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호 - 좋은 책 구분법을 알고 싶어요

한 지인께서 물어보신 내용인데, 제가 이와 비슷한 질문을 몇 번 받았거든요. 조금 더 정리를 해야 겠지만, 일단 시의성때문에라도 머리 속에 있는 내용을 꺼내서 이야기해 봅니다. 관련된 고민을 하셨던 분들께도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질문) 독서법, 좋은 책 구분법을 알고 싶어요. 관련서적 읽어서 조금은 배웠지만 서점에서 책들고 훑어봐도 감이 오지 않아 서평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답변) 우리가 보통 혹해서 옳지 않은, 혹은 기대에 못미친 결과를 얻었을때 '낚였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신문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에 '낚여' 들어가보면 쓰레기같은 내용들이 있을때도 이런 말을 쓰죠. 반대로 실제 낚시에서 월척을 잡을때는 '낚았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한 쪽은 수동태고, 한 쪽은 능동태인 차이일까요? (붕어 입장에서는 '훅'하는 미끼를 물고 인생을 종쳤으니 낚인셈이군요)

낚시에 비유했으니 한 번 더 들어보죠. 낚시꾼도 마음에 드는 물고기, 좋은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고, 허접한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이 둘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낚시꾼마다 다를 겁니다. 상식적인 기준을 가진 사람이라면 새끼는 놓아준다. 내가 원하는 물고기는 OOO다. 뭐 이런 기준이 있겠죠. 상어낚시를 하러 갔는데 오징어를 잡았다. 그럼 월척이네하면서 돌아오는 낚시꾼. 좀 아이러니하죠?

반대로 조금 더 고약하거나 탐욕스럽다면 닥치는대로 잡을겁니다. 그냥 나는 뭘 채우든 1톤을 잡을거다. 이러면 그물로 싹 훑을겁니다. 이 둘의 기준에 따라 놓아줘야 할 고기가 놓아주지 않게 되는 고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책 구분법을 알고 싶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나는 좋은 책의 기준을 나 스스로 아직 세우지 못했다'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 기준을 타인에게 물어보는 것부터가 저는 잘못 끼어진 단추라고 생각합니다. 왜 내 기준을 타인의 기준에 맞춰야 할까요? 만약 누군가(부모나 윗어른이) '이 여자가 몸매, 머리 등 내 기준으로 볼때는 네 천생베필이니 사귀어라'한다면 '아, 좋은 기준이구나' 하면서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는 각자 좋은 애인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나 미디어의 영향이든, 아니면 개인의 경험 축적에 따른 결과든 말이죠. 또 매번 다른 만남을 통해 그 기준이 바뀝니다. '어휴, 잠꼬대 심하면 난 절대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을 사귀어보니 다른 건 몰라도 절대 허영이 가득한 사람은 안돼!' 이럴수도 있겠죠. 사람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예전에 제가 읽은 좋은 책의 기준과 지금 읽는 책의 기준과도 다릅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각종 노하우가 들은 책(보통 자기계발책)중에서 스테디 셀러를 높게 쳐주었지만, 십 년 지나 나이를 먹고 나서는 자신을 포함하여 더 넓게, 즉 '사회적 관점'을 고민하고 이를 다양한 시선으로 푼 책을 높게 칩니다. 힐링 코스프레로 다독일 줄 아는 책도 보지만, 싸울 때 싸울 줄 아는 목소리를 지닌 어르신의 책이 좋습니다. 책이 변한게 아니고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감이 오지 않았다는 건, 말그대로 내 경험이 부족해 직관이 그만큼 발달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발달하지 못했다는걸 안다는 것 만으로도 사실은 얼마나 큰 발전인지요. 대부분은 그냥 자신이 어떤지도 모르고 읽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많은 다수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습니다.) 부족하다는 인식은 채워넣을 수 있는 가능성의 시작입니다. 낚시대를 처음 던지는 초보 낚시꾼이 감이 왔다고 하면 그게 이상한겁니다. 연애를 처음 하는 사람이 배우자에 대한 감을 잡았다면 심각하게 주시해봐야 합니다. 말 그대로 내 감각은 축적된 경험에서 진화되는게 가장 정확합니다. 

제 기준으로는 (참고만 하세요) 내 수준에 맞게 나의 궁금증을 채워주고 나를 변화시키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너무 쉬우면 저자를 우습게 보고(사실 그 저자는 눈높이에 맞춰 그 수준의 독자를 이해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했겠습니까?) 너무 어려우면 책이 저를 우습게 봅니다. (저희 집에도 몇 권 있습니다. 얼마나 콧대가 센지...원...) 이 두 종류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타려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솔직해야 합니다.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아는데 모르는 척, 모르는데 아는 척 해봐야 좋은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 안됩니다. 

스테디셀러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규분포안에 있는 상식적인 보통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규분포 바깥의 지식을 가진 저자가 쓴 책이 나쁜 책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정규분포 바깥쪽의 책을 고르는 독자가 저질 독자냐? 그것도 아닙니다. 스테디셀러는 단지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내 수준과 내 지식의 한계를 가능한 정확히 이해하고 알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솔직한 욕구와 손품,발품이 좋은 책과 조우하는 운명을 만듭니다.

그 만남은 내 다음 만남의 감각을 높여주는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말이죠. 쉽게 얻어질 것 같은 노하우가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제가 항상 주변분들께 말씀드리는 건 '원칙만큼 빠른 건 없다'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우 도움이 되어 두고두고 찾아보기 위해 스크랩 합니다.

책 고르기와 나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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