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엄마는 16살 때 윌슨의 집에서 가사의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다.


(엄마와 펄롱)
둘을 함께 집으로 데려온 사람도 미시즈 윌슨이었다.
1946년 4월 1일 자기가 만수를 태어났으니 바보일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16


1985년 이었고 젊은이들이 런던 보스턴 뉴욕 등으로 이민을 떠나고 있었다.
23


3

(아내 아일린이 세 딸들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간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아니면 그냥 일상의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29
자동화된 생각과 삶, 문화에 흘러가는 자아


아무것도 달라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볼놈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한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는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44
반복되는 일상에 의문이 생긴다. 왜? 자아는 발전하고 싶은가?



4


(수녀원에서 만난 어린아이를 보고 운 펄롱이 아내 아일린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고 나서..)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거기 있는 애들은 세상에 돌봐줄 사람이 1명도 없어서 그런거야. 그 애들 부모는 애들을 멋대로 풀어놨다가 문제가 생기니까 모른 척 등을 돌려버렸겠지 자식 있는 사람이 그렇게 무심해서는 안 되는 건데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개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들어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난 지금 어디에 있을까?
56
펄롱이 자기의 출생을 고민하는 것이 자기를 찾는 과정, 그 과정에서 자기 다워 지는 건가? 자기다워져야 인생이 꽉 차는 건가?

 


6


펄롱을 괴롭힌 곳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기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질 텐데 -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세어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었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99

수녀원장, 남에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했다.
위장했다는 것 자체가 보이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 것



7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다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면 둘 다를 끌어냈다.
102



(미스즈 케호의 술집에서 직원들과 회식 중 주인이)

말했듯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그 수녀들이 안 끼어 있는 데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그 사람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 아닌가요?

말을 멈추고 극도로 현실적인 여자가 가끔 남자들을 볼 때 짓는 표정, 철없는 어린이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일린도 몇 번 그런 적 있었다. 사실 꽤 많았다.
106



(주인집 시종일 뿐
네드가 아버지라고 얘기하지 않은 이유 생각 )

자기가 더 나은 혈통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서 그 세월 내내 펄롱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
111


(아이를 구조해 데려가면서 생각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맞이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깝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 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119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넘어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을 어떻게든 해 나가리가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120



옮긴이의 글


소설가 존 맥가헌
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말하곤 했다.
128

이 짧은 소설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드러내지 않고 암시하고자 한  부분이 얼마나 큰지
이 짧은 소설은 차라리 시였고 언어의 구조는 눈 결정처럼 섬세했다.
1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