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찬스로 본 연극
잘 봤다

연극이란 이런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연극
뮤지컬 위주의 극만 주로 보다 정통 연극을 본 느낌
진지함 그 자체
중간에 웃음 포인트가 묻혀 버린다.

배우들의 진지함이
연출의 진지함이
대사의 진지함이
모든 곳에 뭍어 난다.

3시간이 넘는 긴 공연과
물에 빠지고
피의 물감을 온 몸에 바르고
흙바닥에서 딩굴고
몸싸움을 하며 무대에서 뒹굴는 등
배우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좋은 대사들이 많았는데
극을 따라가기 바쁘다
만약 배우들이 대사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 살아간다면
"철학 했다." 라고 표현하고 싶다



결국 삶은 고민하고 살아가는 것
그 고민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
계속 걷는 것


장면

현대 춤으로 표현하는 장면들
#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아
아버지 혼령이 나타나 말하는 장면
욕조(카메라)에 들어간 엄마와 햄릿 그리고 흙
햄릿이 잠자리에서 왕과 말다툼 하며 고뇌하는 장면



우유부단하지 않았다
예민하게 깊이 생각하다 보니 판단하고 결정하기 어려워 그런 것이다.
그래서 더 걷는다
열심히 생각하며  걷는다


거기 누구냐?
나는 나다


부조리한 세상에 어떤 삶을 살꺼냐?
햄릿은 열심히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했다

부조리에 답하지 않는다면 부조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중도는 없다
실천만이 나를 표현한다
표현하지 않는 것도 나다
원하든 원치 않던



햄릿의 복수는 정당한가?
햄릿 입장에서는 정당
신의 입장은? 글쎄
. 복수하지 말라고 신은 말한다
. 악이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인데라며 꼬집는다
극중에 고민의 흔적은 가득하다


 

프로그램의 연출자의 이야기를 옮겨 본다

Who's there? 이건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이 신과 분리된 개인(Individual)이라는 측면에서의 사유이다. 
서구 사회에 있어서, 중세의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파악된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닌, 분리된 개인으로서,
하이데거의 용어로 말하자면 다자인(Dasein) 즉 "현존재"인 것이다. "거기 있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즉 가변적인 인간적 조건 속에서 규정되는 인간이 그 조건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질문하고
규정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존재론적 존재의 우위성"을 가진 '존재".

괴테식으로 말한다면 끊임없는 생성 속에서 사유하는 인간, '파우스트적 존재'이며 자코메티식으로 말하면
걷는 인간'인 것이다. 모든 의미의 겉치레를 벗겨버리고 혈벗은 존재 그 자체로 걷는, 언제나 변해가는 시공간
속에서 사유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겐, 근본적인 '불안'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 최대 가치인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인간에겐 걷을 수 있게 하는 동력으로도 작용한다. 키르케고르가
말했듯 자유의지가 발동되지 않으면 불안도 없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와 선악과가 없었다면 인간에겐 불안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이란 필연적으로 선악과란 '금지'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비로소
발생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안의 긍정적인 측면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 조건인 자유의지 즉, "어디로 가야 할까?"란
질문을 발동시키고, 걷게 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불안이 없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도 없고, 걸을 수도 없다.
그냥 안주하는 것이다(엄밀한 의미에서 안주는 없고 오로지 '자기기만'만 있지만 말이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는 두 인간처럼,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공간에 있지만,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부조리한 인간이 돼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위대함이란, 불안을 거부하지 않고 그 불안과 동행하면서
끝까지 걷는 존재. 즉 불안에 종속되지 않고, 속이지도 않고 끝까지 걸어보는 것에 있다. 카뒤식으로 말한다면
바람이 거세게 부는 절벽의 끝, 벼랑에서 버티는 반항..? 정도쯤으로 표현될까?

끊임없는 세계와 인간의 재정의는 바로 인문학적 사유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어제의 성공 원인이 오늘의
실패의 이유가 되고, 어제의 존재 이유가 오늘의 부조리가 되어 우리를 억압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존재하고
사유해야 할까? 다시 말하자면, "어디를 향해 걸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질문에 대한 열쇠는 단언컨대
연극예술에 있다고 난 믿는다.

연극은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거울이 당신의 익숙한 얼굴만을 보게 한다면
그건 우리의 진정한 연극의 거울이 아닐 주는 것이다. 불편하고 낯설게 보이는 그 얼굴이 당신의 진정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처럼. '부인해야 할 자기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극예술은
관객을 불편하게 하고, 이 세계를 낯설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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