기지 않았나?
최의를 제거하고 몽골과 강화를 맺기 위해 태자를 보내는 와 중 뭉케칸이 사망
후계자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
아릭부테와 쿠빌라이 간의 다툼이 발생
태자(원종 24대)는 당시 상황이 불리한 쿠빌라이를 찾아가 신뢰를 받고 고려의 불가침 약속을 받음
몽골 전쟁 마무리 됨 (1259)
팔만대장경 (1236 ~ 1251, 16년)
. 초고 대장경 불타서 몽골 침입을 막고자하는 기원
원종 (24대. 1259(40세) ~ 1274)
삼별초 (1269~1273)
. 야별초(좌별초 + 우별초) + 신이군 (몽골과 전쟁 중 포로가 되었다 탈출한 병사) # 구별한 이유는 뭘까? 차별?
. 초기에는 최씨 정권의 보디가스 역할의 조직
. 후기에는 최씨 정권을 무너뜨리는 역할
. 원종의 해산 명력에 불복하며 진도 중심으로 별도의 나라를 세움 (지금 전라도 지역 일부까지 확장)
. 세력이 커지자 원의 도움을 청해 해결
# 몽골과 원종의 연합에 자신들의 살길이 없어 항복하지 않음을 명분으로 버틴 듯
삼국유사(1281. 충렬왕) vs 삼국사기(1145. 인종)
삼국유사 : 저자 일연. 개인 저서. 백성에게 자부심과 희망주려 제작. 정치,권력,외교+이야기(신화,전설,백성,불교,향가). 예로 부터 전해오는 일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국가 저서. 지배층의 단결을 위해 제작. 정치,전쟁,외교의 사실위주. 유교 중심
불교
. 원당 : 위패를 모시는 절
. 불화 : 원당 발달로 불화도 발달
.. 물감을 뒷명에 발라 비치도록 만듬
.. 앞면의 그림은 선이 일정
.. 기계로 재현 불가
.. 금가루 사용
. 사경 : 불교, 경전을 손으로 베껴 쓰는 것. 신성한 행동으로 여겨 제작
원(몽골) 간섭기 (1258~)
. 쌍성총관부, 동녕부, 탐라총관부 설치
. 태자와 원 공주 결혼
. 태자는 일정기간 원에서 지내다 와야 했음
. 당시 왕들은 원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이름에 '충'자가 들어 감 (25대 충열왕 ~ 30대 충정왕)
충선왕 (26대. 1298(24세) ~ 1313 )
. 대부분 원에 머물며 고려에는 잘 안감
. 원에 과거를 제안하기도 함
. 만권당 (개인 도서관)에서 학자 교류 유도하여 고려에 성리학이 적극적으로 유입되는 계기
당시 원나라의 영향으로 유학파 많았다.
출세의 지름길 # 지금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와 비슷한 듯
이슬람 등 외래 문화와의 교류로 세계관 넓어짐
이색 (1328 ~ 1396)
이성계 ( 1335 ~ 1408 )
. 쌍성총관부 지역 출신 (변방 출신)
. 홍건적, 왜구, 여진족, 원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영웅
. 황산 대첩 (1380)
공민왕 (31대. 1351(22세) ~ 1374)
. 왕이 되기 위해 원의 노국공주와 결혼
. 그런데 사랑하게 됨
. 고려의 왕권은 약했다.
.. 재상회의인 '도평의사사'에서 중요한 결정은 모두 하고'
.. 정방에서 인사권 모두 결정 하고
.. 부원세력(원 추종)이 원을 등에 업고 득세 (홍씨, 기씨-기황후 등)
.. 권문세족(권력있는 집안, 세력있는 족속)이 득세
. 왕권강화 시행
. 정방 폐지
. 몽골 풍습 금지
. 숙청
. 쌍성총관부, 정동행성 이문소 없앰
.. 당시 원은 홍건적의 난 등 반란과 질병으로 정신 없었음. ㅎㅎ
※ 몽골 풍습
. 족두리, 연지곤지
. 언어 : 마마. 수라. 무수리. 마누라. 00치
. 위기
.. 홍건적 침입
.. 기존 세력의 저항
... 자객
... 몽골군 투입
... 반란 등등
.. 노국공주의 죽음
... 개혁 의지를 잃어 현 권력과 관계가 없어 보인 신돈에게 권한을 주다 시피 함
신돈 ( ~ 1371)
.. 전민변정도감 시행 (1366) : 땅을 백성에게 노비를 양민으로
.. 성균관을 통해 신진 사대부를 양성하여 개혁을 강화하려 했으나 불교 불신으로 균열
.. 기존 세력(권문+부원)의 방해
.. 신돈 처형되고 개혁은 물건너 감
※. 안동 축제의 '놋다리 밟기'는 '홍건적의 난'때 왕과 공주가 안동까지 도망친 사연으로 만들어짐
최무선 (1362 ~ 1395)
. 화약과 관련 무기 개발
. 1377년 화통도감 만들고 총 책임자로 임명
. 1380년 진포 대첩에서 최초의 함포 해전으로 500대를 100대로 승리
. 1389년 대마도 공격 왜구 침입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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