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파커 J 파머. 2018 (김창호, 정하린, 2018)

가장자리는 소외지대가 아니라 더 큰 세계로의 시야확장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만한 세상은 공통체가 있는 세상이다
잘 사는 인류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시와 소설 숲이 필요한 이유이다.
공동체가 만들어낸 문화가 인류를 만든다.
가슴 뛰는 감동이 공감할 수 있게 해주고
공동체를 만들어준다.
공감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유지 될 수 없다.
즉 문화가 없는 인류는 유지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연약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혼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함께 살 수 있다.
어렵지 않다
좀 더 겸손해지면 되는 것이다.
좀 더 너그러워지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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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위시는 말한다.
"그렇게 바라보는 이는 자기 마음을 치유하네 /
여러 질병으로부터, 자기도 모르게."
이것은 바로 내가 여러 번 경험한 바이기도 하다.
삶의 중요성을 알아차리고 그 힘으로 마음을 회복하려면,
숲이나 산 속을 또는 해변을 따라 혹은 사막을 걷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런 곳에서는 자연의 만물이 나를 위로하고 고양시킨다.
거기서 나는 내가 "만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앎에 다다른다.
물론 동물과 식물은 자기들이 단지 거기에 있음으로써
우리 삶을 고양 시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그런 작용을 탁월하게 해낼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다!
반면에 우리 인간 종은 이 세상에서 늘 스스로를 의식한다.
우리가 어떤 결과를 겨낭해 노력을 기울일 수 있고,
올바르게 수행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환상으로 스스로를 부추긴다.
그렇게 해서 고통스러운 세상이 펼쳐지는데,
자칫하면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를 그쪽으로 물아같 수 있다.
내 목표가 아무리 분명하고 내 기술이 아무리 탄탄해도,
내가 종국에 누구에게 도음을 주기나 무엇에 기여하는지는
종종 모르며 알 수도 없다는 것,
이것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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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의 이름은 '충실함'입니다.
여러분의 재능에, 세상의 요구에,
그리고 여러분이 닿을 수 있는 필요가 어떤 것이든
자신의 재능을 바치는 것에
효율성의 규범에 더 단단히 매달릴수록,
우리가 떠맡을 과제는 더 작아질 것입니다.
그것은 단기적인 결과를 내는 일들일 뿐이니까요.
공교육이 그 비극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것(한 번도 수행되지 않은 커다란 일)에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우린 오로지 아이들이 측정 가능한 결과로 시험을 통과하도록 하는 데만 마음을 씁니다.
그 시험들이 정말 중요한 것을 측정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으면서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좋은 교사와
상처 받기 쉬운 아이들의 영혼을 깨부수고 있습니다.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여겨지기를 갈망하는
수 백만 명의 아이들이 이 나라에 있습니다.
물론 효율성에도 신경을 써야죠.
그러나 수많은 교사가 그렇게 하듯이
충실해지는 데 더 마음을 쓰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소명에, 그리고 여러분의 관심에 맡겨진
진정한 필요들에 충실해지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의 살아생전에 그 커다란 일을 완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에서 '나는 충실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만족감을 가지고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겁니다.
다섯째, 인간 됨은 기쁨만이 아니라
고통도 수반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인데,
이것을 꼭 기억해주십시오.
폭력은 고통을 다루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 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그 폭력을 스스로에게 가하기도 하죠.
탈진으로 이어지는 과로나 여리 형태의 약물 남용이 그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그 폭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행사합니다.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성소수자 혐오는
다른 사람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함으로써
고통을 줄이려는 이들에게서 종종 나타납니다.
좋은 소식을 하나 드리자면,
고통은 죽음이 아닌 생명을 가져다주는
무언가로도 변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매일 일어나죠.
이 나이 가 되니.
자기 생애에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을 잃고 고통 받아온 사람들을 저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깊은 슬픔에 잠김니다. 다시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없으리라고 확신하면서요.
그러나 그들은 서서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갑니다.
그런 상실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더 성숙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 더 마음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입니다.
한데 그들의 마음은 부서져 조각난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린 것입니다.
그러니 매일, 삶의 고통과 기쁨을 받아 들이면서 마음을 운동시키세요.
그런 운동은 여러분의 마음을 탄력 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부서질 때(반드시 부서질 거예요)
수류탄의 파편이 아닌 더 큰 사랑의 능력으로 부서질 것입니다.

작가 다이앤 애커먼의 글을 인용하면서 제 축사를 마칠까 합니다.
삶과의 연애라는 위대한 일은 최대한 다채롭게 살아가는 것,
고급 순종마처럼 자기의 호기심을 가다듬고,
매일 숲이 울장하고 햇빛 쨍쟁한 언덕을 달려 울라 넘어가는 것이다.
위험부담이 없는 곳에서는 정서의 지형도 평평하고 탄력이 없다.
그리고 그 모든 차원, 계곡과 산봉우리. 우회로에도 불구하고,
삶은 길이만 있을 뿐 장염한 지형은 전혀 없을 듯하다.
삶은 신비에서 시작되어 신비로 끝난다.
그리나 얼마나 야생적이고 아름다운 시골이 그 사이에 놓여 있는가.
2015년도 졸업생 여러분, 하나의 신비에서 다음 신비로,
그다음 신비로 한없는 자비와 축복이 깃든 여행에 나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시 한번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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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나는 '더 위로 더 멀리' 가는 것이 옳은
방항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나는 높은 곳에 올라가러고 열심히 일했다...
내가 살던 고지는,
올바르게 쓰인다면 우리에게 매우 도움이 될 만한 네
가지 인간 능력의 오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지성
자아
영성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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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오셨습니까
낮설고 눈 덮인 숲 속에서
빙점의 날씨 속에서 홀로 체온을 유지하고자 열심히 걸어가다
오르막길에서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멈취 선다
햇빛이 앙상한 나무들을 뚫고 내 얼굴 위에
떨어져 내린다. 맹렬하고 충만한 생명력으로
이제 수월하게 숨을 쉬면서, 땅과 함께 숨을 쉬면서
나는 갑자기 받아들여진 듯한 기분이 든다
나 자신의 기반 위에 강하게. 나무처럼 뿌리 깊게 서 있는 듯 느낀다
그동안 시간과 모든 골칫거리가 사라진다
그리고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과연 누가 알겠냐마는) 내가 길을 따라 내려 올 때
나의 오래된 짐들이 되돌아온다,
다시 한번 멈취서, 그들에게 안 돼라고 말한다.
여기서 안 된다고, 지금 안 된다고, 앞으로도 절대로 안 된다고
잘 다녀왔느냐고 숲이 내게 건네는 인사를 되돌려받는다
-파커 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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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푸르렀던 세상으로 다시
저 나무는 놀랍게도 단단한 몸통에서
잎사귀를 틔우네
마치 빽빽한 섬유질로 된 나의
예기치 않은 말 속에서 잎을 내듯이
나는 저 몸통, 어둡고 빽빽한 나무 몸통 중심부의 단단한 부분이
내 마음속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바람처럼 춤추며 태양을 노래하기 위해
우리가 우리의 빽빽함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찬미한다
우리의 말들은 나뭇잎처럼
제철에 피어나고 다시 제철에 떨어지지만
말들은 솟아오르며
부드러움이 모는 것을 정복하는
힘을 중명한다
시든 잎들이
싹이 트지 않은 나뭇잎들의 뿌리에
거름을 주기 위해 흙으로 돌아가듯이, 그렇게
마른 단어들은 각자의 요소로 분해되기 위해
그리고 찬양받지 못한 세상들의
뿌리에 영양분을 주기 위해
마음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말이 실패할 때도 어두운 나무 몸통은 견딘다
가장 놀라운 샘이
다시 한번 푸른 세상을 말하는
목소리를 샘숫게 할 때까지
-파커 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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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는) 영혼의 신성한 장소들에서 더 자주 발견한다.
자연 안에서, 신실한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
홀로 또는 함께하는 침묵 속에서,
좋은 시나 음악의 분위기 속에서 말이다.
태도를 가디듬고, 영혼을 갱생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받은 치유자로서
세상에 돌아가기 위한 안전한 공간이 있다면
그 모든 곳이 성소다.
이는 단지 폭풍우로부터의 피난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생존과 지속해 갈 수 있는 능력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성소의 탐색은 유년 시절 교회
출석이 그랬던 것처럼 선택 사항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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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자기 모습 전체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법
(노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 되는 과제)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물론 명상, 일기 쓰기, 심리치료 같은 보조물을 신뢰할 수 있으며,
내겐 모두 도움이 된다. 그 중 세 가지만 들면
1 젊음 세대와 접촉하라
2 당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회피하지 말고, 그것을 향해 움직여라
3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자연에서 보내라
온전함은 목적이다.
하지만 온전함은 완전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필수 요소로서
부서짐의 수용을 의미한다.
이를 빨리 이해할수록 좋다.
이는 우리를 해방시켜 잘 살고,
사랑을 잘하며, 궁극적으로 잘 죽울 수 있도록 해주는 진리다.
한 번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진정한 자아로, 자신이 아는 한 최선의 방식으로
여기에 존재했으며, 현실에 치열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삶을 영위했음을 깨달으며 죽는 것보다
더 은혜로운 일이 있을까.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파커 J 파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