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4: 고려의 기틀을 다지다



태조 (918~943 재위)


왕건 강화 정책 시행

- '본관'과 '성씨' 사용 적극적 권장

  조상이 살던 지역을 국가에서 인정하여 지역에 대한 자부심 높임

  신라시대에 있었는데 고려의 지방세력 포용과 안정을 위해 적극적 사용

 #이미 있었던 것을 강화하여 효과를 본 것으로 보임. 새로운 것 이었다면 효과가 없었을 것


- 29명과 결혼 : 지방 세력가의 딸들과 결혼

- '왕'씨 하사 : 같은 왕족이라 생각하게

- 사심관 : 수도에서 지역의 일을 살펴보는 관리로 지역 세력가를 임명. 신라 경순왕이 경주 사심관으로

- 기인 : 사심관과 비슷한데 지역 세력가의 아들을 임명하여 수도에 둠 (인질)

- 백성 세금 감면

- 불교 장려


기타

- 축성으로 외적 대비

- 외래 문화 정보를 적극적으로 교류

- 왕건이 죽는 해에 [훈요10조] (943)를 남겨 아들 혜종에게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조언을 남김



종합적으로 귀족이 아니어도 인정 받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함

그래서 고려문화는 다양성이 매우 높다.

# 문화 발전에 큰 기여!!





혜종 (이름 왕무. 912년 탄생, 2대. 943~945 재위)


왕건의 맏아들이었으나 왕권을 노리는 지방세력이 많아 단명 (자객도 보냈다는...)



정종 (3대. 954~948 재위) 


불교 적극 참여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수도를 강한 친척이 있는 개경에서 옮겼으나 단명




광종 (4대. 945~975 재위)


왕권 강화 정책

- 노비 안검법(956) : 억울한 노비를 풀어주는 법 : 군사와 노동력을 줄여 세력 약화

- 과거제도 (958) : 기존에는 집안이었는데 이제는 실력에 따라 인재 발탁 

 -> 추후 유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되어 유학이 차차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매김

- 공복색 : 관리가 조정해 나갈 때 입는 옷의 색깔을 계급에 따라 구분 -> 서열화

  자주-적-주황-초록

상기 제도로 집안보다 벼슬이 중요하게 만듬

- 황제의 나라 : 독자연호(광덕, 준풍), 태자, 태후, 묘호(조,종) 등 황제의 격식에 준하게 변경


기타 평가

- 잔혹한 폭군 : 왕권을 잡은 후 말 안 들으면 즉결 처분하는 왕




경종 (5대. 975~981 재위)


신하들을 다독이는 정치, 

신하 왕선을 준용했으나 등 돌려 망한 듯




성종 (6대. 981~997 재위)


신하들과 함께하는 정치. 

최승로의 [시무28조] (982)


나라의 기틀을 잡는 정책

- 기관 : 중서문화성 (정책을 세우고), 상서성(정책을 실행하고), 중추원, 이사대, 삼사 등

- 지역 관리 직접 파견 관리

- 교육 : 국자감(종합대학으로 관리 양성), 지역에 학교 마련



993년 

거란 1차 침략 #(~993년)#언제까지 전쟁 했을까? 1년 이내 전쟁인 것 같다. 

송을 치기 위해서 연합이 신경 쓰이는 고려를 치기 위해 거란 침입

서희가 협상하러 나가 거란의 의중을 잃고 불가침 조약과 강동 6주를 손에 넣음 

(압록강 동쪽 6개의 성으로 개경으로 통하는 길목이고 송-거란-여진 등과 무역하기 좋은 교통의 요충지)



목종 (997~1009 재위)




현종 (8대. 1009~1031 재위)



1010년

거란 2차 침략 #(~1010년 예상)

고려 내부의 반란을 빌미 삼아 침략
개경을 잃고 항복했으나
강동6주에서 양규 장군 등이 퇴로를 차단하고 개릴라를 펼치고 있어
황급히 조약하고 돌아가는 길에 공격하여 피해를 많이 줌 # 쉽게 보이지 않게 됨

1019년
거란 3차 침략 (~1019)
항복 시 약속을 안지켜 다시 공격
강감찬 장군 등이 강동6주의 흥화진에서 살수로 귀주에서 퇴로를 막는 방법 등으로 크게 물리침


1~3차 거란 전쟁으로 고려의 위상은 국제적으로 높아짐

당시 송, 거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두루 친하게 지내며 교류할 수 있는 위치를 만듬으로써 전성기를 구가함




문종 (11대, 1046~1083)



최충 (984~1068)

최초의 사람학교 설립, 합격자가 많자 개경에 12개 학교 개교하여 '사학 12도'로 불림

# 과거제도 시행으로 득을 본 거네

1071 

송나라 국교 회복


의천 (문종의 넷째. 1055~1101) 

- 1065 승려가 되다 (당시 승려는 높은 지위를 가짐. #선망 직업)

- 천태종 개창하고 불교 통합 노력

- 화폐(해동통보) 건의하여 시행.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


불교 문화

- 개경에만 절이 800여곳이었고 

- 과거공부, 숙박, 기도, 장례, 시장, 고리업 등을 하고 있어

-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 대장경 : 불교의 백과사전으로 보유 여부가 국가의 불교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

-- '송'에 의해 '초조 대장경'을 '거란'에 의해 '재조 대장경'(팔만대장경)을 만들 수 있었음



숙종 (15대, 1095~1105)



1104.2 

고려군 완옌부가 이끄는 여진족(말갈의 후예)에 패배

거란과의 전쟁 후 100년이 흘러 태평하여 전투력 약화


1104.12

윤관이 별무반 조직 : 기병, 보병, 승병, 특수부대로 17만명



예종 (16대, 1105~1122, 17년 재위)


1107

윤관 여진 땅 정벌하여 얻은 땅에 동북 9성 축성

그러나 정예가 아닌 지방군에 대한 승리

승리 후 지리를 잘 몰라 서로 연락이 안돼 물자 이동이 어려움

많은 수의 군사를 유지하기 위한 물자가 부족하고 국내 노동력 부족


1109

거란이 부담스런 여진이 고려에 먼저 불가침 제안

동북9성을 돌려주고 서약

이후 여진은 금을 세워 '거란'과 '송'을 치고도 고려를 공격하지 않음

(송은 폐배 후 강 아래도 내려가 남송이 됨)



인종 (17대, 1122~1146, 24년 재위)


- '송'을 멀리하고 '금'을 가까이 : 약자는 멀리 강자는 가까이. 실리 외교

- 검소하게 생활하며 사치금지

- 백성 보살 핌 : 지방에 농사를 위한 관리 보내고 병든 백성을 위한 물자 지원

- 삼국사기 제작

- 효과는 크기 않았지만 노력한 군주


1122

인종 14살에 재위

외할아버지 이자겸이 경쟁자 제거하고 딸을 왕비로 보내 왕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 됨 #권력 집착!!


1126

이자겸의 난

성장한 인종이 이자겸을 없애려 하다 척준경(여진과의 싸움에서 영웅이 된 무장)에 의해 실패

이자겸은 관련자를 모두 숙청한 사건


이후 인종은 권력에 눈먼 척준경을 포섭하여 이자겸을 제거하고 둘 다 유배 시킴

(영광 굴비 이야기)


1135

묘청의 난

인종은 인재를 찾다 유행하는 풍수도창(풍수지리와 미래예언의 도참)을 한다는 묘청을 만남

묘청은 서경 천도를 하면 금이 항복한다는 예언을 함

그러나 자신을 따르는 세력이 서경에 있어 그리고 수도를 옮기려 한 듯

뜻대로 되지 않자 서경에서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 반란

김부식이 성을 포위하고 물자를 끊어 1년간 장기전으로 대응 쉽게 제압


1145

인종의 지시로 역사를 통해 교훈으로 삼도록 하기 위해 김부식 삼국사기를 편찬


# 김부식은 문무에 모두 뛰어난 건가?




고려의 문화


계급사회

- 최고 지배층, 중간 지배층, 농민(백정), 특수지역사람, 천인(노비 등)

- 18등급으로 나눠 구분, 서로 간에 혼인으로 '문벌' 이룸

- 과거나 음서를 통해 관직에 입문. 대부분 명예 때문에 과거를 통해 들어가려 함

- 무신, 문신 구분


지방관리

- 지방관은 30개월 단위로 순환 근무

-- 주현 > 속혁 > 향소 부곡 

-- 각 지역(본관)에서 공을 세우는 인물이 나오면 승격되고 죄가 있으면 낮아 진다) # 본관이 중요해 진 것

-- 실제적으로 지방 세력가(향리 : 호장>부호장)가 지방을 관리 

#지방자치제?


월급

- 녹봉 : 1년에 2번 곡식으로 받음

- 전시과 : 땅을 주고 거기서 나온 곡식의 일부를 받아감



가족 (아들 딸 관련)

- 장가간다 (장인댁에 간다)

- 태어난 순으로 족보를 올림

- 결혼해도 친가의 유산은 딸 개인의 것

위 3가지가 조선 후기 때 바뀜

- 유산 동일 분할

- 부모도 제사도 번갈아 가며 모심



연등회 : 2월 보름 개최. 복을 빈다.  

팔관회 : 10월 혹은 11월 보름 개최. 전통신앙과 불교 행사를 함께하는 축제

- 외국인의 참여가 가능하여 '코레아'전파 기여

- 지역적 특성에 따라 믿는 '신' 존중 

#지역 민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듯

둘 다 신라시대부터 있었음.


벽란도 : 예상강 하구, 개경에서 말로 몇시간 거리로 송, 일본, 아라비아 교류 창구

거란과 전쟁 후 송과의 비공식적 교류 장소 (민간 외교관)


교류물건

- 송->고려 : 금은그릇, 차, 초, 약재, 책 등

- 고려 -> 송 : 금은그릇, 비단, 먹, 활과 화살, 말, 칼, 인삼, 책 등

# 무기를 수출한 나라?

책으로 의술, 불경, 유학 등 다양한 문화 교류가 가능해짐


청자 

- 송나라에서 들어와 발전시킴

- 비색 (푸를 빛), 상감 (일부를 파내고 다른 재료를 넣어 무늬를 만듬)


#활발한 교류 환경이 다양성으로 다양성이 문화 발전으로 문화 발전이 국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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