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m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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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은 유쾌하기도 하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이상하다. 영업시간은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매월 둘째, 넷째 주 금요일엔 토요일 새벽 6시까지 문을 여는 ‘심야 책방’을 운영한다. 헌책방이지만 전시와 공연이 열리고 한 달에 한 번 영화 상영도 한다. 이곳의 주인장 윤성근 씨는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디자인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헌책방에서 거래되는 다양한 책에 담긴 사연과 감상을 적은 <심야책방>을 펴냈다. 책을 읽고 나니 주인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에디터 김민정 포토그래퍼 정익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하 이상북)’에서 판매하는 책은 모두 읽었다고 들었다. 홈페이지에 매주 새 책 리스트가 올라오던데 독서량이 어마어마하겠다. 헌책방이니까 전에 읽었던 책들이 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책을 읽는 걸로 치면 한 달에 50~60권 정도. 특별한 다독 기술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취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술 담배를 안하니까 술자리에 갈 일 없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 잠도 적게 자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책만 읽으니까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되더라.

‘이상북’은 여느 헌책방과 달리 색깔이 뚜렷하다. 참고서나 잡지는 없고 문학, 인문, 사회.과학 도서가 대부분인데. 문학도 영미나 일본 소설보다 동유럽권을 선호한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책, 읽고 싶은 책들만 판매한다(웃음). 그러다 보니 일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같고. 헌책방을 차릴 때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이기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철학.사회학 책을 특성화한 헌책방은 흔하지 않다. 작은 책방에서 경쟁력이라면 경쟁력인 거다. 이렇다 보니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손님으로 오는 거고.

책방 이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건가. 맞다.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이다. 보통은 어린 시절에 읽은 책을 성인이 돼서도 좋아하는 경우가 드문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읽을 때마다 색다른 재미를 준다. 개인적으로 루이스 캐롤의 책들을 컬렉션하고 있기도 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심리학적으로 읽히기도 하니까 단순한 동화가 아니지 않나.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전에는 대기업 IT 부문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직장을 그만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20대 후반에 생각이 많아졌다. 곧 서른 살이 되는데 누군가 나에게 정체성이나 가치관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돈 수집을 했다고 해야 하나?(웃음) 사실 그때까지 수집한 건 신발이었다. 나이키 에어포스 몇 주년 기념 한정판, 뉴발란스 100주년 기념 뭐 이렇게 사 모은 것이 신발장에 가득했지. 어느 날 출근하려고 신발장을 열었는데 그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갑자기 회사를 관두기란 쉽지 않다. 막상 그만두고 나면 후회하기도 하고. 절대 후회 안 한다. 지금 얼마나 행복하냐면 아침에 똥이 다 잘 나온다니까(웃음). 직장생활할땐 한 달에 몇 백 만원씩 월급을 받았는데도 은행에 빚이 있었다. 신발을 수집하다가 막판엔 오토바이까지 수집했거든. 그 세계에선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는 이렇게 살아선 안 될 것 같아 모두 팔아 빚을 청산했다. 근 10년 가까이 일했는데 정리하고 나니까 수중에 남는 돈이 1000만원도 안 되더라. 마이너스가 아닌 게 다행이지.

왜 하필 헌책방 주인이 되려고 했나? 워낙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으니까. 처음엔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일이 내가 좋아하는 책만 만드는 게 아니더라고. 이왕 회사까지 그만둔 거 정말 원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헌책방에 직원으로 들어가서
일을 배웠다. 금호동에 있던 헌책방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헌책방 ‘고구마’를 말하는 건가? 없어진 지 몰랐다. 이번 여름에 서울 매장을 철수하고 경기도 화성에 창고 같은 곳으로 옮겼다고 들었다. 장서가 많은 곳이었는데 그곳이 사라졌다는 건 지금의 헌책방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겠지. 요즘은 헌책도 인터넷으로 가격비교하며 사는 시대다. 그래도 ‘이상북’은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는다. 헌책은 면대면으로 사람 얼굴을 보고 파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과 책의 인연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심야책방>을 보니까 헌책에서 발견한 메모나 글귀를 사진으로 찍거나 기록해 두던데. (책방 한 켠을 가리키며) 저쪽에 그 동안 찍은 사진을 전시해 뒀다. 헌책방을 운영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수집이 되면 책으로 내려고 계속했던 작업이다. 연애편지부터 일기, 낙서, 책갈피까지 종종 발견되는데 이게 바로 헌책의 매력이다. 또 누군가 밑줄을 친 부분이 있지 않나. 이걸 보면 왜, 그었을까 한번 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헌책을 팔기 때문에 느끼는 보람도 남다를 것 같다. 맞다. 일반 서점처럼 손님이 왔다가 필요한 책만 사가지고 나가는 게 아니라 구입하는 책에 대한 사연까지 알 수 있으니까. 헌책방에 오는 사람 중에선 개인적인 사연으로 특정한 책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파는 사람이 많다. 그 사연을 아는 기쁨이나 못 찾을 경우 내가 직접 구해주는 보람이 크다.

책을 직접 찾아주기도 하는 건가? 외국에는 ‘책탐정’이라는 직업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까진 안 되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절판된 책인데 출판사도 사라진 경우가 있지 않나. 그땐 우선 그 책이 출판된 연도를 파악하고 역사를 본다. 중앙 도서관을 비롯해 어딘가에 정보가 남아 있을 거다. 그 정보를 토대로 책이 나올 당시 영업사원을 찾으면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분들 집에 찾아가 보면 대개 자신이 일할 때 펴낸 책은 한두 권씩 갖고 있다.

혹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과 방민호의 <모던수필>도 구할 수 있을까. <사물들>은 1996년 세계사 출판본은 없지만 올해 펭귄클래식에서 새롭게 출간했다. 그의 또 다른 소설 이랑 같이 나왔으니까 서점에 가면 있을 거다. <모던수필>은 2000년대에 나온 책이니까 절판됐어도 구하기 어렵진 않다. 내가 찾아서 연락해 주겠다. 명함에 있는 번호로 하면 되지?

고맙다. 헌책방을 운영하고 책도 찾으러 다니려면 바쁠 텐데. 얼마 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 디자인까지 맡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아닌데 요청이 왔을 땐 당혹스럽지 않았나. 박원순 서울시장 뿐 아니라 종종 책장을 만들어달라거나 책에 관한 인테리어로 조언을 구하러 오는 손님들이 많다.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아놓은 책의 양도방대하니까. 박원순 시장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일하던 무렵 ‘이상북’을 방문했는데 그때 인연으로 당시 집무실도 디자인했었다.

시장의 집무실을 디자인할 때, 중점을 둔 사항은 무엇이었나. 박원순 시장이 직접 요청한 것이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가장 눈에 띄는 곳에 포스트잇 메모를 붙일 수 있도록하는 거였고, 두 번째는 모든 집기들을 새로 구입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거. 세 번째가 바
로 책의 효율적인 배치였는데 워낙 양이 많고 실제 업무에도 활용되는 만큼 최대한 공간을 이용해 찾기 쉽도록 했다.

매달 둘째, 넷째 주 금요일엔 밤새도록 여는 ‘심야 책방’도 운영하고 있다. 새벽 한두시에 사람들이 정말 찾아오나? 솔직히 많이 안 왔으면 좋겠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책방 문을 닫는 새벽 6시까지 같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고. 자정부터 새벽 1시까지 중간에 공연을 하지만 웬만하면 ‘심야책방’을 운영할 땐 행사나 이벤트를 하지 않으려 한다. 밤새도록 조용히, 평화롭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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