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님 강연 중

출처 : 양정훈의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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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시작)
작년에 어떤 군부대에 강연을 갔습니다. 어떤 병장이 질의응답시간에 질문했습니다. "저는 스펙도 변변치 않고, 집안도 많이 어렵고요. 학벌도 정말 내세울만한 게 없는데 저 같은 사람은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야기 해드렸습니다. "잘 안될 거에요. 지금은 성공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졸던 연병장의 병사들이 눈을 번쩍 뜨더군요.

(중략)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장님이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현실에 안주해.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는 자기 집, 차고에서 창업했어."라고 말하자 직원들이 말했습니다. "저희는 '집'이 없어요. '차고'도 없어요. 난 차도 없는데?"라고 대답합니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안주한다고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나아가는 것은 커녕 멈춰있는 것조차 힘듭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것도 요새는 사치죠. 쌓아야 할 스펙은 산더미고 거기다가 '창의성'까지 갖추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찾으라고 하죠.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지워진 큰 짐들입니다.

그렇다면 20년 전에는 지금과 정말 어땠을까요? 제가 20대 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경제성장율은 매년 10.6%, 11.1%, 10.6%로 두자리수를 넘었습니다. 최근은 어땠을까요? 2013년 경제성장률은 2.8%였습니다. 무려 1/4 수준으로 떨어진 수치죠.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는 핑크빛 미래를 꿈꿨던 폭풍 성장기였습니다. 낙관주의가 있었고, 이전보다는 나아질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취업걱정이란 거의 없었던 시절이죠. 기업은 사람이 필요했고 대졸자는 지금보다 적었습니다. 낭만을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낭만을 즐겨도 되는 시절이었던 겁니다. 취업, 진로를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일탈해 볼 수 있었던 시대죠.

저는 88년 대학교 3학년 재학시 ROTC 였어요. 그러나 어느날 장교임관후 취직, 대기업 입사, 결혼, 아침출근, 퇴사를 그려봤는데 아무 느낌이 없는거에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제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만 뒀습니다.  아버지가 찾아와서 임관이라도 하라고 말렸지만, 안하겠다고 거절했어요. 이후에 대학원 진학 후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그때 글쓰기 안 배웠더라면 작가가 되기 어려웠을 거에요. 그런데 이게 중요합니다. 제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시대적인 분위기가 있는 거에요.

제 아버지 역시도 작가가 된다는 아들이 마음에는 안 들었을지라도 밥 굶을거라고는 생각 안했던 시대였습니다. 아버지 역시도 제가 대학원 졸업한 이후까지도 직장을 다닐 수 있었던 시대니까요.  그렇기에 제가 작가가 되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만약 (지금처럼) 학자금 대출이 있었다면? 졸업하자마자 대출을 갚아야 한다면? 아버지의 수입이 더이상 없었다면?  아파트담보대출이 있었다면? 그런 결단을 내릴 수는 없겠죠. 이젠 (지금은) '결단'이 어려워진 세상입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마음을 따라 결단을 내리는게 참 어렵습니다.

작가 지망생이 "저도 (전업)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물어요. 제 마음속 충고는 "하지 마세요."입니다. 이 시대는 작가로 먹고 살기 너무 어려우니까요. 이 시대는 작가로서 필요한 습작기간을 견딜만한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알바해야 하고 가족들이 원하는거 해야 하고 쉽지 않아요. 지금은 기대감소의 시대에요. 기대를 줄여야 하는 시대에요. 앞으로 길고 지루한 저성장 시대가 옵니다. 앞으로는 더 나빠질 거에요. 20대나 30대 많은 분들이 예전보다 더 엄혹한 시대를 겪게 될 게 분명해요.

요즘에는 자기 내면을 지키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회사는 우리의 영혼, 자존심까지 다 내놓으라고 하잖아요. 자기 것을 가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에요. 이럴때일수록 더욱 더 자기 내면을 지키는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면을 어떻게 지키냐면 남과 똑같이 원하고 행동해서는 내면이 생기지 않아요. 내면은 남과 다르므로 내면이에요. 남이 침범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가지는 것이죠. 이것들은 어떻게 가능하냐? 남의 자유와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많이 느끼는 거죠. 자기가 느낀 것은 남이 가져갈 수 없습니다.

개인적 즐거움을 추구하라. 들으면 참 쉬워보이죠? 좋은 이야기네 해보자. 그런데 막상 해보려면 쉽지가 않아요. 우리 사회는 개인적 즐거움을 천대하는 문화입니다. 혼자 즐거우려고 하면 죄책감이 드는 문화에요. 우리 어머니가 하던 말이 있어요. "어떻게 너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냐? 어떻게 자기 좋은 것만 하고 사람이 살 수 있냐?" 결국 자기 즐거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비난이죠. 그러다보니 결국 명분,도리같은 타인 지향적인 윤리에 휘둘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게 끝도 한도 없어요. 개인적인 걸 추구하려고 해도 여력도 시간도 없죠.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감성근육'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육체에 근육이 있으면 뭘 해도 덜 피곤하고 금방 회복하잖아요. 감성도 마찬가지에요. 감성근육이 없거나 약한 사람은 뭔가 느끼려고 해도 금방 피곤해요. 소설 하나도 제대로 못 읽죠.

어둠속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시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소리듣고 만지고 맛보는 체험 프로그램이죠. 끝나고 15분 정도 지난 것 같았는데 사실 1시간이 지났던 거에요. 모든 감각이 완전히 집중되면서 몰입했던 경험을 한거죠.

오감으로 글쓰기라는게 있어요. 어렸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서 묘사해 보라고 해요. 대부분 시각적인 것에 대해서 묘사합니다. 다시 주문해요. 오감을 다 동원해서 글을 써보라고 다시 주문해요. 그러면 확실히 글이 좋아져요. 좋은 작품일수록 다양한 감각을 잘 전달해요. 이런 오감 훈련을 통해서 글을 쓰려고 노력하면 이후의 경험들도 자꾸 다양하게 느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감성근육이 발달한 사람들은 남의 의견에 그렇게 크게 흔들리지 않아요. 어떤 분야에 대해서 자기 느낌의 데이터 베이스가 풍부하잖아요.

남에게 침범당하지 않는 자기만의 내면은 지식만으로 구축되는게 아닙니다. 감각과 경험의 피드백을 통해서 완성되니까요. 늘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잘 느끼고 있는가. 한가지로만 느끼는게 아닌가? 나의 감각들은 살아 있는가? 자꾸 자신에게 물어볼 줄 아는 사람이 이 저성장의 시대, 암울한 기대감소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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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현재의 삶은 마음의 결단에 따라 살기에 무척 힘들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그렇게 살거냐?

내면을 키워야 한다. 그것을 '감성근육'이라 칭했다.

나만의 감각, 경험, 질문 들로 지식이 아닌 내면을 키우는 것이

암울한 시대를 해쳐나갈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물론

우리의 자녀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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