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훈의 <삶의 향기>]

#1554호 - 편집도 공학입니다.

제가 책을 읽는 법과 관련해서 강렬하게 읽은 책 중 하나는 '마쓰오카 세이고'라는 편집공학 연구소 소장의 책입니다.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들면 감독이 만들었던 작품세계를 거꾸로 올라가 탐험하듯, 저자도 마음에 들면 그 사람의 연대기를 거꾸로 해서 올라가서 읽는 경우죠. 마쓰오카 세오고의 책 중 하나인 [지식의 편집]은 이런 그의 편집에 대한 나름의 일가견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편집이라고 하면 '편집자'가 하는 단순하고 고된 일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는 세상의 모든 일 (음악, 미술, 사업, 발명 등)이 편집이라고 합니다. 책 쓰는 분야에서도 '하늘아래 새로운 건 없다. 단지 재배열이 있을 뿐'이라는 격언이 있는만큼 이 접근 역시 크게 무리라고 보여지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편집을 '컴파일(편찬)적 접근'과 '에디팅'의 접근으로 크게 나눕니다.  사과를 컴파일로 접근하면 '정보의 상호규정성'을 가지고 다양한 이이템과 절을 비교하며 규정관계를 분명히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과를 예로 들면 

사과를 컴파일(편찬)하면 "과일, 과실, 빨간 열매가 열리는 장미과 낙엽고목, 아시아 남부에서부터 유럽 중남부에 이르는 지역이 원산인 과수, 주스나 파이의 원료"처럼 설명됩니다.  즉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가 아닌 어떤 일정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셈인데, 법적 접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컴파일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게 에디팅(editing)입니다. 정보의 장황스러움과 폭이 매우 넓습니다. 사과하면 '에덴동산', '애플 컴퓨터', '뉴턴', '윌리엄 텔', '합격사과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떠오릅니다. 사과를 하나의 정보로 보고 사과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펼쳐보자는 게 에디팅의 기본 발상입니다. 이런 에디팅은 생각을 많이 할 수록 연상되는게 많아지므로 저자는 당연히 에디팅의 반은 사색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또 이 책은 어린이 놀이를 구분해 에디팅 하는 방법을 사례로 보여줍니다. 모든 놀이는 이 세가지 범주 안에 들게 편집한 셈이지요. (놀이를 교육에 접목시키고 싶으신 분들은 지금 제 이야기를 잘 적어 놓으세요. 새로운 거 만들려고 머리 쓰지 마시고, 인류 역사와 맥을 같이해 효과가 검증된 스토리에 잘만 업혀 가셔도 교육 개발 반은 하신 겁니다.)

첫째. '~놀이'형입니다. '소꿉놀이로 대표됩니다. 흉내내는게 중심입니다. 동물놀이, 의사놀이, 가게놀이 등 역할극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초창기에는 사냥이나 고기잡이, 성생활을 흉내내는게 놀이였는데, 근대 들어와서 공장생활을 흉내내는게 많아졌다는군요. 몸짓, 말씨 뿐 아니라 순서나 절차, 좋고 나쁨까지 흉내내기에 포함된다니 우리 자신 부터 한 번씩 돌아보는게 좋겠죠?

둘째, 끝말잇기 형입니다. 말의 꼬리를 이어 연속적인 정보를 만들어 가는 게임입니다. 단어의 음절만 잇는 놀이도 되지만 (나비-비행기-기차-차도) 특정분야의 명칭을 말하는 게임도 포함됩니다. '수도 이름', '영화 제목' '과일 이름' '동물 이름' 등의 놀이가 다 여기 해당됩니다. 끝말 잇기가 발전된 형태가 '연상게임(귓속말 게임)'이기도 합니다.

셋째, '보물찾기'형입니다. 참가자가 공유하는 위치내에서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는 게임입니다. 어릴 적 소풍가서 정해진 공간 안에서 숨겨진 쪽지를 찾는 즐거움이 연상되시나요? (저는 그런 노하우를 어릴 적 깨닫지 못해 매번 허탕만 친 기억이 나는군요.) 보물찾기의 원형은 '숨바꼭질'입니다. 숨바꼭질도 정해진 공간 안에서 '숨겨진' 술래를 찾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만화작가'의 작품, 특히 4단 컷의 만화를 잘 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기승전결에 편집의 묘미가 다 숨어 있다고 하면서 만화가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저도 이 부분에서 꽤 공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만화를 잘 그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스토리를 만들 수 있고, 그 스토리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프로솜씨가 발휘되어야 하는 분야가 만화의 세계입니다. 

세상에 좋은 컨텐츠와 재료는 널려 있습니다. 어떻게 엮을 것인가? 편집의 묘미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만큼 이 책과 잘 어울리는 속담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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