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태도를 일께우는 좋은 글


부록으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도 함께 ^^


삶의향기 Lettering

2012.07

[양정훈의 <삶의 향기>]

 #1423호 - 타인의 인생 설계도를 그려줄 수 있을까요?


좀 아는 체 하는 분들을 만나면 말이나 글자에 '실존'이라는 말을 섞어 쓰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실존이 무엇일까요? 실존주의 말로 유명해진 사르트르를 만나볼 차례입니다.  사르트르는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는 기본 명제를 가지고 출발합니다. 비행기를 예로 들어 볼까요? 비행기는 분명 공장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그냥 이유없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설계사와 엔지니어가 날아다닌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중력의 기술을 응용하여 제품을 만듭니다. 이때 비행기는 '난다'라는 용도가 정해진 채 만들어지는 셈이죠. 설계도를 먼저 그리는 셈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쓰일지에도 알지 못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를 가정할 수 없습니다. 어떤 '쓰임'이 있는 셈이죠. 

그래서 비행기를 볼 때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본질이란 비행기의 제작법과 성질등을 뜻하고, 실존이란 날아다니는 날개달린 저 커다란 동체를 말하는 거죠. 그런데 특이하게 인간은 반대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그 무엇일 뿐입니다. 태어날 때 '아가야 너는 이런 존재이며 이것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누가 툭 설계도를 던져주던가요? 누가 타인의 인생 길을 명확하게 가르쳐 줄 수 있나요?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며 만들어 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 만들어 가기 전단계인 이유를 굳이 가져다 부쳐보자면 '아,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세상에 왔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한 겁니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거꾸로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 특이한 케이스가 되버린 겁니다. (물론 인간의 길? 쓰임은 미리 신에 의해서 점지 받았다. 어린 아이일 때는 모를 뿐인거다 라고 주장한다면 또 다른 길로 설명해야겠지요. 어쨌거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아주 깊은 고뇌를 한 끝에 무신론을 전제로 하니까요.)

우리가 보통 어떤 결과가 만들어지고 나서 붙이는 게 '운명'이라는 거죠. 저 사람과 헤어지는 게 운명이야. 그 여자가 단명한 것도 운명이야. 사실 수많은 우연처럼 보이는 행동들의 누적된 결과 아니었을까요? 혹은 그것이 우연으로 만들어 졌을지라 하더라도 실존 자체가 먼저 생겨난 걸 뒤바꾸기란 어렵습니다. 신이 '너는 그 사람과 헤어질 것이니라'라는 말을 듣지 않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주 헤어졌겠습니까? 또 누군가의 설계도대로 어차피 '내일 헤어질 설계도를 그린' 만남이라면 오늘 그 뜨거운 사랑에 얼마만큼이나 의미를 부여하며 만날 수 있을까요?

결국 실존이 우선된 인간에게는 선택에 대한 자유,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하는 불안을 동시에 수반하며 사는 동전의 양면같은 존재입니다. 언제 헤어질 지 모르고, 언제 만날 지 모릅니다. 어떤 선택이 가장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일지 확신해서 말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장 책임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 노예지요. 내 주체로서 무엇을 결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대부분이라고 믿고 싶은) 사람들은 이유없이 왔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누가 준 인생설계도 같은 본질이란 게 없으며 그래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나오는 용어가 '기투'죠. 지금 현재를 넘어 미래의 자신을 위해 자신을 던져 매번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투'라고 합니다. 이 기투를 위해 필요한 게 '앙가주망' 즉 인간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주어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행동할 것을 결심하는 태도입니다. 

누구에게 맡기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결심하고 만들어나가겠다는 우리의 태도. 언제나 인간은 실존보다 본질로 앞서나간다는 사르트르의 훌륭한 증거물 아닐까요?

p.s) 가끔 두렵죠. 누군가 가르쳐주었으면 하는 내 미래의 모습. 10년 후가 아니면, 내일이라도 말이죠. 그런데 용감해 지면 이런 두려움이 희석되어가죠. 오늘 산 만큼 내일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지거든요. 그렇게 한달을 열심히 살면 한 달 후의 모습도 또 희미하게 그려지더란 말이죠. 물론 불확실성이란 요소로 100% 일치시켜 나갈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막연히 두려움에 떠는 삶과 무엇이 닥쳐오던 나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내 본질을 채워나가겠다는 자세가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최소한 인간이 어떤 틀을 깨는 멋있음을 보일 때 최소한 그는 '죽음'또한 삶의 본질로 받아들인 사람인 경우가 많더군요. 삶에서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모습. 어쩌면 제가 막연히 닮아가고자 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p.s) 그래서 제가 책을 읽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스스로의 나약함을 다른 이의 다양한 생각들로 좀 어떻게 가려보고자 말이죠. ^^ 전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머니까요. 설 연휴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겠군요.

    필자소개 : 정곡(正谷) 양정훈 (기업사내코치 전문가, 작가, 리더십 FT, 자기경영혁신가)

   2006년부터 지인들과 함께 매일 한 권의 책과 하나의 단상을 나누고 있으며 
   작가의 꿈을 가진 [꿈꾸는 만년필]분들과 글쓰기 공부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전문강의로는 독서코칭, 시간관리 코칭, 글쓰기 코칭 등이 있으며, 
   네이버에서 교육분야 2008,2009 초대 파워블로거, 국제코치협회 인증코치, 한국코치협회 전문코치로 활동 중입니다.

   저서 :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나만의 첫 책쓰기 / 내 책은 하루 한 뼘씩 자란다 / 9 to 6 혁명
          전자책 나도 한번 내볼까?(공저) / 청소년을 위한 시크릿 : 시간관리편 (공저) 등이 있습니다.

   Blog : www.yangcoach.com  / E-mail: bolt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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