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최진석. 2015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을 잃고
생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불의 사용으로 물리적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고기를 소화하기 시작한 인간은 남는 에너지로 뇌를 키워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에 의존적인 존재에서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로
수동적에서 능동적 존재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수렵채집을 잘하기 위해 머리를 쓰다
모여 살기 시작하고 인원이 많아지면서
사람간의 생각을 조율할 필요가 생겼다.
자연 -> 신 -> 사람의 순서대로 믿음이 변화해 가는 것이다.
중국은 하은주 시대를 거치며 신에서 사람(덕)으로 변해갔다.
덕을 갖추면 된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철학자 공자와 노자를 기준으로 덕을 갖추는 방식을 논했다
공자는 이상적 상태를 정하고 그 곳에 다다르는 방식으로
노자는 자연적 상태로 정해진 것은 없고 시시때때로 다르다는 방식이다.
공자는 인간 내면에서 노자는 자연의 질서에서 덕을 발견했다.
그래서 추구하는 방식이 전자는 딱딱하고 후자는 말랑한 느낌이든다.
공자는 객관적인 인의예지를 노자는 주관적인 도덕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노자의 가르침은 불교의 공과 주연의 일음일양과도 연계되어 변화를 설명할 때 적절하다.
지금은 어떤시대인가?
너무 빠른 발전 속도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이상적인 것을 정하고 가다 보면 변화에 대응하기 힘들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준을 정하기 보다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좀 더 맞지 않을까?
남이 만든 기준에서 생명력을 만들기란 어렵다.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스스로 존엄하다 느끼고 행동할 때 생명력은 생긴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만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효율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라는 걸 실행하고
유일한 내가 되어야 한다.
<호명사회>에서 안내한 것 처럼 이름이 호명되는 고유명사가 되어야 한다.
https://open.kakao.com/me/bc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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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 관객 수준을 신뢰하지 않으면
자신의 메시지나 장치들을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스토리를 다 따라가지 못할까 봐 자꾸 설명을 끼위 넣게 됩니다.
그런데 관객을 신뢰한다면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지요.
영화감독과 관객이 대화하는 방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거기서 재미가 만들어집니다.
이번에는 가족 관계에 빗대볼까요.
부모 자식 간에 왜 갈등이 생깁니까?
대부분은 부모의 선의 때문입니다.
자식이 잘못될까 자식이 잘 못살게 될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자식을 잘 살게 해주려는 목적으로 선의가 시작됩니다.
그렇지만 뒤집어 보면 자식을 불신하는 거예요.
자식을 믿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언어와 지시가 가중됩니다.
이 말만은 꼭 해야 자식이 제대로 될 것 같고,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자식이 공부를 안 해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사실 이런 생각들과 염려의 뿌리는 모두 불신입니다.

칭소년기는 시행착오가 허용되는 시기여야 합니다.
이 시행착오를 통해서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그 기간에는 보나마나 헤매고 부뒷치고 넘어지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주어야 합니다.
그때 그 단계에서 누릴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행복하고 즐겁고 발랄한 심리 상태에서 진정한 힘이 나오고
지적 창의성이 발휘되기 때문이죠.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를 기대하면서도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울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모순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믿지 않으면 자식 또한 부모를 믿지 않습니다.
믿는 척은 하겠지요.
신뢰가 깨진 관계에서는 어떤 성취도 얻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식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최진석

자기 삶의 양식이 자기로부터 나오지 않은 삶,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이 자기로부터 나오지 않은 삶,
자기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이 자기로부터 나오지 않은 삶은
결코 정상일 수 없습니다.
자발적이지 않은 것에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효율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생각의 탄생 : 불, 철기의 사용 부터 시작 재미있다.
6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단순히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인문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있어야 한다.
7
신념을 벗어나고 나로 돌아가야 통찰력 인문적 사고력이 생긴다.
그래서 생각의 틀을 깨는 정신적 자유를 회복하고 진정한 덕성 진정한 행복을 가까운 일상 속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70
철학은 믿음에서 생각으로 신에게서 인간으로 이동하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139
상을 짓는 행위 어떤 것을 자기 뜻대로 정해버리는 행위가 불교에서 말하는 소유입니다. 평등한 세계를 자기 뜻대로 소유해 버리는 것이죠.
143
혹자는 철학을 뜬구름 잡는 학문으로 여기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행동 양식을 결정하거든요. 사람이 달라지면 계급이 달라지고 계급이 달라지면 정치적 욕구가 달라지고 따라서 제도가 달라지고 정치가 달라집니다. 철학과 현실 사이의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이 그래서 꼭 필요합니다.
의미는 발굴되거나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 됩니다. 여기서 차이라는 개념이 의미를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장치가 되지요.
146
서양 철학사는 모두 플라톤의 각주이다.
174
그래서 서양철학은 기본적으로 사회의 구조물입니다. 완결된 사회 구조를 서양에서는 철학이라고 보는 거예요
175
돌처럼 소박하라
빛나게 눈부시지 않고 빛나되 그 빛이 다른 하찮은 먼지들과 조화를 이루어 같아진다는 겁니다.
205
검소하나 누추한 것에 이르지 않고, 아름다우나 사치한 것에 이르지 않는 것,
떠오르네요.
노자의 세계관에서는 어느 것도 스스로를 스스로의 주인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각자는 상대편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상대편에 의존해서만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213
어떤 것이 진실이냐고 확신할 때 그 진실이 아직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반대편이 작동하지 않으면 그 확신은 광신이기 쉽습니다.
확신하지 않는 힘이 바로 내공입니다.
215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지요.
인생에서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존재론적으로 당위의 문제에 해당됩니다. 배움은 수단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지요
삶은 자기 표현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수동적으로 배우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면이 표현 능력이 거세되기 쉽습니다.
216
자율이란 내가 나를 조율하는 겁니다.
218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보고 반응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과거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겠죠.
244
노자가 말하는 무위는 수단이거나 과정 혹은 태도의 방식일 뿐입니다.
그런 태도를 통해서 도달하고 싶은 것
이것을 노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지경 또는 되지 않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지경이라고 말합니다.
무불위라고 표현했지요.
253
"왜 혁명이 이뤄지지 못하는가? 왜 완수가 되지 못하는가? 그것은 혁명을 하는 혁명가들 스스로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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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자기로 존재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윤리적 책임자가 아니어서 그래요. 뇌물을 받지만 자기가 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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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의 양식이 자기로부터 나오지 않는 삶,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이 자기로부터 나오지 않는 삶, 자기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이 자기로부터 나오지 않는 삶은 결코 정상적일 수 없습니다. 자발적이지 않은 곳에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효율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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